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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삶과 진리의 갈등 사이에 있다
철학은 삶과 진리의 갈등 사이에 있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1.11.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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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2 17:57:05
철학자들은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진지하게 물어봄으로써 단순한 편의위주의 인간활동이 허무함을 보이는 것이 철학자들의 학문활동의 주된 목표다. 이런 철학자들의 활동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 삶의 질의 향상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면의 어두운 부분들을 조명함으로써 균형을 잡고자 한다. 철학은 과학과 배치되지 않고 과학의 맹목적 합리성을 지도하는 이성을 제시한다.

10월 26일~27일에 걸쳐 열린 제14회 ‘한국철학자 대회’(한국철학회 주최, 원광대학교 주관)가 그 주제를 ‘생명공학시대의 철학적 성찰’로 내걸은 것은 시의적절하다.
성진기 전남대 교수(철학)는 ‘생명공학, 그 어두운 함의들’에서 생명체가 특허라는 상업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반대와 나찌에 의해 체계적으로 자행된 우생학의 부활을 가능케하는 생명공학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막대한 연구비가 지원되는 생명공학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윤리적 고찰 없이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황상익 서울대 교수(의학)는 “현대의학의 눈부신 성과 뒤에 가려진 것은 환자를 진정으로 돌보는 전인성(全人性)의 상실”이라고 지적했다. “종교가 소수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할 때 억압적 성격을 띠듯, 의료과학도 신비화되면서 인간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으므로 이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윤천근 안동대 교수(철학)는 ‘절대적 윤리, 존재의 논리’라는 논문에서 “인간은 존재세계에 대해 권능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현대인간의 오만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인간과 자연은 조화를 이뤄야하고 자신이 자연생명체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서 송상용 한림대 교수(인문학부)의 ‘생명공학의 도전과 윤리적 대응’과 최일범 성균관대 교수(유학동양학부)의 ‘남명철학의 입장에서 본 생명공학시대’의 논문도 생명공학의 무분별한 활동에 대해여 철학적 비판의 칼날을 휘둘렀다.
이어서 한국철학회 소속의 각 분과학회모임의 발표를 통해 생명공학과 철학적 윤리의 적절한 관계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구영모 울산대 교수(의료윤리)는 ‘생명의료윤리’라는 논문에서 임신중절, 안락사, 뇌사와 장기이식 등의 주제를 윤리이론에 대한 배경설명과 더불어서 사례에 대한 학생들간의 토론을 통해서 문제중심의 수업진행의 장점을 보여주었다.

한편 김선희 박사(서강대)는 ‘칸트의 초월자아와 인격의 문제’에서 “인격적 존재에게 요구되는 책임의 근거, 주체성의 근거, 실재론적 근거, 공동체적 근거를 만족시키기위해 개별적 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배상식 박사(경북대)는 ‘현대 생명기술시대에 대한 하이데거적 반성’이라는 논문에서 “하이데거가 인간중심이 아니라 동식물 그 자체에서 생명의 본질문제에 접근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이데거가 존재의미를 드러내는 터전으로서의 세계에 대해 인간과 일반유기체의 생명현상을 연결시켜 탐구한 것은 근본적으로 기술적,계산적 사유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구인회 박사(서강대)는 ‘낙태에 대한 윤리적 고찰’을 통해 “임신중절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충진 박사(성균관대)는 ‘장애신생아치료의 윤리성’에서 칸트주의적 관점에서 신생아치료의 정당성에 대한 윤리적 고찰을 하였다.
이 밖에도 양해림 박사(강원대)의 ‘생명공학시대의 인간복제와 책임윤리’, 송안정 박사(성균관대)의 ‘한스 요나스의 자유의 목적론’, 김종국 박사(고려대)의 ‘도덕형이상학에 대한 사회윤리적 독해’, 홍일희 박사(전남대)의 ‘니체의 생명사상’, 이혜정 박사(외국어대)의 ‘도덕 이론과 임신중절’, 맹주만 박사(중앙대)의 ‘인간의 본성과 유전자 조작’, 황순우 박사(성균관대)의 ‘칸트와 생명윤리’ 등이 발표되었다.

이번 철학자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생명윤리에 대한 철학자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 학술대회였다. 한편으로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리려는 인간의 간절한 희망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의지사이에 발생한 갈등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철학자들의 비판적 사고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사실을 철학자들이 더 이상 간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철학은 사회와 현실로부터 격리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가깝게 밀착해서 사유해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철학적 사유의 궁극적 목표인 진리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검증되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반드시 인식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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