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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이론 관점에서 본 르네상스 예술·과학의 역사
카오스이론 관점에서 본 르네상스 예술·과학의 역사
  • 계영희 / 고신대 정보미디어학부 겸 유아교육과
  • 승인 2007.09.1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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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제연구 사례] _ 미술과 수학

복잡계(complex systems)연구는 현대과학의 한계에 부딪친 후, 1970년대 중반 카오스이론으로 시작되는데, 물질의 상태를 질서, 카오스, 무질서로 구별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카오스(chaos)=무질서’였으며, 카오스는 질서(cosmos)와 맞서는 말이었다. 그러나 복잡계 연구에서는 질서정연했던 물질의 상태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될 때 카오스라고 부른다. 또한 물질이 A상태에서 B상태로 넘어갈 때 중간의 어정쩡한 즉, A도 아니고 B도 아닌 모호한 상태를 相轉移현상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얼음에 열을 가하여 물을 만들 때, 물과 얼음의 중간 단계가 상전이가 되는 것이다. 상전이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요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요동(fluctuation, purturbation)은 외부로부터의 정보나 압력 등으로 상전이에서 분자들이 흔들리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요동이란 안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태이며 요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상전이는 결코 발생할 수가 없다.

카오스이론의 시각으로 수학과 미술의 역사를 중세, 르네상스, 근대(17~18세기)에 주목하여 조망해 보면, 거시적으로는 르네상스시기가 중세와 근대의 상전이 현상의 시기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갈 때, 또 르네상스의 전성기에서 바로크시기로 넘어갈 때도 역시 상전이현상이 발견된다. 이러한 고찰은 문화와 역사가 복잡계의 전형이므로 전체가 부분 속에 들어있는 프랙탈 이론의 자기상사성(similarity)과 매우 흡사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르네상스는 중세와는 다른 인간중심적인 예술품이 만들어졌으며 실험과 관찰의 과학적 탐구심 또한 대단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해 미켈란젤로, 보티첼리가 그 증거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는 분명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상전이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는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로 접어드는 13~14세기에 주목하여 보자. 이 시기에는 7, 8차례의 십자군 원정과 이로 인해 발생한 도시, 도시의 발달로 생겨나는 다양한 직업의 발생과 이탈리아 인문학자들과 마르코 폴로의 등장이 사회적인 요동으로 작용을 한다. 마르코 폴로에 의해 개척된 실크로드는 아라비아 상인들의 상거래를 활발하게 하면서 로마숫자보다 편리한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해 마침내 르네상스의 상업산술을 촉진시켰으며, 상업산술은 근대 수학의 밑거름이 됐다.

미술 분야에서는 치마부에, 지오토, 둣치오 등의 화가들이 중세미술의 전통적 시각과 화법에서 벗어나 일대 혁신을 일으킨다. 3차원적인 공간의 깊이가 표현되는 이른 바 원근법적 묘사가 도입됐다. 르네상스 미술의 전조현상이자 요동인 것이다. 한편 수학에서는 수학자들의 내적인 욕구에 의해서 13세기 초부터 근대를 향한 요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보나치는 ‘계산판의 책’, ‘제곱근의 책’, ‘실용기하학’을 출판했고, 브래드와딘은 ‘연속체론’을 저술한다. 연속체 개념은 19세기말 데데킨트와 칸토어에 의해 정립돼 수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매우 획기적인 개념인데 500년을 앞선 브래드와딘의 연구와 14세기 니콜 오렘의 무한급수의 연구는 근대 수학을 향한 강력한 요동이었다.

 
르네상스의 전성기인 15세기에도 여전히 다양하게 발생하는 요동의 현상을 살펴보자. 144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기는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혁명과 근대를 열어놓는 큰 요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그의 연설문, 설교문 등이 인쇄기로 찍혀 유럽으로 퍼져나가 다른 나라의 종교개혁을 가속화시켰으며, 라틴어로 번역된 유클리드 기하학의 ‘원론’을 인쇄해 수학적 마인드가 살아나게 했다. 또한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의 희망봉 발견 등은 15세기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공간 개념을 뒤흔들어 놓은 요동이다. 기하학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간관’이기 때문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다시 새롭게 연구하기 시작해 단일한 공간 안에 정확한 비례로 표현되는 원근법(투시화법)을 창조하기도 했으며, 촉각적기하학(tactile geometry)인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시각적기하학(visual geometry)인 射影기하학을 발아시켰다. 결과적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임의의 직선은 양끝이 무한히 연장 된다”는 진리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 놓았고, “임의의 직선은 양끝을 무한히 연장하면 만난다”는 공리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영기하학을 출현시켰다.

16세기 르네상스 중반부터 바로크양식이 나타나기 전까지 매너리즘의 화가 파르미지아니노와 틴토렛토가 등장을 한다. 파르미지아니노는 일반적인 비례법칙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성모상을 그리기 시작을 했고, 틴토렛토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파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식탁의 급격한 사선으로 화면 전체에 긴박감과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켰다. 중앙에 앉은 예수의 얼굴 주변의 범상치 않은 후광과 천장에 매달린 등잔불의 신비로운 분위기, 마치 구름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 한 천사들의 형상은 음산한 분위기까지 창출하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의 완벽함에서 벗어나 왜곡된 형태와 불균형의 구도, 그리고 다양한 색채 등을 구사하며 새로운 개념의 미를 추구하려했던 매너리스트들의 노력은, 먼 훗날 미래의 현대미술이 보여주게 될 실험정신에 버금가는 혁신적이고 선각자적인 요동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한편 수학에서는 레티쿠스의 사인·코사인의 가법정리, 2배각, 3배각의 삼각함수 연구, ‘복식부기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우는 파치올리의 연구, 네이피어의 로그발견, 헨리 브리그즈의 상용로그 발견 등은 근대 수학의 여명기를 장식했는데 17세기 과학혁명을 위한 요동이면서 이 시기는 르네상스와 근대의 상전이현상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고찰은 문화와 역사가 복잡계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계영희 / 고신대 정보미디어학부 겸 유아교육과


 

필자는 홍익대에서 ‘흐름에서 회귀성과 연쇄회귀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분적분학과 자연주의 미술’, ‘유클리드 기하학과 그리스의 미술’ 등 수학과 미술을 연계한 다수 논문과 ‘명화와 함께 떠나는 수학사 여행’ 등의 저서가 있다.

■ 본 연구는 2003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KRF-2003-042-C00003)지원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오진경 이화여대 교수(미술사학과)와의 공동연구입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그림 위)과 틴토렛토 ‘최후의 만찬’. 바로크 양식이 나타나기 전까지 등장한 매너리즘의 화가 틴토렛토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같은 르네상스 미술의 완벽함을 벗어나 새로운 개념의 미를 추구한다. 이는 17세기 과학혁명을 위한 요동, 르네상스와 근대의 상전이 현상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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