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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발전론’ 비판 …“국문학사는 존재하지 않는 ‘서구의 근대’ 찾기 였다”
‘내재적 발전론’ 비판 …“국문학사는 존재하지 않는 ‘서구의 근대’ 찾기 였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10.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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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나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과)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과)

교수신문 <비평>은 이번호부터 새롭게 ‘저자를 만나다’ 코너를 시작한다.

화제의 저작을 발표한 학자들을 집중 인터뷰함으로써, 그의 학문, 고민, 연구와 얽힌  여러 문제들을 드러내고, 아카데미의 저술문화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다.그 첫번째로  최근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농암잡지평석』,『안쪽과 바깥쪽』,『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등 네 권의 책(이상 소명출판)을 한꺼번에 상재한 강명관 교수(48세)를 만났다.

조선 후기 문화와 생활상 등을 조명하는 강 교수는 이번 저서들을 통해 조선후기 한문학을 분석근거로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하고 있다. 국문학사의 통설을 정면에서 비판한 강 교수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성균관대에서 ‘조선후기 여항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강명관 교수는 이 학위논문을 1997년 창작과 비평사를 통해 출판한 이후,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소명출판 1999),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푸른역사 2001),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 2003),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길 2006) 등 2년 이상의 긴 호흡 주기로 꾸준하게 의욕적인 집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출간한 네 권의 책이 지난 16년간의 결실이라고 들었다. 애초 문제의식의 교정이나, 문제의식의 전환점은 무엇인가.
나의 박사논문 주제는 역관과 의원을 중심으로 한 기술직 중인과, 서울의 관청에 근무하는 서리, 곧 경아전들이 생산한 여항문학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여항문학의 생산자인 여항인은 양반도 아니고 상민도 아닌 층이어서, 묘하게도 서양 중세의 부르주아지를 연상케 했다. 따라서 조선후기를 양반사회 해체기로 보고, 여항인을 새롭게 부상하는, 근대를 여는 사회세력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 시각이었다. 나 역시 그런 시각에서 새롭게 자료를 찾아 읽어가면서, 여항문학에서 양반사대부의 한문학과 다른 어떤 성격을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성격은 도출되지 않았다.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논문을 맺었고, 몇 년 뒤 이 논문에서 19세기 부분을 더 써서 창작과비평사에서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란 이름으로 출판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다른 연구자들도 이런 문제로 고민했을 터인데, 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어느 날 내가 왜 여항인과 여항문학에서 양반과 다른 어떤 성격, 그것도 서구의 근대에 해당하는 성격을 찾으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문제가 잘못 출제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朝鮮後期史에서 근대로 향하는 역사적 動線을 찾으려는 내재적 발전론에 내가 함몰되어 있음을 깨달았고,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때 마침 李用休, 李彦, 朴趾源, 李鈺 등에게서 중국 明末 公安派의 영향을 발견했고, 그들의 창작론이 공안파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이들 작가들의 비평과 창작은 모두 ‘내발론’에 입각해 연구되고 있었다. 여기서는 내발론이 타자 없는 주체만의 근대로의 행로를 찾는 것이며, 이것이 타자를 의식적으로 제외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곧 중국 명청대 문학과 비평이 조선후기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결국 내발론이 구성하는 문학사는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순수’와 ‘우월’을 중심축으로 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는 문학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국사를 비롯한 모든 국학에 공히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학사는 실로 ‘근대’를 찾아내기 위한 문학사였고, 그 근대는 서구의 근대를 절대적인 준거로 삼은 것이었다. 따라서 국문학사는 존재하지도 않은 서구의 근대를 우리 문학사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모순임은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에서 상론한 바 있다. 나는 여항문학에 관한 나의 학위논문이 갖는 문제를 오랫동안 반추한 결과 스스로 내가 서 있던 지평인 내발론을 부정하게 되었고, 기존의 국문학사의 구성까지도 부정하게 됐던 것이다.

1876년 개항 이후 강제 주입된 근대만 인정

△이번 성과를 조선후기문학 전체로 확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 이제까지 문학사 연구에서, 조선후기 한문학의 성격은, 조선후기 국문문학사의 성격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전제돼 있다. 나의 이번 저작에서 얻은 결론은 국문문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나 한국음악사, 회화사 등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4권의 책은 ‘근대라는 개념을 깊이 반성’하는 데서 출발했다. ‘내발론’에 대한 불신인가.
그렇다. 문제는 내재적 발전론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내재적 발전론은 서구의 근대를 의식한 것이었다. 아무리 논리를 교묘하게 구성한다 해도, 서구의 근대를 의식한, 특히 조선후기사 내에서 서구의 근대적 속성에 해당하는 자본주의 발달 등을 찾는다면, 그 내재적 발전론은 불신돼야 마땅하다. 만약 내재적 발전론이 서구란 전제 없는 ‘역사의 발전’이란 형태로 받아들여진다면, 수용,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민족’, ‘개인’, ‘주체’, ‘자아’ 등이 좁은 의미의 ‘모던’으로 정리되기보다는 ‘복수의 근대성’처럼 폭넓게 봤을 때 서구적 의미와 달리, 다양한 모더니티의 이름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서구적 흔적을 모두 폐기할 수는 없지 않나.
꼭 ‘근대’를 찾아야만 하는가. 그것을 찾지 않으면 역사나 문학사 연구가 안되나? 왜 이렇게 근대에 골몰하는가. 한국사의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 만큼 ‘근대’를 찾았으면 이제 식상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복수의 근대’, ‘다양한 모더니티’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근대’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 해도, 그것은 이미 서구의 근대를 보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876년 개항 이전에는 서구의 근대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후기 역사에서 근대적인 것을 찾는 것은 망발이다. 우리가 경험한 근대는 1876년 개항 이후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된 근대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후 1세기 이상의 장구한 시간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를 근대화했던 것이다. 나로서는 이런 시각에서 1876년 이후 강제로 주입된 근대 밖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학사가 ‘실체’에 근거해야 한다는 지적은 적절하며, 이에 대해 깊은 고민도 있는 줄 안다. 국문학계의 고질적인 ‘고전/근현대문학’이라는 도식적 구분을 넘어설 수 있는 접근으로 선생님의 작업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국문학사’라는 큰 틀에서 ‘고전/근현대’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은.
이 문제는 ‘고전/근현대’가 아니라, ‘한문학/국문문학’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창제 후에 생산된, 그것도 조선후기에 와서 비로소 작품군을 형성하는 국문문학을 고전문학으로 칭하고, 개항 이후 서구적 양식에 의해 제작된 작품을 근현대문학으로 정의해, 국어국문학과의 편제 속에 집어넣어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국문학과를 ‘한국문학과’로 바꾸고, 그 속에 한문학을 실상에 맞게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 위에서 각 대학마다, 각 학과마다 문헌을 독해하는 기초적인 훈련을 담당하는 과목만 설치하고, 나머지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과목을 개설해야 할 것이다. ‘고전’을 연구하고 강의하던 사람이 ‘근현대’를 가르칠 수도 있고, ‘근현대’를 연구하고 강의하던 사람이 ‘한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역도 가능하다. 한문학, 고전문학, 근현대문학의 경계를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

내셔널리즘의 기만적 속성 비판적으로 직시

△탈민족 혹은 민족주의의 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사회과학계에 있다. 작금의 동아시아에 형성되고 있는 기류는 새로운 ‘민족’주의 경향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민족’과 ‘근대’를 탈피하고 ‘인간’을 주어로 하자는 주장은 신선하지만 낭만적으로 들린다.
동아시아에서 형성되는 기류를 새로운 민족주의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 민족주의는 곧 내셔널리즘이고, 내셔널리즘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국민국가가 존재하는 한 내셔널리즘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최근 중국의 경우, 급속한 자본주의화와 함께 내셔널리즘이 보다 날카로운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그것은 중국 내부의 급격한 계급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은폐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내셔널리즘은 궁극적으로 국가 내부 구성원의 차별을 은폐하면서, 국가 지배층의 이익을 옹호한다. 내셔널리즘은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에서 썼지만, 결국은 자기 국가의 우월성을 천명하게 돼 있다. 그 우월성이 좌절될 경우, 타국가 국민에 대한 증오가 유발되고, 국가간의 폭력이 발생, 그것은 전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비판해야 하는 것은 내셔널리즘의 이런 속성이다. 나의 주장을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내셔널리즘을 새로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만 내셔널리즘, 곧 민족주의를 포기하자’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미국 등이 공유하고 있는 내셔널리즘의 속성, 즉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차별을 은폐하고, 외부적으로 우월성과 폭력성을 과시하는 기만적 속성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인간’의 미래가 열릴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인간’으로 먼저 태어났지, 특정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 공안파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사실로서의 평가는 의미 있지만, 문학 예술이 ‘영향의 불안’에 있는 영역이고 보면, 그가 공안파의 영향 하에 ‘개성’을 강조했다고 해서 연암의 성과를 ‘한국적 변형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협애화’ 아닌가.
이 질문은 여전히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나는 공안파와 박지원의 관계에서 모종의 비평적 이론이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뿐이다. 연암은 공안파의 비평에서 어떤 부분을 잘라내어 섭취했고, 자신의 환경 속에서 그 비평에 바탕해 자기 창작을 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중국은 한국과 면도칼처럼 분리된 상태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오늘날 한국의 사상가, 학자들은, 서구의 마르크스, 푸코, 들뢰즈 등을 빌어 사유한다. 한국사회란 환경 속에서 타자의 사유를 잘라내어 섭취해서 사유할 뿐이다. 그것을 원산지를 따지면서 변형물이니 협애화니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변형물이니 협애화니 하는 것은, 여전히 타자의 것을 빌려 쓰니 창피하다는 생각, 곧 민족의 우월성에 반한다는 사유가 들어 있지 않은가.

좀더 생각해 보자.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의 대부분은 현재 수입한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제도는 모두 서구의 근대의 학교 제도이다. 국가의 체제 역시 西歐産이다. 운송수단, 매스미디어 모두 서구산이다. 이럴진대 속속 들이 서구화돼 있으면서, 민족 고유의 것을 찾고, 민족 고유의 사유가 아니면 열등감을 느끼고 애써 주체를 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성리학은 또 어떤가. 요즘 한국인의 대표종교인 기독교는 또 가장 외래적인 것이 아닌가. 순수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잡종의 상태로 존재한다. 사유는 특히 그렇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사유는 없다. 유사 이래 우리는 그런 상태에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 네 권의 책을 어떻게 한꺼번에 내놓을 수 있었나. 연구비 지원이 전혀 없었다고 들었다.
별다른 이유나 방법은 없다. 네 권의 책을 한꺼번에 내 놓은 것은, 책의 서문에 썼다시피 책들의 주제와 내용이 서로 연결돼 있어서였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한꺼번에 출간할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냥 회사원들이 일어나는 시간보다 약간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강의하고, 회사원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퇴근했을 뿐이다.

이 네 권의 책을 집필하는 데 연구비 지원은 전혀 없었다. 평생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를 한 번 받은 적이 있는데, 國樂 문헌을 번역하기 위한 팀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의 연구비, 특히 학진 연구비란 것은, 연구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연구 테마라도 심사자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연구비를 받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연구비를 신청하는 신청서는 왜 그리 복잡한가. 신청서를 매울 동안 차라리 논문 한 편을 더 쓰거나, 책 원고를 몇 장 더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더욱이 대개 1, 2년 만에 연구를 마치라 하니, 나처럼 10년 이상 걸려 장기적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은, 놀며 연구비나 떼어먹는 사람으로 비치기 일쑤다. 그래서 연구비를 신청하기 싫었다. 더욱이 연구비를 받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아 하니, 연구비는 실제 연구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대부분 박사급 연구원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요즘 그런 연구는 보통 한 달에 25만 원 정도가 연구비 신청자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온갖 서류로, 복잡한 정산 방법으로, 관료적 시스템으로 연구자를 통제하면서 연구비를 신청하라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학진 연구비는 인문학자들에게는 사실상 돈을 미끼로 한 연구자의 통제에 불과하다. 만약 연구비를 주려면 사람을 믿고 한 10년 동안 네 마음대로 연구에 쓰라며 주고 말아라. 온갖 간섭 늘어놓지 말고.

△동일 주제를 십여 년 숙고해왔기 때문에 국학 연구의 문제점도 많이 고민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연구하는데 불편했던 것은 없었나. 연구 지원과 관련해 충분한 뒷받침이 부족한 현실인데 ‘연구’를 더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학교에서 등재학술지나 등재후보학술지에 논문을 써서 내라고 온갖 압력을 가하는 것이 가장 불편했다. 교내 연구비란 것이 있는데, 원래 국립대 교수의 월급이 적다 보니, 그것을 보충하는 셈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등재학술지, 등재후보지에 논문이 없으면 푼돈에 불과한 교내 연구비조차 주지 않는다. 호흡이 긴 원고나 책을 쓰는 데 열중하노라면 교내 연구비용 논문을 쓰지 못할 때가 가끔 있다. 이번의 책을 출간하기 앞서 그 경우를 한 번 경험했다. 그런데도 연구점수 0점으로 처리해 연구비를 주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한 마디 더 하자면, 저서를 몇 권씩 내어도 학교 당국은 등재지나 등재후보지에 게재된 논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구점수를 0점으로 처리한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대학 당국의 연구에 대한 통제를 완화해야 한다. 나는 지원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푼돈을 주면서 연구자를 옭죄고 통제하고자 하는 관료적 시스템에서 해방되는 것이 더할 수 없이 바라는 소원이다. 예컨대 최근에 생긴 법에 의하면 교수는 연구비를 받을 경우, 자신이 책을 직접 구입하지 못하고 산학협력단에 살 책의 목록을 올려서 구입해 달라고 신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은 도서관의 소유가 된다. 이 따위 치졸한 짓거리를 하고서도 학문 연구가 발전하길 바라는가.

첨언하자면 학술진흥재단이니 뭐니 해서 연구자를 희롱하지 말고 월급이나 더 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생활에 신경을 덜 쓰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지원이다. 연구비를 주니 안주니 하면서 자존심을 건드리고, 되지 못한 연구비 신청서를 쓰는 데 제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하지 말고.

기존 학설에 얽매이지 말고 상상력 키워야

△ ‘한문학’을 학계의 전유물에서 대중과 호흡, 공유하는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왔다. 장기적인 관심사와 동학들이나, 젊은 국문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책의 역사’를 쓰고 싶다. 책과 출판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지식의 역사를 망라하는 저작이다. 초고를 마련해 두었으나 상당 기간 손을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처럼 한국의 풍속사를 써 보고 싶다. 더 장기적으로는 국가(조선)가 인간을 어떻게 구속해 왔던가 하는 문제를 역사적으로 해명해 보고 싶다.

아직 나는 새파란 나인데, ‘젊은’ 국문학자에게 한 마디 하라니, 별로 기분은 좋지 않지만(?), 굳이 한 마디 하자면 이렇다.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냥 지적인 작업을 통해 자기 충족감을 누리는 데 만족하는 것이 인문학자로서의 삶인 것 같다.

또한 기존 학설이나 선배에게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상상력을 키웠으면 한다. 특히 과거 한국문학사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은, 민족의 우월이나 순수를 믿고, 민족사의 영광을 입증해 나가려는 역사, 문학사, 예술사 서술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내셔널리즘을 정당화하려는 서사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야 다양한 상상력의 가능성이 생긴다. 국가와 민족이 은폐했던 다른 주체들이 보일 것이다. 국문학 서적은 물론이지만, 그 외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독서하기를 권한다. 아마도 거기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김혜진·최익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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