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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과 삶의 모티브가 된 길
문학예술과 삶의 모티브가 된 길
  • 교수신문
  • 승인 2007.10.08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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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길과 운명을 시작하며]문학예술 교수들이 추천하는 길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한 구절이다.
훗날 기회비용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삶 자체에 대한 은유다.
김소월은 ‘가는 길’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가지 않은 길’도 ‘가는 길’도 결국 인생이라는 길 위에 함께 흐른다.
역사 속의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들, 그리고 현실정치의 노회한 정객조차
   이 길 위에서 인생과 삶을 노래했다.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인생은 나그네길’이란 저 명제조차도 이 길의 미학 위에 서 있다. 
끝없이 이어진 길. 막막함이 발걸음을 붙들고 설렘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길이 새롭고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에 덧입혀진 모진 숙명 때문이다.
‘별’의 시인  윤동주가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이라고 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의 길은 숙명의 여로가 된다.
길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출발점에 머무를 수는 없는 개인의 생애가 그렇듯
한 집단, 사회, 공동체도 그런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
전통사회의  삶의 길과, 개항을 통해 새롭게 밀려든 ‘서구’라는 타자의 길은
한국의 근대 1백년을 온통 휘감고 있다. 길은 개인사적  운명인 동시에 공동체의 운명이라는,
민족적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를 형성하게 된다.
내밀하면서도, 한없이 확장된 이 개인-공동체의 운명으로서 길이라는 알레고리는 
‘만세전’의 이인화가 동경에서 경성으로 되돌아왔던 소설의 길고 지루한 그 길에서부터
‘천지간’의 구개동, 겨울 시린 바다에 이르는 외롭고 신비로운 길에까지 걸쳐 있다.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됐다”고 노래한  시인은 누구였던가.
인생의 무게는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기만 할까. 한 영혼이 헤쳐나가는 길은 미시풍경이지만
이 풍경은 곧 거대한 서사를 이루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발리스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고 노래한 것은 아닐까. 새로 시작되는 여행, 그 순간 새롭게 탄생하는 모든 길은 개인과 집단, 한 문명이 공동으로 형성하는 방황과 좌절, 설렘과 희망, 환호작약의
좌표로 읽어낼 수 있으리라. 모든 것들이 얽혀 길을 닦고 길을 낸다.
혼자 걷는 길에서 우리 모두는 결국 마주쳐 폭포처럼 더 큰 길이 되고 만다.
개인의 운명은 역사의 길에 흔적을 드리우고, 역사의 길은 개인의 영혼에 빗살무늬토기의
무늬처럼 잘게 새겨진다. 구한말 개화공간의 새로 닦은 신작로는 전기와 기차와 학교와 병원과
기독과 신문을 가져온 길이면서도, 일제 강점기 만주로, 연해주로 이어진 망명길의
막막한 타자이기도 하다. 그 길 어드메  광복의 함성과 목놓아 울부짖는 귀환장정과 정신대로 끌려간 딸들의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 새로운 국가의 모습 앞에 꽃잎처럼 서 있다. 
해방과 귀환, 한국전쟁 과 1·4후퇴, 4·19와 60년대의 저항운동과 경제성장,
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 90년대의 남북이산가족 상봉, 해외이주와 외국노동자들의
국내 유입, 오늘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도보로 횡단한, 삼팔선 가는 길,
그리고경부고속도로와 경부운하論 사이에 엉거주춤 서 있는 2007년,
우리가 모색해야 할 길은 무엇일까. 문학예술 1백년에 그려진 ‘길’의 의미를 통해
나가야 할 길, 새롭게 열어가야 할 여정을 짚어보는 것은 
내면의 길이든, 역사의 길이든 ‘진정한 여행’과 함깨 우리시대의 저 끔찍한 운명을
소망스러운 방향으로 옮겨볼 수 있다는 아주 작은 믿음  때문이다. 

 

□ ‘삼포가는 길’은 소설과 영화에서 동시에 추천된 작품이다. 황석영의 원작을 1981년 이만희 감독이 영화로 재현했다.

 기획_‘길과 운명’을 시작하며: 문학예술 교수들이 추천한 ‘길’
그것은 백년을 흐르고 있었다

문학예술장르에 나타난 길의 폭은 예상보다 넓고 갈래 또한 다양하다.

문학·영화·음악 등에서 ‘길’을 표제로 내건 작품 뿐만이 아니라 곱씹어보면 길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도 적지 않다. 인간과 세계를 다루는 예술작품 속에서 ‘길’은 가장 흔하면서도 시대별·작가별로 변주하는 소재다.

교수신문은 기획연재 ‘길과 운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문학예술 분야 교수 20명에게 길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추천 받았다. 추천작품을 살펴보면 여로형 소설과 로드무비에 추천이 쏠렸지만 언뜻 길과 무관해 보이는 작품도 눈에 띄었다.

대다수 문학 전공 교수들이 ‘길’의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난 소설로 추천한 작품은 ‘삼포가는 길’(황석영)이다. 고명철 광운대 교수(국문학)는 “여로형 소설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하면서 “산업화시대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뿌리뽑힌 자들의 삶의 애환과 그들 사이에 흐르는 연민의 관계를 따뜻하게 형상화했다”고 부연했다. 이외에도 ‘눈길’(이청준), ‘경마장 가는 길’(하일지), ‘돈황 가는 길’(윤후명), ‘광주가는 길’(주인석), ‘역로’(채만식) 등 대부분 제목 그대로의 여로형 소설이 추천작에 올랐다.

김형중 조선대 교수(국문학)는 한국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길로 ‘메밀꽃 필무렵’(이효석)에서 허생원과 동이가 걸었던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70리 밤길을 꼽았다. 김동환 한성대 교수(한국어문학)도 “(‘메밀꽃 필무렵’은) 서사양식에서 서정성을 구현한 작품으로 주목받아왔는데 이는 길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최혜실 경희대 교수(국문학)는 기존 소설에서 드러났던 방식과 다른 ‘길’을 나타낸 문제적 소설로 ‘달려라 아비’(김애란), ‘지구영웅소설’(박민규)을 추천했다. ‘달려라 아비’는 농경적 상상력에서 탈피한 디지털 세대의 유목적 상상력을 아비의 길떠남을 통해 표현한 점이, ‘지구영웅소설’은 만화적 상상력을 드러내면서 근대 작가들의 성장소설의 길 떠남과 전혀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는 점이 선정 이유다.

길이 모티브가 된 시는 ‘길’(윤동주)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김인섭 숭실대 교수(문예창작)는 이 시에서 길의 의미는 잃어버린 길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일제강점기 상실의 시대에 자기완성을 향한 실존적 노력의 과정을 드러낸다”면서 “돌담에 가로 막혀 한쪽 세계를 보지 못하는 화자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 황량한 길 위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면서 탐색한다”고 김 교수는 해석했다.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국문학)는 ‘나그네’(박목월)를 추천하면서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의 정감어린 영상과 나그네 걸어가는 외로운 길을 병치시켜 삶의 고적을 낭만적 미감으로 감싸는 독특한 미학을 창조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분야에서 관련 전공교수들은 임권택 감독과 이만희 감독 작품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는 ‘서편제’·’길소뜸’·’천년학’·’만다라’ 등이, 이만희 감독의 영화는 ‘삼포가는 길’·‘귀로’· ‘휴일’ 등이 추천받았다. 장우진 아주대 교수(미디어학)와 문재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첨단영상학)는 한국영화 가운데 최고의 로드무비로 ‘삼포가는 길’을 꼽았다. ‘삼포가는 길’은 소설 뿐 만이 아니라 영화, 음악 부분에서도 중복 추천을 받은 작품이다.

노동은 중앙대 교수(창작음악과)는 “음악에서 길은 창작의 주요 모티브”라면서 “갈 길이나 떠남의 감정이 삶을 더 음악화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길’(박태준 작곡, 양주동 작사), ‘가려나’(나운영 작곡, 김안서 작사), ‘진달래꽃’(김순남 작곡, 김소월 작사)등이 노 교수가 추천한 음악이다. 김병오 전주대 교수(영상예술)는 “길을 나선 청춘들이 광막한 광야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삶의 좌표를 잃은 당시 염세주의적 풍조를 담고 있다”면서 ‘사의 찬미’를 꼽았다.  이태호 명지대 교수(미술사)는 ‘길’의 상징성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고부 가는 길’(강연균 작)을 추천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5, 삼포가는 길(황석영)5, 무진기행(김승옥)3, 천지간(윤대녕)3, 무정(이광수)3, 눈길(이청준)2, 역마(김동리)2, 눈의 여행자(윤대녕), 만세전(염상섭)2, 백년여관(임철우), 7번국도(김연수), 리나(강영숙),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박태원), 심문(최명익), 잔등(허준), 경마장 가는 길(하일지), 아리랑(조정래), 달려라 아비(김애란), 고래(천명관), 지구영웅소설(박민규), 신경(유진오), 역로(채만식), 해방전후(이태준), 객주(김주영), 관부연락선(이병주), 돈황 가는 길(윤후명), 날개(이상),  수난이대(하근찬),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 만다라(김승동), 광주로 가는 길(주인석), 행복(정지아), 함흥·2001·안개(정도상), 국경을 넘는 일(전성태), 도정(지하련),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제하), 하얀 배(윤후명), 철쭉제(문순태)

길(윤동주)3, 가는 길(김소월)2, 문의 마을에 가서(고은)2, 창원도-남행시초1(백석)2, 고향 가는 길(김규동), 고비의 고비(최승호), 격포우중(서정주), 길(김소월), 길안에서의 택시잡기(장정일), 광야(이육사), 나그네(박목월), 나의 길(한용운),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 내소사(박현수), 노정기(이육사), 무제--궐련기러기(이상), 북방에서(백석), 백록담(정지용),  비리데기의 여행노래(강은교), 새재(신경림), 오감도 시 제1호(이상), 전라도길-소록도로 가는 길(한하운), 전라도가시내(이용악), 전자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이원), 절정(이육사), 진달래꽃(김소월), 진로를 찾아서(천양희), 황톳길(김지하), 행로(이상) 

영화

삼포가는 길(이만희)4, 길(배창호)3, 만다라(임권택)3, 바보선언(이장호)2, 세상밖으로(여균동)2, 서편제(임권택)2, 팔도강산(배석인)2, 화엄경(장선우)2, 갯마을(김수용), 고래사냥(배창호), 꽃섬(송일곤), 길소뜸(임권택), 귀로(이만희),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장호), 로드무비(김인식),마음의 고향(윤용규), 메밀꽃 필 무렵(이성구), 말아톤(정윤철), 박하사탕(이창동),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김태식), 안개(김수용), 안녕하세요 하나님(배창호), 양산도(김기영),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홍영수), 젊은 날의 초상(곽지균), 천년학(임권택),최후의 증인(이두용), 허스(김정중), 휴일(이만희)

음악/미술

음악_산길(양주동 작사/박태준 작곡), 가려나(김안서 작사/나운영 작곡), 비야비야(김동환 작곡), 산길(박산운 작사/이건우 작곡), 진달래꽃(김소월 작사/김순남 작곡), 나그네(박목월 작사/윤이상 작곡), 먼길(길버트 G.모일 작사/김세형 작곡), 시나위 살풀이 (박병천 작곡), 고향가는 길(원장현 작곡), 황성가는 길(김희조 편곡), 사의 찬미(작사 미상/ 이바노비치 곡/ 윤심덕 노래), 황성의 적(왕평 작사/전수린 작곡/ 이애리수 노래), 반달(윤극영 작사/ 윤극영 작곡), 길(김민기 작사/김민기 작곡/김민기 노래), 삼포가는 길(김영동 작곡), , 하늘가는 길(장사익 작사/장사익 작곡/ 장사익 노래), 사랑일기(하덕규 작사/ 하덕규 작곡/ 시인과 총장 노래), 거리에서(김창기 작사/ 김창기 작곡/ 동물원 노래) 외국곡 2곡은 제외.
미술_고부 가는 길(강연균 작)
                                                                          ※작품(작가) 추천수

추천해주신 분들(가나다 순)

소설: 고명철(광운대), 김동환(한성대), 김형중(조선대),
 남송우(부경대), 정호웅(홍익대), 최혜실(경희대)
   시:  김인섭(숭실대), 박현수(경북대), 신범순(서울대), 이숭원(서울여대)
영화: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문재철(중앙대), 유지나(동국대),
 장우진(아주대), 조희문(인하대), 황철민(세종대)
음악: 김병오(전주대), 노동은(중앙대)
미술: 민주식(영남대), 이태호(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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