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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인프라 마련 위한 거시적 국가정책 주문
지식 인프라 마련 위한 거시적 국가정책 주문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1.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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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3 10:14:16
세계화, 국가경쟁력 등 시장논리가 학문세계에 끼어들면서 기초학문위기론이 학계에서 제기돼왔다. 이 기초학문위기론은 학술문화의 인프라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진지한 반성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른 ‘육성’ 방안책이 서둘러 모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다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점에서 지난 9일 기초학문육성위원회(회장 정대현 이화여대 교수, 철학과)가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 연 ‘기초학문육성을 위한 정책 심포지엄’은 단연 주목할 만한 자리였다.

이날 심포지엄은 제1부에서 박찬승 충남대 교수(사학과)가 ‘기초학문육성을 위한 정책방안(인문·사회)’을, 김하석 서울대 교수(화학과)가 ‘기초학문육성을 위한 정책방안(기초과학)’을 각각 발제했다. 기조발제는 김남두 서울대 교수(철학과)가 맡았다. 이어 제2부에서는 논쟁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김흥규 고려대 교수(국문과), 유초하 충북대 교수(철학과), 김도형 연세대 교수(사학과), 손욱 삼성기술원장, 정성기 포항공대 총장, 김장환 부산대 교수(물리학과), 허운나 의원(국회과학기술위), 박은정 이화여대 교수(법학과) 등이 참여, 기초학문육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렇게보면 이번 심포지엄은 1천억의 재원을 마련해놓고 이를 3년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논의한 일종의 ‘공청회’였던 셈.

인문학 전공 교수 늘려야

그렇다면 기초학문육성방안의 기본골자는 김남두 교수가 발제한 ‘기초학문육성의 기본방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기초학문분야의 육성에 관해 관심이 제고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지식의 단순한 수입과 수용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의 산출이 심각히 요구되는 지점에 와 있다”는 자기인식에서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국가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도 오히려 기초학문지원 과제는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기초학문육성의 기본방향을 △지식산출 기반을 형성하는 순수학문분야의 재생산 구조 확립 △교양교육제도 강화, 강사들의 법적·경제적 여건 획기적 개선 △장기적 관점·제도적 일관성과 신뢰성에 토대를 둘 것을 주장했다.

인문사회분야 기초학문 육성방안과 관련, 박찬승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김남두, 조옥라(서강대 사회학과), 심경호(고려대 한문학과), 오세진(중앙대 심리학과), 정호근(서울대 철학과) 교수 등이 공동연구자로 발제한 ‘인문학 육성을 위한 정책 방향’은 정부-대학-학술진흥재단의 연계고리에 주목하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들은 인문학 교육의 강화 방안으로 학부제 교육의 보완, 인문학 전공교육·교양교육 강화 등과 인문학 신진연구인력의 양성에 무게를 실었다. 또한 전체 강의의 65%를 차지하는 시간강사의 지위 향상과 처우 개선에 아이디어를 모았다. 특히 △강사를 교육법상 교원으로 인정하고 고용기간을 최소 1년으로 한다 △최저 생계비에 준하는 기본급과 방학중 연구비를 지급한다 △시간강사의 강의 담당 비중을 줄이기 위해 인문학 전공 교수를 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문학 연구지원 정책 개선 방안으로 이들은 △연구비 증액 △독립적 학술지원기금 및 학술지원재단 설립 △연구비의 효율적 배분 △연구비 지원 및 평가제도의 개선 등을 요구했다. 단기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인문학 육성을 위한 장기적 비전은 이 토대위에서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참여자들은 장기적 연구 과제로 △인문사회과학 중 실용분야에 해당하는 전공들을 전문대학원으로 옮기는 문제 △인문학 박사들을 교육대학원에서 일정 기간 교육하여 중등학교 인문학 교사로 활용하는 문제 등을 정부에 제시했다. 이들은 또 대학측에는 △학부제 하에서 복수전공을 의무화하는 문제 △인문학 학과 교수 정원의 확대 △대학간 대학원 공동 운영, 대학원 정원의 축소를 권했다.

기초과학에 대한 공감대 필요

기초과학의 육성방안에 대한 연구를 제출한 팀은 김하석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김경렬(서울대 해양학과), 김병택(성균관대 물리학과), 이혜숙(이화여대 수학과), 정진하(서울대 분자생물학과) 교수 등으로 꾸려졌다. 이들 역시 우리 나라 기초과학부문에 대한 엄격한 자기비판과 점검을 통해 문제해결방안을 모색했다.

단기적인 기술재발에 투자 우선 순위를 두어, 장기적인 투자인 기초과학 육성에는 소홀했다는 것. 1999년의 사례를 보면, 같은 해 미국의 기초과학투자 연구비(6조원)의 30분의 1이며, 일본의 15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과학기술연구자의 절대수는 미국과 일본의 10분의 1 수준으로 연구를 위한 임계인원(Critical mass)을 형성하지 못해 원활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말대로 “연구원의 인력 양성 및 활용계획을 보면,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할 국가차원의 구체적인 국가계획을 갖고 있지 못하며, 인력의 활용면에서는 유기적 연계성을 이루지 못해 박사학위를 가진 고급인력이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표자들이 주문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지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이런 전제가 충족될 때, 과학자들의 학문적 추구와 연구를 뒷받침하는 연구지원 체제나 시설 마련, 경제적 재원 마련의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 역시 인문사회 연구팀과 마찬가지로, 기초과학분야 박사 학위소지자를 고등학교 과학교육 현장에 투입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했다. 일찍부터 토대를 닦는다면 기초과학 교육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해서는 생활비 지급과 박사장교 제도를 건의했으며, 박사후연구자들을 적극 활용하는 ‘국가연구원’(National Fellowship)제도, 연구소 전임 연구교수제도의 확충 등도 제시했다.

한편 기초과학분야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가장 큰 애로를 겪고 있는 ‘연구비 현실화’ 문제도 집중 거론됐다. 이들은 새로운 연구비 개념도 도입했다. 연구자의 자유로운 연구의 기반을 형성하기 위한 경비로써 일본이나 유럽, 캐나다에서 통용되는 제도로 각 연구실 단위로 매년 ‘경상비적인 개념’의 예산 배정을 요청했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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