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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 제갈춘기 / 영국통신원·카디프대 박사과정
  • 승인 2007.10.0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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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학술 리뷰_ 영국 버밍험대, ‘책을 넘어서 : 현대 독서문화’ 학회 후기

영국 개방대학은 1450년에서 1945년까지 영국인의 ‘독서경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왼쪽 사진) 지금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기증받는 데 목표를 두고 있고, 기증받은 자료를 문서화하는데만 1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다. 오른쪽은 벨기에 독서운동 캠페인 웹사이트 화면.

영국 버밍험대에서 ‘책을 넘어서: 현대 독서문화’(Beyond the Book: Contemporary Cultures of Reading)라는 제목으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3일 동안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버밍험 대학의 ‘미국&캐나다 연구 학과’가 진행하고 있는 동명의 프로젝트 팀 주도로 개최됐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과 캐나다는 오래 전부터 대도시 중심으로 활발하게 독서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북미지역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독서사, 독서운동, 독서문화 그리고 독서교육 전반에 대한 열띤 논의가 진행되었다.

북미·유럽 등지의 독서운동 사례 소개
독서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 중에서도 여러가지 형태의 독서모임과 독서운동에 대한 논의가 특히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독서문화를 사회에 정착시킬 수 있을지, 독서운동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도 학계 뿐만 아니라 교육계와 출판계가 오랜 동안 고민해 온 것이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짧게는 지난 몇 년간, 길게는 수 십 년에 걸쳐 독서운동의 일선에서 활동해온 ‘독서운동가’들이 참석해 독서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공유할 수 있었다.

학술대회 첫날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사회변화와 독서운동’ 토론회에서 4개 단체의 독서운동 사례가 발표됐다. 영국의 리버풀에 기반을 둔 독서운동 단체 ‘겟 인투 리딩’(Get Into Reading)의 단체장 제인 데이비스는 10대 미혼모로서 느꼈던 정규 교육에 대한 실망감을 독서운동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특히 함께 소리내어 책을 읽는 방법을 독서모임에 도입해 평소 독서경험이 적은 참가자들도 독서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로햄턴대(Roehampton University)의 제니 하틀리와 사라 터비는 영국의 수감자를 위해 조직된 감옥 내 독서모임에 대해서 발표했다. 두 사람은 지난 8년 동안 5개 감옥에서 꾸준히 독서모임을 운영해 왔는데, 독서모임은 수감자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기회를 제공해 사회적 능력을 함양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앤 피블스는 종교 갈등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불안과 혼란 속에서 살아온 북아일랜드에서 공공 도서관이 어떻게 사회적인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발표했다. 시카고에서 10대 미혼모나 취약계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독서모임을 이끌어온 비영리시민단체 ‘우리 모두를 위한 문학’(Literature For All of Us)은 지난 10년간 지속돼 온 독서운동의 성과를 자축했다.
‘독서운동가’들의 문제의식과 열정이 독서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놀랍고 부러웠던 것은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독서모임 운영과 독서운동에 정부와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몇 가지 연구 중에 한가지 흥미로웠던 주제는 성별이 독서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전반적으로 독서가 여성적인 활동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남자 아이들의 독서량이 여자 아이들보다 낮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업성취율도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서 뒤떨어지고 이는 대학진학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어떤 사회문화적 요인이 독서에 대한 성별화된 이미지를 만든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대부분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면서 책을 읽는 것이 여성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형성하는 독서에 대한 관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4세에서 15세 사이의 캐나다 남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상당히 어렸을 때부터 ‘진짜 읽기’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 기준을 갖고 있었다. 컴퓨터 게임 안내서나 정보위주의 책은 ‘진짜 책’이 아니라고 스스로가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이러한 가치 평가는 부모나 교사로부터, 즉 어른들의 세계에서 배운 것이다.

영국인의 독서경험 데이터베이스 구축
하지만 독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필독도서 목록에 오를 법한 고전을 마음 먹고 앉아서 정독하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아이들만은 아닐 것이다. 독서는 심각해야 하고 소수의 지식인층이나 즐기는 것이라는 독서 ‘엄숙주의’를 깨는 것은 우리 사회만의 과제는 아닌 모양이다. 벨기에의 취약한 독서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벨기에 독서운동은 먼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우선 일반인들이 읽은 책의 내용과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게시판에 게재하도록 독려했다. 동시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하는 많은 행동들이 모두 읽기와 관련된 것이고 독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포스터와 엽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엽서를 장식하고 있는 주인공은 와인의 레이블을 흐뭇하게 읽고 있는 한 중년 남자, 문자메시지를 읽고 있는 젊은 여성, 감자를 깎다가 탁자에 깔아놓은 신문 기사에 빠진 할머니 등이다.

이외에도 많은 독서연구자들의 부러움을 산 발표가 있었다. 영국 개방대학(Open University)의 프로젝트 팀이 ‘예술 및 인문학 연구위원회’(Arts and Humanities Research Council) 지원으로 1450년에서 1945년까지 영국인의 ‘독서경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는 보고가 그것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지속적으로 보완될 예정이며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http://www.open.ac.uk/Arts/reading/
search.php).

독서연구와 독서운동의 미래
‘독서경험 데이터베이스’는 독서연구라는 독립적인 학제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독서경험과 독서자료를 통해 연구를 할 수 있는 인류학이나 사회학, 여성학, 문헌정보학, 문화사 등 여러 학문분야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됐다. 지금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기증받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두 명의 전임연구원이 진행하고 있는데 기증받은 자료를 문서화하는데만 1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다. 연구팀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을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유사한 프로젝트가 전 세계에서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팀은 내년에 어떻게 다양한 독서경험을 기록하고 연구할 것인지에 대해 국제학회를 열 계획이다.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이지만 동시에 매우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독서통계에 매여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몇 번째로 책을 많이 읽는 나라인가(현재는 책을 적게 읽는 나라로 손꼽히고 있지만)를 따지기 전에 좀 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하지 않을까. 과연 한국 사회에서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보다 영상매체를 소비하거나 인터넷 서핑하는 것을 즐길까. 혹은, 독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정말 텔레비전이고 인터넷인가. 앞의 질문들에 대한 깊은 고민이 선행될 때야만 어떻게 하면 책 읽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갈춘기 / 영국통신원·카디프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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