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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이론가의 프로포즈 …양자역학·양자정보기술에 한 걸음 더
젊은 이론가의 프로포즈 …양자역학·양자정보기술에 한 걸음 더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7.09.03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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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사례]‘슈뢰딩거의 고양이 상태구현’ 정현석 박사

 
지난달 16일자 <네이처>지에는 눈에 띄는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이론적으로만 논의되어 왔던 “빛의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를 구현했다”는 논문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해 고안한 양자역학 분야 사고실험의 하나다.
이 논문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은 호주 퀸즈랜드대 양자컴퓨터기술센터 정현석 박사(35세·사진)다. 현재 호주에 살고 있는 정 박사는 이번 연구의 실험 방법 이론을 고안해 낸 뒤 이를 실험적으로 구현할 팀을 찾아다녔다. 실험의 기본조건은 먼저 광자 수가 최소 2이상인 수 상태(photon numbers states)를 만들 수 있어야 했다. 정 박사는 각종 연구결과들을 조사해 프랑스 남파리 대학의 필립 그랑지어 교수팀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 그랑지어 교수팀에게 자신의 아이디어와 계산결과를 보내 자신의 이론을 실험할 의향이 있는 지 물었다. 그랑지어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정 박사의 초고를 함께 검토한 후 “몇 달간의 시간을 준다면 이론을 실험실에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호주와 프랑스에서 일어난 분업적 공동연구는 이렇게 시작됐다.

□실험 결과를 양자역학적 ‘유사확률분표’로 나타낸 것. 양자역학적 유사확률분포는 중첩 현상이 일어날 경우 음의 값을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 그림에서 보듯 유사확률 분포(위그너 함수)에 영보다 작은 값이 존재한다는 것이 “산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 사이의 양자적 중첩이 구현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연구그룹은 주로 이메일을 사용해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프랑스 실험 팀은 수개월에 걸친 시도 끝에 실험에 성공했다. 정 박사는 “실험 팀의 일차 데이터를 받아본 순간 저의 이론적 예측과 매우 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나온 엄밀한 분석 결과는 이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 만난 이들은 논문 작성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고 실험을 마친 후 이론과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한 논문이 완성됐다.

네이처 심사위원, “물리학계 막대한 영향 미칠 논문”
네이처에 투고된 논문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게재됐다. 한 심사위원은 “학계에 막대한 영향(huge impact)을 미칠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논문 출판이 확정된 이후 정 박사는 한국에서 결과를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광학 분야 권위자인 한 중견 교수는 “이 정도 실험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은 이제 우리나라에도 있으니 다음번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한국의 실험팀과 연구를 해서 실험 결과도 한국의 것이 되게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물리학계에서는 이번 연구의 핵심을 이론의 엄정성과 가상성이라고 평한다. 이론가가 실험가에게 설득력있게 제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박사의 실험계획은 기존의 실험방법을 조밀하게 조립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이론의 핵심적 아이디어에 대해 “광자의 수 상태(광자의 개수가 잘 정의된 상태)를 만든 후 비교적 간단한 광학적 장치를 통해 빛의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수 상태가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보다는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먼저 광자의 수 상태를 만들어낸 후 반거울로 그것을 나누면, 나뉜 빔들은 서로 얽혀있는(entangled) 상태에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얽힌 상태의 한쪽에 호모다인 측정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광학적 측정을 가한다. 특정한 측정 결과가 나올 경우, 다른 한 쪽에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가 나타난다. 즉 ‘얽힌 광자 빔 쌍의 한 쪽에 양자 측정을 가함으로 다른 한쪽의 상태함수를 원하는 상태로 전환되게 만드는 트릭’이다. 이것은 양자역학의 상태함수 붕괴 법칙에 따라 증명될 수 있다. 물론 원하는 측정 결과가 얻어지지 않으면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가 얻어지지 않는다. 그 경우 재시도 한다. 초기에 만들어진 광자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큰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가 만들어지게 된다”고 정리했다.
이론적으로 끝낸 가상실험은 프랑스의 실험실이 타당성을 검토해 받아들이게 됐다. 실험은 먼저 레이저와 비선형 매질 등을 이용해 광자 빔의 쌍을 만들어 낸다. 한 쪽에 광자검출기 두 개를 사용해 각각 하나씩 두 개의 광자를 측정하고 다른 한쪽에 두 개의 광자 수 상태를 만들어지게 했다. 광자의 수 상태를 만들어낸 후 이론에서 제안한 방법에 따라 반거울과 광학적 측정으로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를 만들어 냈다. 최종적으로는 다시 호모다인 측정을 이용해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를 측정해낸 후 데이터를 기록했다.
정 박사는 “이상적인 실험이라면 거의 완벽한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가 측정되어야 하지만 실험에서 사용한 광자 수 상태는 정확하게 2가 아닌 약간의 다른 수 상태들과 섞여 있다는 점, 그리고 측정 기술의 한계 때문에 실험 결과는 이상적인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면서 이 점에 대해 “예상되는 실험 오차를 넣고 얻은 이론적 계산에서 이미 충분히 예측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인쉬타인-포돌스키-로젠의 역설 검증 하겠다”
정 박사는 이번 연구의 의미를 △빛을 이용한 양자역학의 거시적 검증에 다가선 점 △광학을 이용한 양자정보기술의 가속화라고 요약했다. 양자역학은 반세기 이상에 걸쳐 미시적인 세계에서 수많은 검증이 이루어져 왔으나 거시 세계에서의 검증은 보다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번 결과는 빛을 사용해서 이러한 ‘어느 정도의 거시적 특성을 가진’ 중첩 상태를 구현해 냈고, 앞으로 기술의 진보에 따라 그 거시성을 얼마든지 늘일 수 있다는 점을 보인 것이다.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양자 공간이동 등을 포함한 양자 정보 기술은 고전적인 정보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을 미래의 정보처리기술이다. 통상 양자정보기술의 구현을 위해서는 미시적 중첩 상태가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거시적 특성을 가진) 빛의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가 양자 정보처리에 상당한 유용성을 가지고 있음이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이번에 구현된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들은 양자정보기술에 이용될만한 적절한 크기(평균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용적인 양자정보기술을 위해서는 여전히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의 질을 높이는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정 박사는 향후 “이전 실험의 기술적 보완을 통해 충실도가 높고 (더 이상적인 상태에 가깝고) 크기가 큰 (평균 에너지가 높은)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면서 “수년 내에 양자 공간이동과 양자 컴퓨터의 기본 논리 게이트를 구현하는 실험도 행해질 필요가 있다.
거시적인 양자 얽힘을 만들어내어 양자역학의 또 다른 근본적 문제인 ‘아인쉬타인-포돌스키-로젠의 역설’을 검증하여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논쟁을 거시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또 하나의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많은 이론물리학자들과 실험물리학자들의 공동 연구와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정 박사는 말미에 “이번 연구를 포함해 저의 연구에 늘 많은 도움을 주시는 영국 퀸즈대 김명식 교수와 호주 퀸즈랜드대 티모시 랄프 교수께 감사드린다. 특히 박사과정 지도교수이셨던 김 교수께서는 학위 과정부터 거시적 중첩 상태를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지적해 주셨다”며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본 기사는 매우 전문적인 학문분야를 다루고 있어, 연구 당사자인 정현석 박사의 서신 인터뷰 내용을 위주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 속에 갇혀있는 고양이를 상상해보자. 상자에는 방사성 핵이 든 기계와 독가스가 든 통이 연결되어 있다. 실험은 한 시간 내에 핵이 붕괴될 확률을 50%가 되도록 한다. 만약 핵이 붕괴되면 통은 핵의 방출된 입자를 검출, 독가스를 분사해 고양이를 죽인다. 양자역학에서 관측하지 않은 핵은 ‘붕괴한 핵’과 ‘붕괴하지 않은 핵’이 중첩된 상태이지만, 한 시간 후 관측자는 ‘붕괴한 핵과 죽은 고양이’ 혹은 ‘붕괴하지 않은 핵과 죽지 않은 고양이’ 중 하나의 상태만 보게 된다. 핵이 붕괴되고 언제쯤이면 중첩상태가 끝나고 하나의 상태로 고정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중첩된 상태라면 ‘죽기도, 살기도 한 고양이가 존재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근본 문제와 양자 정보기술에의 적용에 있어서 빛의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거시적 특성을 가진 중첩 상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유용성은 학자들의 상당한 주목을 받아 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공동 안에 갇힌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해서 어느 정도 거시적 특성을 가진 중첩 상태들을 관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진행하는 빛의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는 독특한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여 년간 이론적으로만 그 구현 가능성이 논의되어 왔을 뿐, 현재의 기술로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슈뢰딩거는 1935년 그의 유명한 고양이 역설을 통해 “양자역학이 거시계에서도 적용되는 이론이라면 산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의 중첩 상태조차 이론적으로 가능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이후 과연 거시적 물리계에서도 양자적 중첩을 만들어내고 관찰할 수 있는 것인가는 물리학자들의 오랜 관심사였다. 슈뢰딩거의 논의 이후 거시적 특성을 가진 양자적 중첩을 흔히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런 상태들은 미시적 중첩보다 구현·측정이 어려운 양자 상태로 알려져 있다.


[PEER-REVIEW]누가 더 큰 고양이를 만들까

양자역학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근본방식이다. 양자역학이 시작된 지 1세기가 지나는 동안 20세기의 과학기술문명은 위대한 변화를 거쳤다. 경험의 축적으로 만들어졌던 원소 주기율표는 양자역학 덕분에 그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연금술은 화학으로 거듭났다. 물질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물질을 합성하고 조작하는 기술도 배우게 됐다. 양자역학을 원리로 반도체와 레이저가 만들어졌고, 반도체와 레이저는 정보를 담는 하드웨어가 되어 눈부신 정보기술(IT)시대가 열렸다. 나노기술(NT)은 하드웨어를 더 작게 만들어 더 많은 정보를 담거나 실어 보낼 수 있게 한다. 여기까지 양자역학이 하는 역할은 정보를 담을 그릇, 즉 하드웨어를 만드는 원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고, 정보를 다루는 소프트웨어의 원리는 양자역학이 아니라 디지털방식이다.
나노기술로 정보소자가 점점 작아져서 원자나 분자수준에 이르면 양자역학은 현재의 디지털방식 정보기술에 방해가 된다. 디지털정보의 단위인 비트(bit)는 0이면 0, 1이면 1로 분명한 값을 유지해야 하는데, 양자역학적 효과가 나타나는 미시세계에서는 0과 1이 동시에 될 수 있는 양자중첩된 상태들이 나타나서 디지털 방식의 소프트웨어가 무용지물이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정보처리방식, 하드웨어뿐 아니라 정보운영방식인 소프트웨어까지 양자역학으로 하겠다는 것이 양자정보기술(QT)이다. 양자정보의 단위는 양자비트 또는 큐비트(qubit)라고 하고, 0과 1이 양자역학적으로 중첩된 상태에 있을 수 있다. 양자정보기술은 단순히 디지털 또는 나노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다. 양자중첩을 이용하면 디지털컴퓨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크고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와 절대적인 통신보안을 보장하는 양자암호와 같은 기술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양자정보기술이 디지털정보기술과 핵심적으로 다른 부분, 즉 양자중첩과 그에 대한 확률론적인 측정의 문제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운 천재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슈뢰딩거는 1935년 제안한 사고실험에서 죽었으면서도 살아있는 고양이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하여 양자역학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전통적으로 양자역학의 해석에 관련한 문제는 학술적인 논문으로 취급하지 않았기에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표현은 최근 양자정보과학의 발전과 함께 학술지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원자와 같이 미시적인 물체의 중첩상태가 가능하다면 거시적인 물체의 중첩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에 광자로 만든 중첩 상태는 광자 하나 수준이었다. 그래서 슈뢰딩거의 새끼고양이(Schrdinger’s kitten)라고 했는데, 정현석 박사는 그 크기에 한정이 없는 거시적인 고양이라고 할 만큼 큰 양자중첩상태를 만드는 방법을 제안하였고, 비록 광자 2개 수준이긴 하지만 프랑스연구팀의 실험을 통해 정현석 박사의 제안이 원리적으로 검증된 것이다. 이제 누가 더 큰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만드나 하는 경쟁이 남아있다. 새끼고양이보다는 큰 고양이가 훨씬 튼튼할 것이고, 이렇게 큰 고양이로 양자컴퓨터를 만든다면 새끼고양이로 만든 양자컴퓨터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김재완 /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필자는 미국 휴스턴대에서 ‘파이중합체의 이론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종합기술원 계산과학팀장과 카이스트 교수를 거쳐 고등과학원에 재직 중이다. 학술진흥재단의 ‘양자정보과학’, 과학기술부 등의 ‘차세대시큐리티사업-양자암호기술’의 연구책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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