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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관점’과 ‘종합적 시각’의 의미들
‘명확한 관점’과 ‘종합적 시각’의 의미들
  • 교수신문
  • 승인 2007.09.1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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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서평_ 『박정희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 (서울대출판부)·『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역사비평사)

진보학계를 대표할만한 원로·중진 학자들의 박정희시대론들 두 편이 출판되어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하나가 김수행·박승호 저, 『박정희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이하 『박정희체제』)이며, 또 하나는 조희연 저,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이하 『개발독재시대』)이다.

두 책들은 박정희시대에 대한 학계의 논의지형이 ‘보수’의 헤게모니 아래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뉴 라이트’ 논자들의 담론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뉴 라이트’가 애용하는 방법은 ‘선별하여’ 기억하고 말하기이다. 예컨대 ‘임금의 평균적 상승’을 이야기하지만 ‘세계최장의 노동시간’은 누락시킨다. ‘높은 경제성장고’에 대해 논하면서 ‘잔혹한 국가폭력’과 ‘자본전제의 일상성’은 소거한다. 박정희정권기의 ‘독재’가 그저 다소간의 언론자유와 정권교체를 잠정 유보한 정도에 불과했다는 듯이 말이다. 『박정희체제』와 『개발독재시대』는 ‘뉴 라이트’ 논자들이 ‘의식적으로 망각하는’ 박정희시대의 면모들을 서술하며, 이로써 그들의 박정희시대론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성을 들춰낸다. 기회만 닿으면 ‘사실에 입각한 역사’를 부르짖는 이들이 바로 ‘뉴 라이트’ 논자들이기 때문이다.

‘뉴 라이트’의 박정희시대 찬미는 당시에 특정 층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집중된 심대한 ‘고통들과 희생들’을 그들이 미처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박정희시대에 대한 비판들을 산업화가 성숙된 시점에나 적용할 수 있는 발상들로 박정희정권을 단죄하는 비현실적 입장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산력이 고도화된 현 시기의 사안들과 관련해서도 ‘성장제일주의’ 또는 ‘발전주의’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뉴 라이트’ 논자들이다. 그들은 한나라당의 집권을 갈망하며, 한나라당정권을 매개로 권력블록의 성채를 더욱 공고히 만들려 한다. ‘보수’의 ‘박정희 숭배’는 특정한 권력의지와의 연관 속에서 생산․유포되는 담론이다.   

반면 『박정희체제』와 『개발독재시대』는 공히 박정희시대를 성찰과 지양의 대상으로 삼는다. 『박정희체제』는 “현재”의 “상황에서 박정희체제가 부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박정희체제가 내세운 ‘부르주아 민족주의’는 앞으로도 서민들의 삶을, 특히 재벌들에게 바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지금과 같은 불평등한 자본주의적 계급사회를 ‘확립한’ 정권”이 “박정희정권”이었다고 파악한다. 그들에게 박정희정권기 경제개발은 단순한 물질적·기술적 성장이 아니라 임노동/자본관계라는 특수한 사회관계가 확산․일반화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일상에서 흔히 목격·체험되는 임노동/자본관계의 모순(‘홈에버 사태’는 아주 극적으로 표출된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이다)이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전국화되고 본격적으로 노정되기 시작한 국면이 박정희정권기이다. 이렇게 저자들은 자본주의의 ‘외부’를 상상하며 박정희시대를 논한다.

『개발독재시대』는 박정희정권이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진척시켜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기보다 더욱더 해체의 위기상황으로 내몰려간 요인들과 과정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동일한 시계열상에서도 ‘보수’ 논자들이 박정희정권의 ‘성공’ 이유들 및 과정을 기술하는 데에 열중한다면, 『개발독재시대』는 반대로 박정희정권의 ‘위기-붕괴’ 이유들 및 과정을 추적한다. 조희연 교수는 그러한 “지속 불가능”의 결정적 요인을 “민주주의와 복지”의 부재에서 찾고, “포스트-박정희의 대안모델”이 충족시켜야 할 최소 요건들로 “민주주의와 복지”를 제시한다.  

『박정희체제』와 『개발독재시대』는 ‘뉴 라이트’와 대립한다는 면에서 일정한 공유지대를 갖지만, 아울러 상이한 독자적 문제설정들을 담고 있다. 전자의 그것은 “명확한 관점”이고, 후자의 그것은 “종합적 시각”이다.

『박정희체제』의 “명확한 관점”은 “계급관계의 관점”이다. 이에 따르면 “박정희체제”(1961~1987)는 국내외의 자본 우위적 계급관계들이 “성립”시켰고, 기본적으로 저항들에 의한 그 동학의 변화에 따라 “몰락”하였다. 그리고 “박정희체제”의 독재와 개발은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으로 파악되며,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삼”는 차원에서 논의․평가된다. 최근까지 박정희시대를 “계급관계의 관점”,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삼”는 시야 속에서 연구한 성과는 거의 없다. 그러한 경우는 잘 해야 리뷰의 형식을 빈 글이다. 아니면 본격적 연구라 해도 ‘자본주의 비판’의 문제의식이 ‘민족주의적 발상(민족경제론)’에 의해 주변화 또는 유실되어버린 것이다. 이 같은 학계의 현황과, 또 탈냉전이 ‘지구적 자본주의’로 귀결된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문제성이 사라지지 않고 매일매일 재현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김수행·박승호 두 교수들의 책은 각별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보수’의 박정희시대론과 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이병천 교수의 역사서술에 대한 비판이 역시 반갑다. 나는 그 동안 거기에서 생산력주의와 진화론적 사관에 경도되어 박정희시대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인식론적 토대를, 논자 스스로 허물어버리는 모습을 확인해온 터이다.

『개발독재시대』의 “종합적 시각”은 기왕의 진보적 역사쓰기에 대한 반성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조희연 교수는 책에서 “진보적 시각을 바탕”으로 하되 “보수와 진보를 넘어 객관적인 개연성을 갖는 논의를 포함하고자” 한다. 비평자에게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과거 많은 진보적 논자들이 관성적으로 견지하여온 전후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과 전망, 즉 ‘종속의 심화’, ‘허구적 발전’, ‘국민경제의 파탄’ 등을 거둬버렸다는 것이다. 그러한 진단 및 전망은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그 저변에는 역설적이게도 비판대상과 공유하는 발상(발전주의 및 근대화론)이 깔려 있다. 그런데도 ‘진보’ 논자들 다수가 박정희정권기의 ‘발전’과 ‘근대화’를 사실로서 긍정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조희연 교수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 박정희정권기의 문제상황들이 ‘지체된 근대’, ‘왜곡된 근대’의 산물들이 아니라, 지구 어디에서도 전형을 찾을 수 없는 ‘정상적 근대’의 소산들이라는 점이 포착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 조희연 교수는 비슷한 연륜과 경험들을 가진 여타 연구자들에 비해 혁신적이다.  

『박정희체제』와 『개발독재시대』는 마냥 ‘좋은 책들’일까? 아니다. 자신들의 문제의식들을 공언한 만큼 책 안에서 잘 녹여냈는지가 냉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박정희체제』는 자인하는바, “우리가 연구해 얻은 것은 겨우 박정희정권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의 장단점을 파악한 것과, 우리의 관점을 좀 더 명확하게 한 것뿐이었다.” ‘논리’에 비해 ‘역사’가 부족하다. 밑받침된 ‘역사’도 매 경우 ‘논리’와 부합하는 것 같지 않다. 여전히 ‘리뷰’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한 ‘서설’ 수준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연코 따를 것이다. 모든 사안들을 오로지 “계급”과 “자본주의”의 문제들로만 이해하는 것은 아닌가? 박정희시대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또 다른 시선들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은 걸까? 비평자로서는 다른 어떤 여지를 읽지 못하였다. 민족주의, 발전주의, 가부장주의, 군사주의 등등이 또한 중요한데 말이다.

『개발독재시대』에서 “종합”은 “객관”과 “과학”, “보편”, “총체” 등의 동의어이다. 정확히 말해 이 개념들은 이데올로기적이다. 실재하지 않으며 실재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한 논자가 현실의 권력관계들 안에서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문제시되는 사태를 달리 이해한다는 점이다. 조희연 교수는 『개발독재시대』를 “객관”과 “보편”의 반열에 놓고자 한다. 하지만 당장 ‘뉴 라이트’ 지식인들이 그렇다고 인정할까? ‘민족’과 ‘조국’을 절대 덕목들로 싸안고 있는 이들은 또 어떨까? 반대로 비평자처럼 단일한 주권관념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사람들은? 더더구나 여성주의자들은? 『개발독재시대』는 앞으로 더 많은 소통과 접속을 통해 말하자면 헤게모니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코 “보편”이나 “객관”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더 솔직해지고 겸허해져야 한다. 그리고 조희연 교수 특유의 색깔을 농염하게 캔버스에 펼치는 것이다.

조희연 교수의 “종합”이나 “총체”가 적어도 사실A와 사실B의 단순 병렬은 아닐 것이다. 그 “종합” 또는 “총체”가 유의미하다면 두 사실들이 동시적으로 출현하여 공존하는 연유, 두 사실들의 연관 등이 설명될 때이다. 그러나 『개발독재시대』의 “종합”과 “총체”가 그런 요건들을 갖추었는지 의문이다. 몇몇 독자들이 『개발독재시대』의 논점을 보수적 평가들에 대한 유연성 내지 부분적 수용으로 받아들이는 실상은 다만 그들의 이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김보현 / 성공회대 연구교수·정치학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박정희시대 경제개발’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 민족주의와 발전』등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노동정치와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진행 중이다.

 박정희 시대를 다룬 저작들

학계의 연구 성과가 일반에게 소개되는 최근 ‘출판’의 경우, 1990년대 초반 양성철의 『박정희와 김일성』(한울,1992)이 맨 앞에 서 있다. 그 다음은 자료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회연구소가 펴낸 『5·16과 박정희 정부의 성립』(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이다.

경제정책 측면에서 조명한 작업은 ’90년대 후반에 가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유광호 등이 공동 저술한 『한국제3공화국의 경제정책』(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이 그렇다. 이후 문현아의 『박정희 시대 연구』(백산서당, 2002), 김삼수와 서익진 등이 공저한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창비, 2003), 공제욱·조석곤이 펴낸 『1950~1960년대 한국형 발전모델의 원형과 그 변용과정』(한울아카데미, 2005), 정성화가 편저한 『박정희 시대 연구의 쟁점과 과제』(선인, 2005)가 나왔다.

2006년은 풍성한 한 해였다. 『박정희 시대의 재조명』(김용서 등저, 전통과 현대), 『박정희와 한국경제』(설봉식, 중앙대출판부),『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장문석 등저, 그린비), 『박정희 평전』(전인권, 이학사), 『박정희 시대와 한국 현대사』(정성화 편저, 선인),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김보현, 갈무리), 『박정희와 유신체제』(김행선, 선인)등이 잇따랐다.

최근에는 홍성태의 『개발주의를 비판한다: 박정희 체제를 넘어 생태적 복지사회로』(당대, 2007), 박태균의 『원형과 변용: 한국경제개발계획의 기원』(서울대출판부, 2007) 등 ‘대안’과 ‘기원’ 탐색에 방점을 찍은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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