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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학력검증 지금도 가능하다
[기고]학력검증 지금도 가능하다
  • 김덕규 / 경북대·한국공학교육인증원 부원장
  • 승인 2007.09.0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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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씨의 학력위조가 드러난 이후 이어지는 유사한 사례들을 보면서 ‘학벌중심사회의 폐해가 드러난 것’, ‘거짓이 횡행하는 사회가 문제’라는 지적부터 현재의 학위등록제도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검증기관을 설립해야한다는 대안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전공분야와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이 생기거나 없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학위검증 대행기관이 과연 적시에 정확한 검증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학위검증의 대행기관이 중간에 끼어 있어 검증의 책임소재 공방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외국학위는 미국 학위다. 미국은 대학설립의 원칙이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법령에 의해 규정된 면적, 시설, 교수진 등 기준의 만족여부 등으로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대학설립을 인가받을 수 있는, 소위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대학설립 선언주의에 따라 대학의 설립은 신고하는 정도로 가능하다. 따라서 대학의 이름이 남용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 믿을만한 학과인지 여부가 궁금한 민간을 위해서 미국 정부는 학문분야별로 설치된 민간 기구가 심사를 통해 인증(accreditation)을 주며 인증된 프로그램만을 일반에게 공개해 해당 인증기구의 홈페이지에서 언제라도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인증심사에서 탈락하였거나 인증심사를 신청하지도 않은 프로그램은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프로그램은 언제나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지만 ‘나쁜’ 프로그램은 알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는 학문분야별로 수많은 민간 인증기구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을 통괄하는 기구가 미국고등교육인증기구(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 CHEA)이다. CHEA는 학문분야별 인증기구들을 인증하고 대학기관을 직접 인증하기도 한다.
미국 교육부는 대학의 설립여부에 직접 간여하지 않으며 다만 이들 인증기구들을 인정(recognize)하고 권위를 부여할 뿐이다. 지금의 학력위조 문제는 인증을 받은 유명 대학의 졸업자격을 위조한 사기사건과 인증을 받지 못한 비인증 대학 출신이 마치 인증을 받은 대학을 졸업한 것처럼 위장한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신정아씨 사건의 경우는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전자에 해당한다. 비인증 대학들 중에도 드물게는 ‘좋은’ 대학이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소위 ‘학위공장’(degree mill 또는 diploma mill)인 경우가 많으며 이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미국 내뿐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미국학위가 선호되는 다른 외국에까지 해악을 끼치고 있다. 지금 나오는 보도로는 십 수 명의 국내 현직 교수가 학위공장에서 학위를 구입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고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학위증명을 위조하는 경우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걸러질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교수를 임용하는 대학 측에서 출신교에 졸업여부를 조회하면 금방 위조여부를 알 수 있다. 이는 외국 학교의 학력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학생들의 경우에 시행되고 있는 확인제도다. 보태서 지도교수를 포함하는 해당분야 전문가 2~3명의 추천서를 지원자를 거치지 않고 별도로 지원 대학의 총장에게 보내오도록 하면 더욱 확실한 확인이 가능하다. 학위공장에서 구입한 졸업증명으로 의심될 때는 당해 분야의 인증기구를 통해서 인증여부를 확인한다면 괜찮은 대학인지 알 수 있다. 그 이전에 이런 증명이 통할 정도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아니라면 그런 기관 자체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정실이거나 낙하산에 의한 것이 아닌, 정말로 실력 있는 동료를 뽑고자하는 합의가 된다면 학위논문의 내용이나 질을 그 분야의 전문가가 보면 누구라도 실력여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즉 제대로 된 기관이라면 사기로 만든 증명이나 학위공장에서 구입한 학위가 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시도한다하더라도 여기에 속기도 힘들다는 뜻이다. 정말 제대로 된 기관이라면….

김덕규 / 경북대·한국공학교육인증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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