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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고전 등 ‘특성화’ 지원
기초과학·고전 등 ‘특성화’ 지원
  • 교수신문
  • 승인 2007.10.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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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정보_ 기업출연재단들,‘학술총서’ 어떻게 돕나

1980년대와 90년대 초, 연구자들에게 안정적인 재원을 제공하고 국내에 미진했던 연구과제들을 제시해 연구 수준의 질적 전환을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기업출연 재단들이었다. 학술연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척박했던 시기에 “나는 버는 재주는 있으나 쓰는 재주는 없으니 불우부진한 기초학술진흥에 도움이 되도록 써달라”는 것이 대우재단 설립 당시 김우중 회장의 전언이었다. 한국 ‘인문학의 위기’를 선도적으로 인식하고, 토대 마련에 힘쓴 장본인은 이처럼 기업출연 재단들이었다.

최근 저술지원, 번역지원 사업 등 국가적 출판 지원이 활발한 가운데 이들 기업출연 재단의 노력에도 새롭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통 1년을 기준으로 과제당 1천만원 내외의 지원금을 걸고 있어, 3년 간 3천만원을 지원하는 학술진흥재단의 저술지원사업 규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계 출판사의 출판까지 ‘풀코스’로 이어지고 있어 보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재단별 특성과 흐름에 주목해야
기업출연 재단의 학술지원 사업에서 연구자들이 눈여겨볼 대목은 재단별로 역점을 두고 있는 학술기조와 특성이다.
기초학문분야를 강조하고 있는 대우재단(이사장 김욱한)을 비롯해, 동양 그룹이 운영하는 서남재단(이사장 이관희)은 동아시아 연구에 주력하고 있으며, 교보생명의 대산문화재단(이하 대산재단, 이사장 신창재)은 명저 번역을 특성화시켜왔다. 아울러 “특정 분야의 최근 담론을 반영하고 사회에 필요한 지정주제를 강화”하는 경향을 설명하는 서남재단 학술팀 이웅 부장의 말처럼, 학술기조의 큰 틀 내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변화에 연구자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학술출판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되는 ‘대우학술총서’는 1981년 이후, 현재까지 600여권에 이르는 총서를 출간하면서 철학, 언어학, 물리학 등 기초학문분야의 지원과 출판에 주력했다. 지원 과제 수만 해도 2006년 현재 1천 300여건에 이른다.
특히 1999년부터 지속적으로 대우재단의 학술지원사업을 도맡고 있는 한국학술협의회(이사장 김용준)는 2001년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베르그손 지음, 최화 옮김)을 시작으로 ‘대우고전총서’를 기획, 고전번역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동안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순수이성비판』 등 이름난 책을 비롯해 미국 최초의 심리학 전담교수였던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의 원리』 등 상당한 공이 들어가는 고전들을 번역했다. 올해 11월 말에서 12월 초 사이로 과제공모가 예정돼 있다.

‘동양학술총서’ 33권과 ‘동양학자료총서’ 7권을 내놓은 서남재단의 키워드는 무엇보다 ‘동아시아’다. 학술지원을 시작하고 93년 경실련과 공동으로 ‘동북아 경제권과 한반도 통일’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최한 이래 서남재단은 동아시아 담론 세우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총서 발간에만 총13억원, 연평균 약1억원을 지원했다.
서남재단의 학술지원 사업은 ‘연구실을 넘어서는 소통’에 방점을 찍고 2005년 서남포럼으로 면모를 달리했다. 이웅 부장은 “기획 방향에 있어 큰 변화는 없지만 포럼 내용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고 전한다. 2007 현장포럼의 주제 ‘제국의 교차로에서 탈제국을 꿈꾸다- 네트워크와 다문화주의의 점검’처럼 서남재단은  다문화주의로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문학 번역 사업에 집중 지원해 온 대산재단의 경우 올해 ‘세계문학총서’ 1차 사업을 마감하고 내년부터 2차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미 발간된 ‘세계문학총서’ 65권에 진행 중인 과제의 출간을 올해 중에 마감(총115종, 150권)하고, 10월 중 평가를 거쳐 2차 사업의 방향을 마련한다. 특히 이정화 대리는 “고전에 치우쳐 있어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감안, 현존하고 있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한다. 저작권 문제로 고전에 비해 쉬 관심 갖지 않던 경향에서 새로운 시도다.
지난 5일 2007년도 과제 공모를 마감한 아산사회복지재단(이하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준)은 사회복지 분야의 교재용 저술활동에 무게를 뒀다. 1977년부터 학술 연구비를 지원해온 아산재단은 1992년 김윤환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공동 작업으로 저술한 『전환기의 중국경제』를 비롯 총 243권에 이르는 ‘아산연구총서’를 내놓았다. 3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수혜를 받은 연구자만 해도 2천명이 넘는다.

재단들의 이 같은 특성화 경향에 연구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산연구총서의 175번째 저작인  『국어교육을 위한 국어문법론』을 펴낸 이관규 고려대 교수(국어교육학과)는 “교재 저술 지원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교육자에게도 도움이 될뿐더러, 대중화에도 기여했다”고 전했다. 서남재단 박사논문부문 지원을 받아 『위구르 유목제국사』를 발간한 정재훈 경상대 교수(인문학부)는 “동아시아 분야를 특화해 동아시아 담론의 통합적인 틀을 모색하고 구심체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에 긍정 평가를 내렸다. 전문성이 강화되는 만큼 선정된 연구자들과 그 결과는 공신력을 획득할 수도 있다.

과정보다 결과에 비중 두는 지원 사업
기업출연 재단의 출판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은 연구진행절차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단의 연구지원 제도들은 복잡한 구비 서류를 요구하지 않고 연구구상, 참고문헌, 연구 일정 등 기본적인 내용이 들어간 A4 10매 내외의 연구계획서를 요구한다. 사용 내역에 따라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진행 상황에 따라 두세 번 나누어 연구비를 지급하는 것도 매력이다.
개인 논저지원에 1천 500만원을 지원하는 대우재단의 경우 과제에 선정된 직후, 중간 심사와 결과 보고서 제출 후, 500만원씩을 나눠 지급하고 있으며, 대산문화재단 역시 별도의 정산 없이 두 번에 걸쳐 지원금의 반액씩을 배분한다. 대산세계문학총서 46권 『끄로일로프 우화집』을 집필한 정막래 계명대 교수(러시아어문학)는 “연구비가 인건비 개념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까다로운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기업출연 재단의 출판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은 연구진행절차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단의 연구지원 제도들은 복잡한 구비 서류를 요구하지 않고 연구구상, 참고문헌, 연구 일정 등 기본적인 내용이 들어간 A4 10매 내외의 연구계획서를 요구한다. 사용 내역에 따라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진행 상황에 따라 두세 번 나누어 연구비를 지급하는 것도 매력이다. 개인 논저지원에 1천 500만원을 지원하는 대우재단의 경우 과제에 선정된 직후, 중간 심사와 결과 보고서 제출 후, 500만원씩을 나눠 지급하고 있으며, 대산문화재단 역시 별도의 정산 없이 두 번에 걸쳐 지원금의 반액씩을 배분한다. 대산세계문학총서 46권 『끄로일로프 우화집』을 집필한 정막래 계명대 교수(러시아어문학)는 “연구비가 인건비 개념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까다로운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인문사회계열 지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들 재단들이 소신을 갖고 연구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고 의미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원 규모 확대, 인문학과 자연과학, 서양학문과 한국 및 동양고전 에 대한 균형있는 지원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 또한 지원 결과의 대중화에도 눈돌려야 한다. 한국출판문화연구소 백원근 선임연구원의 지적처럼 “기업재단의 활동이 출판사와 기업 간 지식생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학술적 결과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새겨볼 만하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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