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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모델일 뿐”… 연구지원·심사 ‘균형’ 필요
“하나의 모델일 뿐”… 연구지원·심사 ‘균형’ 필요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7.10.08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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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테뉴어 심사’파장과 대학·교수사회 반응

카이스트 ‘테뉴어 심사’ 결과가 대학가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카이스트는 지난 달 초 정년보장 심사 신청자 38명 가운데 15명(39.5%)을 탈락시켰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1~2년 남은 재계약 기간 안에 같은 분야의 국내외 학자들에게 세계적인 연구성과로 인정받지 못하면 카이스트를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교수사회에 ‘충격’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언론은 이 틈에 ‘교수사회 철밥통 깨기’라고 반색이다.

이번 카이스트의 개혁 조치를 바라보는 교수들의 시각은 일단 부정적이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 카이스트의 파격적인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다른 일반대학에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카이스트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규제를 받는 대부분의 대학들과 달리 과학기술부의 규제를 받고 있다. 이공계 특성화대학이며, 교수들의 책임 학점도 한 학기에 3학점인 연구중심대학이어서 다른 일반 대학들과 동등한 비교는 무리다.

미국 대학에 재직하다가 서강대 공과대로 옮겨온 한 교수는 “미국 대학 모델을 제대로 벤치마킹해 한국 대학에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국 대학 ‘테뉴어 심사’의 강화된 기준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교수들이 교육·연구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 마련과 지원책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마이애미대의 사례도 제시했다. 테뉴어 심사를 받기 2~3년 전에 학과 원로교수들이 ‘커뮤티’를 구성해 교수 개인별로 논문은 얼마나 써야 하고, 교육은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하며, 외부 연구비는 어느 정도 따 와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또, 1년에 3개 과목의 강의를 하고, 행정 잡무에서 벗어나 교육·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래서 자칫 교육·연구 여건 조성과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은채 심사 기준과 책임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각 대학마다 재임용·승진 심사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 서울지역의 대학에서 교수들과 합의 없이 강화된 승진 심사 기준을 적용해 2명의 교수를 탈락시키자 교수협의회가 반발하는 일도 발생했다. 과거에는 최소 기준만 넘으면 승진 됐으나 대학본부가 ‘최소 기준보다 조금 더 많아야 한다’는 애매한 기준을 적용해서 빚어진 일이다. 심사 기준 강화 분위기에 ‘갑자기’ 편승, 적용한 데 따른 반발이다.

대학에서 ‘정년보장’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의 교수정년보장제도는 대학 교수의 경쟁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수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 ‘학문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마치 함양 미달의 교수를 ‘걸러서 쫓아내는’ 제도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서남표 총장의 개혁 조치는 대학과 교수사회의 관행에 적잖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각 대학마다 세계대학 순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제화’ 지수 개선이 필수적이어서 교수연구업적 강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김덕규 경북대 교수(전자전기공학부)는 “이미 대다수 대학의 정년보장 교수 비율이 60% 대를 넘는 상황에서 신임 교수는 물론 ‘정년보장’을 받은 교수들에게도 업적에 따른 연봉제 강화 등의 조치가 나타날 것 같다”고 예상했다.

20여 년 동안 미국 미시간공대에서 교수로 지내다 지난 9월 동국대 석좌교수로 부임한 조벽 교수는 “최근 카이스트의 혁신 조치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강화된 심사 기준뿐 아니라 교수시장의 유동성 확보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이번 카이스트의 사례는 하나의 모델일 뿐 정답은 아니다”라며 “모든 대학이 카이스트처럼 갈 필요도 없고, 세계적인 대학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형 카이스트 교무처장(바이오및뇌과학과)도 “카이스트의 제도를 모든 대학들이  적용할 수는 없다”며 “대학별로 자기 대학이 추구하는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해야한다. 교육중심대학이 카이스트처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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