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1 00:30 (일)
학과장 행정능력 강조…타대학 모델 될 수 있나
학과장 행정능력 강조…타대학 모델 될 수 있나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7.09.03 1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_‘학과중심제’카이스트-포스텍

카이스트(KAIST)와 포스텍(POSTECH)의 학과중심제가 구성원으로부터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카이스트는 지난해 서남표 총장 취임 이후 9월부터 학과장중심제를 시행해 학과장이 인사·예산권을 행사하고 있다. 포스텍은 일찍이 주임교수 중심체제로 전환해 학과 특성에 맞게 교수 채용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학과중심제가 정착하기 위해선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구성원들은 “국내 대학 현실에 맞는 학과중심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과중심제가 가능한 이유는 이들 대학이 이공계 특성화대학이기 때문이다. 연구 특성화가 학과 특성화와 직결된다는 생각에 따라 의사결정 과정을 간소화해 선진 대학과의 경쟁에서 순발력을 갖추기 위함이다. 제도 명칭과 운영방식은 다르지만 ‘교수 채용, 예산활용 등을 학과 재량에 맡긴다’는 원칙은 같다.
포스텍은 지난 1999년 10개 학과를 대상으로 행정단위 조직을 구성했다. 각 학과별로 교수 임용을 비롯해 학사과정, 대학원, 홍보방법 등을 결정한다.
대학 관계자는 “학과에 대한 행정지원을 강화했다”며 “더 이상 본부를 통해 학과행정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학과가 행정본부…총장은 거부·승인만
지난해 9월부터는 주임교수직(학과장)을 종신직으로 전환했다. 주임교수는 총장이 선임하고 이사장의 승인을 거쳐 임명한다. 현재 4명을 제외하곤 임기 제한 없이 주임교수를 발령한 상태다. 백성기 차기 총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관련 정책을 유지할지 관심이 높은 가운데 교무처 관계자는 “기본 틀은 그대로 가져가서 개인사정 때문에 주임교수직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계속 직책을 유지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곤 포스텍 교수(화학공학과)는 “교원인사위원회가 있지만 학과에서 채용하기로 한 교수는 교원인사위원회를 대부분 통과한다”며 “학과 특성에 맞게 초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주임교수제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의 학과장중심제는 시행 1년을 맞았다. 23개 학과·전공에서 교수 임용과 승진, 예산집행권을 두고 학과장의 권한이 크게 늘었다. 학과 교수들이 참여하는 학과장선임위원회가 2명을 추천한 뒤 총장이 선임하는 방식이다. 임기는 5년이지만 연임이 가능하다.
교수들은 학과장중심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평가한다. 이태억 산업공학과 학과장은 “학과장중심제의 주요 내용은 권한과 책임의 위임인데, 비교적 잘 돼 왔다”며 “특히 인사권한이 대폭 위임돼 학과중심으로 정착했다”고 전했다.
허훈 기계공학과 학과장은 “서남표 총장이 취임하면서 예산을 학과에 많이 넘겨줬기 때문에 학과 특성에 맞게 예산을 집행한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학과에 위임해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태억 학과장은 “과거에 안건을 상정하면 교수들이 투표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지만, 이제 학과의 중요한 업무에 대해선 학과장이 직접 결정한다. 물론 의견을 묻거나 토론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일선 교수들도 자율적인 학과예산 운영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용희 교수(물리학과)는 “교수 인센티브제를 시행하는 등 학과장 재량으로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 늘었다”고 전했다.

‘총장 버금가는’ 학과장 권한
이에 따라 “학과장 권한이 총장에 버금간다”는 말도 나온다. 반면 권한에 따른 책임도 크다. 카이스트는 학과별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1년마다 학과장을 평가한다. 학과장은 수시로 학장, 교무처장, 부총장, 총장으로부터 업무 점검을 받는다. 특히 학과장의 행정능력이 강조된다. 대학 본부로부터 얼마나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지, 유능한 교수를 임용했는지 여부에 따라 학과장의 성패가 갈린다.
포스텍 관계자는 “학과에서 돈을 벌어 와야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실험실을 꾸릴 수 있다. 연구비를 많이 확보하는 학과일수록 운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의 한 교수는 “학과장 임기가 끝난 뒤 임기 중 예산이 어느 정도 늘었고 채용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이스트, 포스텍의 학과중심제 실험은 타 대학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학과중심제를 뿌리내릴 수 있는 조건을 두고선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학제연구 등 학과 울타리를 넘어 연구교류가 이뤄지는 가운데 학과중심제가 오히려 학과간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카이스트의 한 학과장은 “학과장은 교수가 아닌 행정가의 개념이 크지만, 학과장중심제가 토착화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교수와 학과장의 역할을 동시에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미국은 학과장의 행정경력을 인정해 이후 학장, 총장 등 행정전문분야로 나갈 수 있지만 한국은 학과장들의 희생이 큰 편이다”고 말했다.

학과장 역할 두고 다양한 시각
이태억 학과장은 “자신의 연구와 강의를 다하고 남는 시간에 학과장 업무를 보겠다는 생각을 해선 안 된다”며 “3분의 2 이상의 시간을 학과장 업무에 써야 한다. 강의와 연구를 다 하면서 학과장 일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진곤 포스텍 교수는 “어떤 사람을 주임교수로 기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김 교수는 “외국 대학에선 명망 있고 연구·교육을 잘 하는 이를 주임교수(head)로 선발해 평교수들이 그를 따를 수 있지만, 포스텍은 몇 몇 학과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주임교수가 완벽하다는 인식이 없는 듯하다. 주임교수 역할이 행정에 치우친 것도 미흡한 점”이라고 말했다.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 등 보직을 역임한 서판길 포스텍 교수(생명과학과)는 “교육단위체로서 학과는 필요하지만 연구는 하나의 주제로 가야 하는데, 학과라는 틀에 묶이면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학과중심제가 학과간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대해 서 교수는 “그런 측면이 있다”며 “경쟁을 통해 순발력을 갖추는 것은 장점이지만 학문영역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학과 고집을 극복하지 못 한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