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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트렌드 리뷰] 새로, 다시 번역된 벤야민의 책과 전기
[북트렌드 리뷰] 새로, 다시 번역된 벤야민의 책과 전기
  • 최성일 / 출판칼럼니스트
  • 승인 2007.10.0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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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의 실체가 궁금하세요?

발터 벤야민은 1980년대 이 땅의 회색인과 ‘동반자’의 숨통을 터주었다. 나는 반성완 교수가 편역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민음사, 1983)을 야금야금 아껴 읽다가 1995년 11월에야 다 읽었다. 벤야민은 1940년 피레네산맥 기슭의 포르 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벤야민은 앞서간 ‘21세기’ 철학자다. 그의 아우라는 적어도 금세기말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벤야민의 ‘앞섬’은 루카치와 비교할 때 뚜렷하다. 1980년대 루카치의 책은 대거 번역되었다. 그런 흐름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반면, 1980년대 번역된 벤야민의 책은 세 권이다. 그나마 한 권은 선집의 번역이고, 두 권은 편역서라서 겹치는 글이 더러 있다. 지금은 출판기획자의 번역 선호도에서 루카치는 벤야민의 상대가 아니다. 비교적 최근 번역된 벤야민 관련서를 소품 위주로 살핀다.

벤야민 철학의 알짜 ‘일방통행로’
『일방통행로』(새물결, 2007)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잠언집이고, 작은 선집이며, 비유적 단편이라고 한다. 뭐라 불러도 좋다. 장르의 속성이 책 내용을 좌우하진 않는다. 『일방통행로』는 『독일 비극의 기원』과 함께 “그의 사유가 형이상학적 근거들을 떠나 좀 더 정치적인 입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책”(몸메 브로더젠)이다.

이 작은 책에는 벤야민 철학의 알짜가 담겨 있다.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이라는 번역서 표지문구가 그르진 않다. 한 줄 한 줄마다 그의 치밀한 사고가 번뜩인다. “문학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행동과 글쓰기가 엄격하게 교대되어야만 한다.” 텍스트도 그것을 읽느냐, 베껴 쓰느냐에 따라 발휘하는 힘이 다르다는 얘기는 남들도 하는 말이다. “모든 혐오감은 원래 접촉하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다.” 이 표현은 얼마 전 읽은 어떤 책에서 인용문으로 먼저 접했다. 그런데 어디서 읽었더라?

문예비평가 벤야민의 비평관은 냉철하다. “바보들이나 비평의 쇠퇴를 애석해한다. 비평의 명맥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인데도 말이다. 비평이란 정확하게 거리를 두는 문제이다. 비평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은 원근법적 조망과 전체적 조망이 중요한 세계, 특정한 관점을 취하는 것이 아직도 가능한 세계이다.” 그의 비평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은 ‘비평가의 테크닉에 관한 13개의 테제’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평은 도덕적 사안”이고, 비평가에겐 “동료들이 상급심이다. 공중이 아니다.” 후세는 더더욱 아니다. 후세는 잊거나 받들거나 둘 중 하나다. “비평가만이 작가의 면전에서 판결을 내린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비평가의 직무유기인 셈이다.

인용문만으로 책을 써보겠다는 다짐은 벤야민의 잘 알려진 레퍼토리다. “내 글 속의 인용문들은 노상강도 같아서 무장한 채 불쑥 튀어나와 여유롭게 걷고 있는 자에게서 확신을 빼앗아버린다.” 벤야민이 장서가인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매체로서 책의 특징을 다른 매체와 비교 파악하는 그의 능력 또한 남다르다.

“수세기 전에 문자가 몸을 누이기 시작해 수직으로 서 있는 비문에서 경사진 책상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원고가 되고 결국에는 인쇄된 책이라는 침대에 눕게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문자는 전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다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있다. 이미 신문은 수평으로 놓고 읽는다기보다는 똑바로 세운 상태로 읽혀지며, 영화와 광고는 문자에게 완전히 독재적인 수직 상태로 있을 것을 강요한다.”
컴퓨터 단말기(모니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대저(大著)의 원리들 또는 두꺼운 책의 집필 요령’을 통해 쓸데없이 두꺼운 학술서적을 비꼰다. “우리 시대 학자들의 평균적인 저작은 카탈로그처럼 읽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언제 책을 카탈로그처럼 쓰게 될까?” 문필가는 대체로 필기도구에 기벽과 강박감이 있다. “아무것이나 집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피할 것. 특정한 종이, 특정한 펜, 특정한 잉크를 까다로울 정도로 고수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리고 곱씹어볼만한 가난에 대한 그의 생각.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세상은 가난한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면서 알량한 금언으로 그들을 위로한다. 이 금언은 과거 한때 통용되다가 이미 오래전에 변질되어버린 금언 중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잔혹한 금언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예전 어느 민중가요의 후렴구는 들으면서도 이상했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자본가여, 먹지도 마라.” 굶겨 죽이는 것은 착취하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아니, 그보다 더.

제대로 된 입문서 ‘발터 벤야민’ …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도 흥미
몸메 브로더젠의 『발터 벤야민』(인물과사상사, 2007)은 벤야민 입문서로 더할 나위 없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나 벤야민의 생애와 작품을 제대로 압축·요약했다. “항상 철저할 것. 하지만 매우 중요한 일들에 있어서는 결코 수미일관한 태도를 취하지 말 것.” 벤야민의 삶의 모토다. 또 그의 온전한 이름은 발터 베네딕스 쇤플리스 벤야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벤야민은 한때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노선 차이와 무관하게 전쟁의 광기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보며 공개적으로 침묵한다. “당시 벤야민은 찬성이든 반대든 전쟁에 대해서는 단 한 자,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않았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 출신인 벤야민은 나치의 핍박을 피해 망명자가 된다. 망명객 벤야민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궁핍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물질적 도움을 받은 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벤야민은 자신이 처한 힘겨운 상황뿐 아니라 독일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서도 환상을 품지 않았다. 그는 “국가사회주의가 단기간의 ‘소동’일 뿐이라는 수많은 지식인들과 정치가들이 가졌던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았다.” 벤야민의 저술들이 유물론적 의미에서 구체적이고 정치적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교조적 당원은 아니었다.

“벤야민의 사상은 이론적인 측면에서나 정치적인 측면에서나 자의적으로 도용하기가 불가능하다.” 벤야민은 말과 글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부정한다. 또한 인문주의와 정신에 단순하게 호소하여 무장한 반대자들에 맞서는 것은 아무 소용 없다고 확신한다. 예술가와 작가의 정치적 자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으며, 시대를 엄격하게 구분하지도 않았다.

“벤야민의 생산적인 저술들은 어떻게 한 개인이 문화사적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파악하게 되는가를 쓰는 책들마다 매번 보여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평가하는 몸메 브로더젠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의 관점에 따르자면 한 인간이 ‘어떤 의견’, 관념 혹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 의견, 관념 혹은 신념이 그에게서 무엇을 이끌어 내는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상의 생각들이라 해도 ‘그것으로부터 유용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일방통행로』와 함께 출간된 『베를린의 어린 시절』(새물결, 2007)은 이미 번역된 바 있다. 솔출판사가 펴낸 입장총서의 한 권으로 벤야민의 박사학위 논문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예술 비평의 개념’과 함께 묶였는데, ‘베를린의 유년 시절’은 입장총서 발터 벤야민 편의 표제로도 쓰였다. 이번에는 작품해설과 영어판 옮긴이 서문, 여러 판본을 앞뒤로 배치한 게 눈에 띈다. 지난해 2권이 나와 완역된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는 미완의 대작 『파사젠 베르크(Das Passagen­Werk) 』의 번역이다. 대작답게 분량이 엄청나다. 2천500쪽에 이른다.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그린비, 2005)는 그가 1926년 12월 6일부터 1927년 1월 말까지 모스크바에 머물 때 쓴 일기다. ‘부록’으로 실린 ‘모스크바’는 일기를 기초로 한 인상기다. 일기와 잡지기고문을 대조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12월 8일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전에 아샤가 내 방에 있었다. 그녀에게 선물을 주고 서둘러 헌사가 적힌 내 책을 보여주었다.” 내 책은 『일방통행로』로 1928년에 나왔는데 어찌된 영문인가? 아마도 가제본이나 원고묶음이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일기 내용을 보건대. “스톤이 만든 책 표지도 그녀에게 보여주고 선물로 주었다.”

최성일 / 출판칼럼니스트


 필자는 <출판저널>을 비롯, 출판과 관련된 각종 매체에서 출판문화와 관련된 깊이있는 글쓰기 작업을 해왔다. 『미국 메모랜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1~3』, 『베스트셀러 죽이기』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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