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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웹진’의 화장발
[문화비평] ‘웹진’의 화장발
  • 조환규 부산대 교수
  • 승인 2007.10.15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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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규 /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국제학회에서 한 청중이 연사에게 질문을 했다. 요지는 방금 발표한 자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발표자의 답은 매우 간단했다. 구글에서 000로 검색을 했을 때 나오는 첫 번째 페이지,
두 번째 항목으로 들어가면 발표 파일과 실험 자료가 있다는 것이다. 구글에서 첫 페이지라니 발표자의
은근한 자랑 같기도 하고. 여하간 자신의 연구분야를 검색어로 넣었을 때 첫 페이지에 연구자의 웹이
나온다면 그 수준은 국제적 기준으로도 최상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지나면 이런 식으로 웹을 통하여 지명도를 결정하는 방법이 보편화되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구글 첫 페이지에 나오는 구글 1등급, 서른일곱 번째 페이지에 겨우 나오는 구글 37등급으로 말이다. 웹은 어떤 매체보다 강력한 표현수단이며 통신수단이다. 예를 들어 “꿈 많은 어린 시절, 과학자의 꿈을 안고”와 같이 처절하게 시작되는 자기 소개서는 사라지고 있다.

자기 소개서는 http:// 로 시작되는 단 한 줄의 웹 주소로 정리된다. 웹은 현대인들에게 정체성의 다른 표현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기관의 홈페이지는 그 기관이 어떻게 조직돼 있는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전체(genome)이다. 기관이 얼마나 권위적인지, 대중에 봉사할 의지가 있는지, 현장의 소리에 어떻게 귀 기울이는지는 웹에 모두 나타나 있다. 홈페이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주인을 위한 홈페이지이고 다른 하나는 손님을 위한 홈페이지이다. 주인을 위한 홈페이지의 가장 공통적인 특징은 주인의 자랑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홈페이지에는 “우리는 이러저러한 일을 이렇게 잘 하고 있다”는 자랑으로 도배가 돼 있다.

한편 손님을 위한 홈페이지는 “당신이 원하는 내용이 이렇게 저렇게 준비돼 있다”라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상당수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는 결코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특히 교육기관들의 홈페이지는 뭔가 큰 개선이 필요하다. 사실 구성원이 자신이 속한 기관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일은 흔치 않겠지만  여러 교수 독자들께서는 자신이 속한 대학의 홈페이지에 손님, 그러니까 학생, 학부모, 외부 연구자의 입장으로 한번 접속해 보실 것을 권한다.

초중등, 대학들의 홈페이지에 나타난 공통적인 문제점은 그 논리적 구조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내용이 하나의 홈페이지에 빼곡하게 담겨져 있다. 비유하자면 옷 자랑을 위해서 집안의 장신구란 장신구는 모두 걸치고 나오는 격이라고나 할까. 더 큰 문제는 그런 내용들이 각 기관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총장님 인사, 이사장님 말씀, 학교 연혁, 대학 상징, 교훈… 등. 일반인들이 이런 내용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 어떤 홈페이지에는 시작부터 기관장의 사진이 등장하기도 하고, 게다가 기관의 노래(사가)까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그야말로 5공 군사정권 분위기가 물씬 나는 최악의 홈페이지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 보면 예외 없이 조직도가 있는데 나는 그게 왜 필요한지, 어디에 쓰이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정작 그 해당 부서에 연락을 하려해도 전화번호나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의메일을 보내도, 그것을 받았는지, 처리가 되고 있는지 도통 소식이 없다. 이렇게 외형은 살아있지만 사실상의 뇌사상태에 빠진 웹은 부지기수이다. 대부분 대학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낭만적인 캠퍼스 동영상이 제시되는데 이런 친절이 손님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영상 화면은 컴퓨터의 사용부하를 가중시키므로 인터넷 성능이 열악한 외국에서의 접속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공지사항 게시판을 보면 더 가관이다. 추가등록 알림, 졸업사진 구입, 예비군 훈련, 교직원 야유회 사진배부, 교통통제정보, 단수단전, 연구소 소식, 예방접종 등등. 그러나 정작 손님이 원하는 정보를 찾기는 어려웠다. 필자는 수십 곳의 대학 홈페이지에서 외국인을 위한 숙소(게스트 하우스) 정보를 한번 찾아보았는데 단 세 곳에서만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결론: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홈페이지는 예민한 감각기관이 돼야 한다. 홈페이지의 화장발은 빨리 지워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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