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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 ‘퇴계 이황’ 글씨展 지상감상
[예술계풍경] : ‘퇴계 이황’ 글씨展 지상감상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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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3 18:13:22

지금은 그 가치가 많이 떨어진 감이 있지만 옛부터 글씨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였다. 글씨 뿐 아니라 그림 또한, 먹과 벼루를 손에서 떼지 않았던 옛 선비들의 일상 가운데 하나였다. 글씨와 그림은 식자들의 고매한 취미나 단순한 소일거리로서가 아니라 학문을 닦고 몸과 마음을 닦아가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서 시 서화에 두루 능한 르네상스적 풍모를 갖춘 선비들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학문의 산맥이 워낙 높아 그 골짜기에 담긴 여러 재주들이 가려진 감이 없지 않은 퇴계 이황의 친필 글씨를 볼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마련됐다. 예술의 전당 서예관이 ‘한국서예사특별전’ 스물 한 번째 순서로 마련한 ‘퇴계 이황-글씨로 보는 도학자의 삶과 예술展’이 그것이다.

퇴계 탄생 5백주년인 올해 들어 학술대회가 여러 차례 열렸지만, 도학자 퇴계 뒤에 서예가 퇴계, 혹은 예술가로서의 퇴계 모습이 가려진 것에 서운했을 이들에게는, 몇 백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대학자의 ‘사적인 숨결’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예술의 전당측은 기획전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있는 퇴계 문중과 박물관을 돌며 작품을 구했고, 어렵게 구한 작품 60여 점이 전시된다.

글씨가 사람을 말해준다는 말이 절로 들어맞아, 전시장을 찾는 이들 중 퇴계가 평생을 두고 추구했던 올곧은 학문의 정신을 아는 이들은 옳거니 하고 무릎을 칠 정도로 퇴계의 글씨는 흐트러짐 없이 단아하다. 인간의 행동거지, 말씨, 생각의 씨톨 하나하나 정한 이치에 어긋남 없는 것이 매사 처음과 끝이라 여겼던 퇴계가 자잘한 글씨 하나를 허투루 썼을 리 만무한 일인 것이다. 이우성 민족문화추진회장은 “선생의 글씨에는 奇拔 勁悍 華秀 美麗한 곳을 보기 드물다. 그러나 평범한 듯하면서도 격이 지극히 높고, 담백한 듯하면서도 神采가 드러나고, 온유한 듯하면서도 엄정한 기상이 배어 있고, 正常 그대로이면서 변화가 잠재해 있어서 보면 볼수록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평했다.

퇴계가 남긴 유일한 국한문 혼용글씨인 ‘도산십이곡’과 체조하는 도인의 모습을 그린 퇴계의 그림 등 귀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회는 12월 9일까지 열린다. 퇴계의 글씨를 보고 돌아와 어린 밀어두었던 벼루를 꺼내보는 것은 어떨지. 잘 된 글씨를 보고 왔다고 ‘명필’의 염을 둘 필요는 없다. 퇴계가 강조한 것은 남을 흉내내거나 손아귀에서 굴린 어설픈 기교로 꾸민 것이 아니라 솔직담백한 마음의 울림, 그것이었으므로.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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