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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색깔 확보가 절실하다
자기 색깔 확보가 절실하다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9.03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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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_지역 문예지의 현주소

“재정상황이 열악하다보니 신인들에게 등단 대가로 책을 사보도록 만드는 문예지도 많아요. 작품 질이 낮을 수밖에 없죠.”

“이름난 중앙 문예지도 시중 서점에서 10권 중 3권 밖에 안 팔리는데 서점들이 지역 문예지를 들여놓으려고 하겠어요?”

문예지를 열독하는 독자가 날로 줄어드는 데다 그나마 발굴해놓은 문인들을 중앙 문예지에 빼앗기다시피 하고 있는 지역 문예지 대표들이 털어놓는 속내다. 전국에 발행되는 문예지 숫자는 이미 300종을 넘어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동인지 수준의 문예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게 문단의 전반적인 평가다. 작품·기획 수준을 끌어올리면서도 중앙 문예지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야 하는 지역 문예지들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지역 고유성 부각 어려워

많은 지역 문예지 관계자와 비평가들은 “지역 문예지의 위기극복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차원을 넘어 보다 수준 높은 문예지를 만든다는 것이 결국 ‘중앙 문예지化’로 귀결되면서 지역 문예지만의 독특한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지역의 고유성을 부각시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대구 <시와 반시> 구석본 공동편집주간은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돼 방언조차 사라져가는 지금 지역의 고유한 문학적 특색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기반인 지역 문화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중앙 문예지적’ 성격의 지역 문예지라도 지역 문인들의 작품을 반드시 일정 숫자 이상 게재하고 지역관련 기획도 한두 꼭지씩 포함한다. 지역관련 기획들은 지역의 현장성을 잘 살려낼 수 있는 통로다. 인천 <작가들>의 경우 처음부터 인천 지역문화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표방해왔다. 서구문물 수입과 전쟁 등 인천 근대사의 주요 사건, 최근 이 지역에 급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지역문화와 연계시키고 있다. 광주 <시와 사람>은 본격적으로 지역문학 담론형성 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 문예지는 최근 호남해안문화의 시적 형상화, 남도 판소리의 시적 변용 문제를 기획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물론 여기에도 어려움은 따른다. 필진확보 문제가 가장 크다. <시와 사람> 김선태 편집주간은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에게 글을 맡기려다 보니 지역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자주 글을 쓰게 되는데 이들은 현지 실정을 잘 몰라 문제”라고 말한다.

지역 문예지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부산 <오늘의 문예비평> 전 편집주간 구모룡 교수(한국해양대·동아시아학과)는 “생태·환경, 각종 지역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그것들을 문학과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역사회 문제도 얼마든지 한국사회, 나아가 세계적 수준의 보편성 모색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을 바로세운다고 해서 문제가 곧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기획력이 좋아도 자본이 부족해 원고료조차 지급하기 힘들 정도라면, 그리고 서점에서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지역 문예지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정부지원도 중앙문예지 위주

정부가 문화정책 차원에서 문예지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지역 문예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는 데다 우수문예지 구입·배포 사업도 중앙 문예지들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선정된 2007년 우수문예지의 경우 21종 중 지역 문예지는 단 3종에 그친다.

이에 대해 인천 작가회의는 지난 2005년 “지역에서 어려운 가운데 출간되고 있는 문예지들을 심사에서 배제하고 있으며 사업이 명망가·기성 문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학산문학> 김윤식 발행인도 “지역 문인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경쟁에서 약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부익부빈익빈 현상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본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중앙 문예지와 지역 문예지를 무턱대고 경쟁시켜봐야 결과는 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촉망받는 신진 지역작가들이 원고료를 적게 주는 지역 문예지 대신 중앙 문예지에 글을 쓰는 현상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형편이 열악한 대부분의 지방문예지들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나 문화재단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시중 서점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제주 <다층> 변종태 편집주간은 “동인지처럼 지역 내에서만 유통되다 사라지는 지역문예지들이 많다”며 “지역문예지들이 힘을 합쳐 전국단위 유통망을 구축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25일 전주에서 열린 전국 편집인 협의회에서 이 문제가 주로 논의되기도 했다. 전주 <문예연구>, 부산 <시와 사상> 등 이 자리에 참석한 10개 문예지 관계자들은 유통을 대행해줄 서울지역 문예지출판사를 선정해 전국적 유통망을 확보할 방침을 세웠다.

“지방문단 권력도 해체 대상”

한편 지역 문예지의 위기는 매스컴 및 이른바 문단권력과 얽혀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논의를 배제한 채 지역 문예지 위기를 논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들린다. “중앙 신문·방송이 지역 문인들과 접촉을 잘 안하니 제대로 알려지기 힘들다”는 불만은 오래전부터 지역 문예지 관계자들 사이에서 불거져 나왔다.

이현식 (재)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인하대·국문학)은 최근 펴낸 평론집 <곤혹한 비평>에서 “지방 문예지 발간과 문예진흥기금, 지방정부 예산지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방문단 조직은 이미 권력기관이 됐다”며 “보수적인 중앙 문단권력과 함께 지방 문단권력도 비판하고 해체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해체 후 지역문학에 남는 것은 수많은 문인 지망생들, 생활글쓰기 동아리들, 그리고 이들과 문인들 사이의 건강한 네트워크다. 지역 문예지는 여기에 창조적 긴장과 연대감을 불어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문단권력’의 해체까지도 지역 문예지가 떠맡아야만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라 지역 문예지의 어깨는 여전히, 아니 더욱 무겁다.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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