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다양성을 위해 서울대에 마르크스 경제학 교수가 필요하다.” 내년 정년퇴임을 앞둔 김수행 서울대 교수(경제학부)가 최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가 주최한 민교협 포럼 초대 발제에서 ‘정치경제학’ 강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교협은 13일 서울대 박물관 강당에서 첫 번째 민교협 포럼을 열고 ‘신자유주의시대와 학문’을 제목으로 김 교수에게 초대 발제를 부탁했다. 조흥식 서울대민교협 회장은 “정년퇴임전의 기념 고별강연”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서울대 교수’라는 겉옷을 벗고 자본론 강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마르크스경제학 행상’이 처음은 아니다. 1987년 한신대에서 정운영, 박영호 교수와 함께 ‘사실상’ 해임된 후 1989년 서울대에 임용되기까지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정치경제학을 강의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 재직 중의 최대연구 성과는 ‘자본론 번역’이라고 말했다. 런던에서 받은 경제학 박사학위도 원래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이었다.
“군부정치 상황이 겁나 지도교수와 논의해 ‘공황이론’으로 제목을 바꿨다. 마르크스 공부한 걸 숨겨야 했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에 임용되자마자 그는 ‘자본론’을 냈다. 앞서 자본론을 펴낸 철학과현실사가 된서리를 맞은 직후였다.
김 교수는 “시절이 시절이라 나도 각오했지만 서울대 교수였기 때문에 검찰이 움직이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고하면서, 학문의 다양성을 위해 “서울대에 정치경제학 교수가 꼭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를 전공하고도 주류경제학이 지배적인 서울대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건 6월 항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년 전 당시 대학원생과 학부생들이 정치경제학 전공자를 임용하자고 격렬히 나섰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여전했다. 어눌한 경상도 억양으로 “신자유주의는 쇠퇴합니다”, “마가렛 쎄처는 ‘깡패’인데 정치인들이 닮겠다고 해요”, “다른 유형의 자본주의로 넘어가려면 새로운 이론, 새로운 정권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2007년, 학생들의 관심은 변했다. 자본론의 역자, 김 교수의 공식적인 고별강연장이었지만 150여 석 중에 20여 석만 찼다. 행사를 준비하던 민교협 교수와 학생들을 제외하면 빈 시트만 눈에 들어왔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33명. 이 중 대부분이 미국에서 주류경제학을 공부했으며 김 교수만이 마르크스 경제학 을 전공했다. 내년 김 교수가 정년퇴임하면 사실상 마르크스 경제학 ‘교수’는 사라진다.
민교협 포럼은 매년 6회 이상 개최될 예정으로 올해 3회 정도가 잡혀 있다. 포럼 취지는 ‘우리시대의 중요한 문제의 진보적 해결, 대중화-운동화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