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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脫性差 사회의 비전
[만파식적] 脫性差 사회의 비전
  • 교수신문
  • 승인 2001.11.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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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2 16:21:51
최근에 다너 헤러웨이의 고전적 에세이인 사이보그 선언문을 읽었다. 페미니즘 과학학 학자인 동시에 사이보그 인류학자, 과학 및 문화비평가이기도 한 헤러웨이의 저작들은 영장류학, 과학 인식론, 정보기술, 페미니즘 SF 등의 다양한 토픽을 넘나들면서 갖가지 주장을 동시에 쏟아낸다. 사이보그 선언문에서의 그녀의 주장은 단순하지는 않지만 명백하다. 헤러웨이는 1차대전 후 과학기술의 발달로 재편된 포스터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정체성을 규명하려 했으며, 여성 정체성의 중심에는 사이보그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명과 기계, 인간과 동물,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새로운 인식론적 틀에서 볼 때,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인 사이보그는 인종, 젠더, 국가의 경계를 넘는 범인류적인 보편성을 지닌 이미저리이며 미래사회의 희망이라고 헤러웨이는 주장한다. 또한, 사이보그의 이미지는 흑인 및 아시아계 여성을 포함한 비백인 소수파 그룹의 유색여성에게서 발견된다고 강조했다. 헤러웨이의 사이보그 이미지는 다분히 급진적이다. 그녀는 노동의 특성을 성별분업에 따른 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만 파악했던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노동력의 대상으로서만 여성의 입장을 분석하고 있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에도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 미래의 사이보그는 특정한 누구를 소외하거나 선별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脫性差 사회의 근간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사이보그 사회를 준비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우선, 가부장제와 성별분업에 따른 남성중심적 체제의 사회적 분위기가 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은 지배하는 입장에 서고 여성은 종속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사회구조와 관습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쩔어있다. 남자는 생계 담당자이고 여성은 가사 담당자라는 성별분업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회의 메카니즘은 여전히 여성을 불평등한 위치로 전락시켰다. 물론, 성폭력과 배우자 폭행에 대한 대책, 호주제 페지 등 법적, 경제적 평등한 지위를 얻기 위한 여성문화운동으로 많은 부분 개선되기는 했다.

성불평등의 양상은 대학 내 치열한 여성들의 서바이벌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자가 학업을 계속할 경우,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비협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학위를 받았다 치더라도 대학의 남성적 특권에 기반한 기득권층의 이해관계 때문에 여자 교수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최근, 서울대 여교수회의 여교수 임용 목표제 주장에 이어, 국·공립대 여교수 채용 목표제가 정부의 여성부에 의해 추진된다는 사실은 고학력 여성의 실업이 얼마나 구조화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중요한 영역인 과학기술분야에서 오랫동안 남녀간의 불평등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러한 불균형 상태는 남녀성차에 대한 전통적인 과학담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남녀 두뇌 기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성은 고도의 지적능력을 갖출 수 없고 그리하여 과학기술과 같은 전문직에 부적합하다는 편견이다. 이에 대한 반성과 극복 차원에서 최근에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의학계, 이공계의 여자 대학생을 대상으로 기존의 성불평등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지양하고 신지식인으로서의 비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가부장제와 성별분업 체제를 깨트림으로써 성불평등을 극복하는 것은 모두 탈성차 사회로 나아가는 물리적 기반이 된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인 과학기술 혁명의 과정에서 나타난 신지식인 및 노동계층의 역할과 위상 속에서 미래 사이보그 사회의 이미지가 엿보인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재편된 사회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이미지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첨단기술의 탈산업화 사회에서 소수 엘리트 여성들은 비전문적 백인남성들보다 구조적 실업의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제3세계의 유색여성들은 비전문직에서 고용의 기회를 누리게 되면서 생산, 문화, 소비의 주축이 되고 있다. 결국, 미래 과학기술 시대의 여성의 역할은 과거 남성과 여성, 자연과 문화의 이분화에 내재했던 위계질서의 간극을 넘어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적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이론과 여성의 만남, 여성 운동의 확대가 어우러진 현재 우리 사회는 탈성차의 사회로 나아가는 도상이며 사이보그 사회는 우리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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