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4:25 (화)
[대학정론]다시 종교를 생각한다
[대학정론]다시 종교를 생각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09.10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탈레반 인질 사건을 계기로 종교가 다시금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대표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인 이어령 이화학술원 석좌교수가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평생을 성자처럼 살다 간 테레사 수녀가 신의 존재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졌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의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하고 있다.
종교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인질 사건과 관련되어 시사적인 게 사실이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지난 몇 년 간 상당히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다. 이른바 ‘지적 설계’라는 새로운 포장을 두르고 재등장한 창조론이 미국 사회에서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데 대한 반응으로 2006년부터 거물 학자들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2006년 2월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저서 『브레이킹 더 스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적어도 4권의 중요한 저술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는 오래 전부터 종교를 문화현상으로 이해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데닛은 그의 저서에서 종교를 자연현상으로 설명한다. 분석해보면 같은 주장이다.
2006년 9월에는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옥스퍼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더 가드 딜루젼』이 출간되었다. 최근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이 책에서 도킨스는 종교란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서 9-11 테러를 비롯한 온갖 흉악한 역사의 주범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The Creation』을 내놓았다. 데닛과 도킨스의 책이 종교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과는 달리 윌슨은 종교와 손을 잡자고 제안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엄청난 환경위기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려면 21세기 양대 권력구도인 종교와 과학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것이 윌슨의 지론이다. 이 책 역시 머지않아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올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정치학자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근저 『가드 이즈 낫 그레이트』가 2007년 5월에 출간되어 현재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 책은 데닛과 도킨스의 저술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종교의 폐해를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다. 이제 곧 테레사 수녀의 일기도 책으로 나온다고 하니 ‘종교 논쟁’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 같다.
이참에 우리도 종교에 관한 본격적인 학술연구의 기반을 마련했으면 한다. 종교, 과학, 사회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 또는 연구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21세기의 학문이 당장 입에 풀칠할 것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삶의 질을 연구할 때가 되었다.

최재천 / 논설위원·이화여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