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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학문공동체라는 운명
[대학정론] 학문공동체라는 운명
  • 논설위원
  • 승인 2001.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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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31 11:10:04
서로 다른 색깔을 고수하면서 대학문제를 풀어왔던 7개 교수 단체가 엊그제 한자리에 모여 공동기자회견을 밝힌 일은 하나의 ‘사건’이다.

교수 단체들의 주장은 ‘교육부와 사학재단 중심의 대학운영 체제 개혁’,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과 부당 해직 교수들의 원상복직’, ‘계약제·연봉제 철폐’, ‘교육의 자율성 확보와 교원의 신분보장’ 등 중차대한 사안들을 고루 담아 낸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교수 단체들의 일치된 주장을 보노라면, 오늘날 우리 대학과 교수사회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음을 쉬 알 수 있다. 한편에선 서글픈 비애까지 느껴진다. 초등학교 교실에서조차 학생들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대표자를 뽑고 자치를 경험하는 마당에, 대학은 아직도 ‘관료’들의 이래라 저래라하는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료주의적 통제’나 ‘비민주적 사학 법인의 운영 방식’은 학문 연찬의 오랜 과정을 고독하게 걸어온 교수들을 계몽의 대상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 ‘고루한’ 행태랄 수 있다.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4년제 대학이든 혹은 전문대든 교수들은 이미 ‘약자’의 위치로 전락했다. 자기 스스로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가르치거나 행동할 수 없는 ‘교사’는 교사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의 지시와 간섭, 통제와 억지 속에서 고뇌하는 약자일 따름이다.

7개 교수 단체가 한 목소리로 교육부의 관료주의적 통제를 비판하고, 사학법인의 비민주적 운영 방식을 성토하는 이면에는 대학 교육이 ‘공공재’의 성격을 띤다는 기본 인식이 깔려 있다. 교육은 특정 이데올로기도, 특정 집단도 온전하게 사유화할 수 없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것이라는 뜻이다.

대학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교원 신분보장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저잣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대학이 서둘러 해결해야할 일이다. 늘 간섭하고 끼어들기 좋아하는 교육관료들이 이를 풀어줄 리 없고, 대화에 서툴고 끼리끼리 어울려 잇속채우기에 바쁜 ‘교육 장사꾼’들이 또한 대신해줄 수 없다. 7개 교수 단체의 행보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杞憂겠으나, 노파심에서 이들 교수 단체에 한마디 건넨다. 이번 성명 어디에도 학문후속세대나 대학 강사를 위한 고뇌어린 목소리가 담겨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왔다. 넓은 의미에서 ‘교원의 신분보장’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교육의 일부가 돼버린 강사·학문후속세대 문제를 지나쳤다는 것은, 교육의 주체를 너무 협량하게 해석한 것은 아닌가 우려하게 만든다.

관료와 교육 장사꾼, 얕고 경박한 세태에 맞서 대학의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장정에 나선 지금, ‘강사’와 ‘학문후속세대’를 우리 내부로부터 따로 떼어내 저만치 내팽개쳐두고, ‘우리들만의 잔치’를 벌여서는 안된다.

‘절멸의 공포’를 고백하는 젊은 강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교수들의 권리 유지’에 들러리서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은 모두 ‘우리’가 끌어안고 가야할 책무인 것이다.
학문공동체라는 큰 틀을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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