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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 거듭 후퇴 … 법인 권한은 더 늘어
‘공공성’ 거듭 후퇴 … 법인 권한은 더 늘어
  • 교수신문
  • 승인 2007.09.1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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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_ 사립학교법, 어떻게 바뀌어 왔나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양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
지난 1963년 제정된 이후 40차례에 걸쳐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목적이다. 45년 동안 여러차례 손질을 거친 사립학교법이 그 목적대로 사학의 ‘공공성’을 키워 왔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지난 45년간 사립학교법의 자주성과 공공성을 둘러싸고 사학재단과 교육주체가 벌인 ‘시소게임’의 역사라고 보는게 적절하다. 이해관계자들에게 사립학교의 ‘자주성’은 재단측의 권한 확대로, ‘공공성’은 재단의 권한 약화로 줄곧 해석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요 개정 시기마다 사학재단측과 대학구성원들의 대립으로 얼룩졌고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사립학교 설립이 남발되던 1963년에 제정된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설립·운영 규정 목적과 함께 사학을 규제하려는 의도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제정 이후 사립중고등학교협의회와 대학교육협의회 등은 즉각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당시 일부 사립대학의 학생 정원초과 모집과 불법적인 학원운영이 문제가 되면서 사학재단측의 의도와 달리 사학에 대한 감독권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이후 사립학교법 개정은 1975년 대학교원 재임용제도가 새로 신설된 것을 제외하고 큰 변화는 없었다. 

1981년, 사학법인 간섭 ‘최소화’ 개정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제안으로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역설적이지만 가장 공공성에 무게를 둔 법안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골자는 △설립자 또는 설립자의 친인척과 처의 3촌 이내의 혈족 관계에 있는 자는 이사회 3분의 1 초과 금지 △학교의 장에게 교원 인사권 부여 △이사장의 다른 학교법인 이사장 겸직 금지 등으로 사학재단의 간섭을 최소화 한 것이다. 여기에는 정권의 사회 부조리 척결정책과 학생시위를 무마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었다는 후문이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국사학과)는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대학가에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시기에 사회부조리 척결과 함께 학생 시위를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다”면서 “학생 시위가 학원 비리로 시작했다고 판단을 내린 정부가 재단의 독단적인 학교운영을 막는 위해 (사립학교법을) 개정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사학재단측의 거센 항의로 1985년, 90년 두차례 개정되면서 급격히 후퇴하게 된다. 사학재단의 이해를 반영한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면서 다시 재단측의 권한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1984년 이봉모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27명은 “사학경영자의 투자의욕을 높이고 대학 자주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대학 설립자의 총·학장 취임제한 규정 삭제 △교원 임면권 이사회에 부여 △이사장·학교장 임용에 대한 감독청의 승인 삭제 등을 규정한 법안을 발의 했지만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이어 1985년 김일윤 의원 외 국회의원 19명이 발의한 법안이 확정됐다. “학교법인에게 학교예산에 대한 심의권과 결의권을 부여하고 대학의 총 학장에 대한 취임제한규정을 완화함으로써 사학의 자율성 신장 및 사학경영자의 의욕을 제고하여 사학의 건전한 육성을 도모한다”는 것이 개정 취지였다.

’90년 민자당 주도 ‘개악’…재임용 탈락·사학 비리 봇물
1990년대 들어 사학의 권한은 더 강화됐다. 1990년 사립학교법은 2005년 개정 전까지 그 기조가 유지되면서 ‘최대 개악’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만 했다. 사립학교법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 주도로 △기존에 금지되었던 이사장의 다른 학교법인 이사장 겸직 허용 △학교장 임명 시 관할청 승인 규정 삭제 △교원 임면권 학교법인에 부여 등이 개정됐다. 이는 법안 통과를 주도한 민자당조차 일부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면서 재개정을 추진할 정도로 개악 소지가 다분했다.
당시 정원식 문교부 장관은 개정 사립학교법 통과에 즈음해 담화문을 발표하고 “이사장과 이사의 승인취소권 등 철저한 감독권 행사를 통해 사학재단에 부여된 권한만큼 책임도 함께 지도록 엄정한 법운용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법인측에 비판적인 교수들의 재임용 탈락 사태로 이어졌다. 1990년 성낙돈 덕성여대 교수(교육학과)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한상권(덕성여대), 오은희(서울예대), 김동우 교수(세종대), 조광제 교수(한동대) 등이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지난 2003년 교육부가 기간임용제 헌법불합치판결 이후 조사한 재임용 탈락 교수 현황에 따르면 전국 81개 대학에서 1990년도 이전에는 77명, 1990년도 이후에는 250명의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된 것으로 집계됐다.
 1999년 강단에 복귀한 성 교수는 “재임용제도가 70년 중반부터 실시돼 왔지만 사실상 사문화 됐었다”면서 “전까지 악용하는 사례가 없었다가 1990년에 개정되면서 재단측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재단에 권한이 집중됐을 때 그 폐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상문고, 경기대, 대구대, 경인여대, 동덕여대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학비리도 1990년대 이후에 두드러졌다.
1999년도 한 차례 더 학교법인의 권한을 확대한 법 개정이 이뤄진 뒤 교수·직원·학생·학부모 단체는 ‘민주적사립학교법개정과부패척결을위한국민운동본부’(이하 사학국본)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사립학교법 개정 운동에 돌입했다. 2000년 민주당 등 민주적인 사립학교법 개정이 몇 차례 시도 되다가 결실을 보게 된 것이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2005년 사립학교법이다.
사립학교법이 정부의 개혁입법으로써 입법 의지도 컸지만 교육시민단체와 국민적 개정 여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물론 학교 폐쇄, 학생모집 거부 등으로 배수진을 친 사학재단과 종교계의 반발로 개정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결국 올 7월 ‘개방형 이사제’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할 만큼 사립학교법이 다시 개정되면서 개악 시비는 그치지 않고 있다.
임재홍 영남대 교수(법학)는 사립학교법 개정 과정에 대해 “공공성을 강화했다는 1980년 사립학교법은 파시즘적 통제를 목적으로 만든 법이었고, 노태우 정권 이후에는 개악의 역사”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엄격하게 보면 2005년 개정도 국가와 학교법인 양자간의 문제였다”면서 “교수와 학생이 중심이 되는 대학의 자주성 실현을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은 아직 한번도 없었고 당분간 요원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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