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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中國 散策] ‘개혁개방정책’ 30년
[이중의 中國 散策] ‘개혁개방정책’ 30년
  • 교수신문
  • 승인 2007.09.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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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蜀道’에 뚫린 서안고속도로, ‘제2 長征’ 계속된다

□ 중국은 지난 2005년 동중국해 연안의 롄윈(連云)항과 중국 대륙의 서쪽 끝 도시 훠얼궈쓰를 동서로 연결하는 4800km 구간을 고속도로화하는 ‘신(新)실크로드’ 건설 공사를 진행했다.

한국과 수교한지 불과 15년, 모택동의 시 구절을 인용한다면 “손가락을 튕기다 말” 정도의 아주 짧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을 세월인 데도 중국은 지난 15년 사이 엄청난 변화와 발전의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모택동은 그의 첫 혁명 근거지인 정강산을 38년 만에 찾으면서, 서른여덟 해 세월을 손가락을 튕기는 짧은 한 순간에 비유했었다. 38년에 비하면 15년은 정말 짧기만 한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란, ‘世上無難事 只要肯登攀’의 존재인가, 마음먹고 하려고만 한다면 세상에 못해낼 일이 없는 것 같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혁 개방 정책을 편지는 30년이 된다. 그 사이 15년은 한국과 중국이 교류를 확대한 기간이다. 서울 올림픽은 1988년, 북경 올림픽은 2008년, 20년의 시차가 있다. 수교 당시의 한국과 중국의 경제력도 아마 20년 정도의 시차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상호 교류가 필요했던 것인데, 지난 15년은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추월하는 시간이었다. 두 나라 관계가 밀접해지면 밀접해질수록 한국은 더 이상 중국을 얕볼 수 없게 되고, 중국은 그만큼 한국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나오는 형국이 되고 있다.
10년의 문화대혁명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나라를 추스르고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야말로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였다. 공산 정권 수립 이후 인민공사,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쳐서 정반대의 이념과 정책인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이 다시 일어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중국의 현대사야말로 세계사에 前無後無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이 극적인 장면 장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세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8월 25일자 ‘人民日報’ 해외판을 보니 산과 숲을 뚫고 지나가는, 새로 건설된, 시원한 고속도로 사진 하나가 눈길을 끈다. ‘西漢高速公路가 곧 全線 개통될 것’이라는 작은 제목에 ‘蜀道眞正告別 “行路難”’이라는 큰 제목이 달려있다. 사진으로 보는 새 고속도로는, 2002년에 착공하여 거의 완성된 西漢고속도로 광경인데, 왕복 4차선 도로이지만 산과 산 사이로 높은 교각을 세워 만든 것으로 하나의 壯觀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고속도로는 섬서성의 西安과 漢中시를 잇는 것으로 장차는 사천성의 成都까지 이르게 된다. 옛날부터 서안과 성도 사이의 험준한 길을 ‘蜀道’라 했다. 옛날 三國志에 나오는 촉나라로 가는 길이 바로 촉도인 것이다. 산이 얼마나 높고 험했으면 시인 李白이 “蜀道之難 難于上靑天!”이라 했을까. 특히 이 구절을 모택동이 좋아했다고 한다. 이백의 작품 중에서도 ‘촉으로 가는 친구를 보내며(送友人入蜀)’라는 시가 유명하다. 한때 촉나라 땅에서 살아서 이백은 누구보다도 촉도의 험난함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좋지 않은 일로 친구가 부득이 촉나라로 가게 된 모양이었다.

잠총이 열었다는 촉나라 길은/ 험하기도 하여라 어이 가시리/
얼굴 앞에 갑자기 산이 치솟고/ 말머리에서 돌연 구름이 이네/
꽃나무 우거진 잔도를 지나면/ 봄 강물이 촉성을 에워싸네/
사람의 운명이란 정해져 있어/ 굳이 군평에게 물어 무엇하리

   고래로 촉도는 높은 산이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어서 길을 내기가 아주 힘들다. 가파른 벼랑의 바위를 일일이 쪼아야 겨우 길이 된다. 그걸 ‘棧道’란 한다. 옛날 蠶叢이란 사람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한다. 사천성 사람들이 외지, 특히 중국의 중심부로 나가려면 長江을 이용하거나 이 잔도에 의지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등소평이 프랑스로 고학 길을 떠날 때에도 장강, 즉 양자강에 올라 상해를 거쳐서 프랑스로 갈 수 있었다. 이 시에 나오는 君平은 한나라의 이름 높은 선비 嚴遵의 字이다. 학문도 높고 운세와 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람이다.
드디어 蜀道에도 시원한 고속도로가 뚫린 것이다. 이제 촉도는 그 옛날의 촉도는 더 이상 아닌 것이다. 30년 개혁 개방 정책의 결과물이 이렇게 나오고 있다. 그 중심에 등소평이 있다. 나는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란 책에서 “모택동이 산이라면 주은래는 물이고, 등소평은 길이다. 산은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고 적었다. 모택동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호남성 韶山 출신이고, 주은래는 강소성에서 물의 도시로 알려진 淮安에서 태어났다. 인간적인 성격이나 정치적 행동 양식에서도 두 사람은 산과 물로 하나의 대칭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등소평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그는 바로 사천성의 廣安 출신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경을 거쳐서 뱃길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그 험한 잔도를 따라 중원에 이를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살 길을 찾아야 했고, 중국의 살 길을 열어야 했다. 그는, 그 유명한 ‘白描黑描’로 배고픈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외쳤고, 사상을 개조하고 마음을 열어서 개방과 개혁으로 나라를 새로 일구자는 데에 앞장섰다. 중국의 비전과 진로를 새롭게 명시했다. 그것이 중국이 새로 나아가야 할 ‘길’이었다. ‘개혁 개방’을 중국에서 ‘제2의 長征’이라고 일컫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고속도로의 개통과 더불어 이제 촉도는 진정으로 ‘行路難’과 고별을 하게 되는 것일까. 숱한 문제점을 안으면서도 중국의 제2 장정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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