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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 법학계 비판의 광경
[쟁점서평] 법학계 비판의 광경
  • 김동훈 국민대
  • 승인 2001.11.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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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이라는 절대가치 선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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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조국 지음, 책세상 刊),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박홍규 지음, 개마고원 刊)

김동훈 / 국민대·법학

위 두 권의 책에 대한 서평청탁을 받고 고심하는 나의 책상에는 또 하나의 청탁원고가 있다. 고시잡지사에서 내년도에 바뀌는 새로운 사법시험에 대한 전망과 공부방법론을 정리해달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 법학을 ‘수험법학’이라고 부르듯이 우리의 법학교육, 나아가 학문활동마저도 압도적으로 시험제도의 영향아래 있다. 많은 법학교수들은 수시로 각종 국가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활동에 동원되고, ‘○○시험 출제위원’은 가장 명예로운 타이틀이 되고 있으며, 많은 교수들은 수험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의 집필을 꿈꾸고 있다. 이러하기에 법학은 법학 바깥의 세상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도 또 안목도 없이 자체소비적인 활동을 해올 수밖에 없었다. 수험서 외에 일반 법학도나 대중들이 교양으로라도 읽을만한, 법을 소재로 한 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근래에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조국 동국대 교수(법학)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의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라는 두 권의 책은 고무적이다. 이 두 책은 모두 법학의 핵심적인 주제들에 관한 논의를 대중과 같이 고민하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이라는 점도 그렇고, 또 저자들이 책에 나타난 자신의 소신에 따른 현실활동에도 두각을 보여온 점에서도 그러하다. 조국 교수는 책에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바로 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박교수는 책에서 특히 외국인과 노동자의 인권에 관심을 보이듯이 1980년대 후반 국제인권법과 국제노동법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교육에 분주했던 분이다.

기본권 중의 기본권, 양심의 자유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책의 주제가 두 교수가 이른바 대학 내에서 자기의 전공으로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학은 외부학문과의 교류도 드물지만 내부에서도 전공별로 매우 엄격한 울타리가 쳐져 있어 남의 영역을 넘보는 것은 주제넘은 일로 평가되어 왔다. 물론 법학이 매우 精緻하고 방대한 학문으로서 자신의 전공에 충실하기조차 힘든 점도 있지만 또한 시각의 협소함과 안주하는 정신이 바탕에 있음도 부인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형법학을 전공하는 조국 교수는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기본권문제에 대하여, 더욱이 박홍규 교수는 노동법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한국 헌법학에 대한 전면 비판’이란 부제를 달고 한국헌법 전반을 관통하는 비판서를 낸 점에서, 인접 전공에 대한 수련의 깊이도 놀랍거니와 또한 이를 공론화하는 그 용기도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역시 민법학을 전공하는 필자도 전공이 아닌 이 책들에 대한 서평 내지 소감을 적을 용기를 얻게 되는 듯 하다.

두 책을 이어주는 단서로서 우선 우리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담백한 선언을 음미해보는 것이 좋겠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는 이 조문을 인간의 존엄성의 뿌리이며 민주주의 체제의 존속과 발전의 전제라고 보듯이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도 “헌법의 조항 중 가장 중요한 단 하나만을 들라고 한다면 나는 제19조를 들겠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는 이러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가 한국적 현실에서 어떻게 처참하게 유린돼 왔는가를 4개의 이슈를 들어 논증하고 있다.

변형된 저강도의 전향제인 준법서약제와 창살없는 감옥인 보호관찰제가 양심의 자유의 핵심인 ‘침묵의 자유’를 해한다는 비판, 양심적 집총거부자들에게는 소수자 내지 ‘이단’의 양심과 인권도 보호돼야 한다는 점에서 대체복무제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 사상의 표명과 실천은 비록 반체제적이라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한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 저자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고 명명한 국가보안법의 전면적인 폐지주장 등은 이제 더 이상 진보주의자의 견해가 아니라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특히 미국 법원의 판례를 적절히 인용하면서 이러한 확신을 갖도록 이끌어가고 있다.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는 더욱 진보적인 시각에서 우리 헌법이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법’, 즉 인민법이요 민주법이라고 설파한다. 그리고 헌법의 존재목적은 인권보장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이미 “모든 법은 정치적이고 모든 법학자는 정치적 법학자이다”라고 전제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정치한 헌법이론은 대부분이 그의 격한 표현대로 ‘일종의 공해’요 좋게 말해서 현학취미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과격함은 이에서 더 나아가 아예 그러한 헌법이론을 만들어내는 헌법학자들에게 헌법을 죽이는 ‘殺憲者’들이라는 섬뜩한 레테르를 붙인다. 그런 책을 베스트셀러라고 읽어대고 헌법의 망나니로 재생산되는 학생들이 한없이 불쌍하단다. 사실 헌법전공자가 아닌 필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가 구체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여러 주요 논점들에 대해 논구할 식견은 없다. 사실 그것들 중 일부에는 헌법학계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내용이 담겨있을 지도 모른다. 또 외국판례를 인용하면서 자기 주장의 합리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각색한 부분들이 있다면 시시비비를 엄정히 가릴 필요가 있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절대가치 선언해야

그러나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가 보이는 치열함을 넘어 파괴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역시 법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苦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또는 어느 다른 법 영역을 상식에 입각해 자기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법학의 고유한 영역을 떠난 작업이다. 법학자란 자신의 사회변혁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어떠한 직관이나 신념에 기대기보다 정연하고 설득적인 논리로서 법조문의 미세한 해석론에 담아보려는 고되고 치밀한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또한 기존학계의 외국이론 소개를 ‘외국이론의 노예’라며 맹공을 가하고 있으나 이에도 그리 공감하지 않는다. 서구의 근대법체계를 繼受한 우리의 법현실에서 충실한 비교법적·연혁적 탐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연구활동은 사상누각이 되기 쉽다. 게다가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가 보이는 필요 이상의 파괴적 언어구사는 백해무익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책의 전편에서 일관되게 인권보장을 강조하는 사람이 명예훼손의 논란마저 일으킬 수 있는 표현들을 공개적으로 사용하여 평생을 쌓아온 학자의 인격권을 유린하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위 두 책에서 공통되게 필자가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있다면 국가주의(statism)의 극복이라는 화두이다. 그것은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의 표현대로 국가의 ‘정당성’에 대한 끝없는 의심이다.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인 양심의 자유마저 밥먹듯이 유린하는 하나의 폭력기구에 불과한 국가를 체험했고 공공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기득권자의 사익추구집단으로서의 국가상을 접해온 우리에게, 헌법은 바로 ‘인간의 존엄’이라는 절대가치를 선언함으로써 국가 이전에 인간 그리고 인권이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이 국가를 순치하고 이에 대립하는 시민적 자치의 영역을 넓히고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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