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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마무리 협상중인 한미투자협정/박영근 주간, 중앙대
[풍향계] 마무리 협상중인 한미투자협정/박영근 주간, 중앙대
  • 교수신문
  • 승인 2000.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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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04 11:25:48
[풍향계]

비공개 진행중인 한-미투자협정

박영근 /주간·중앙대

몇 해전부터 포괄적 국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미국이 우리나라에 일방적으로, 그리고 줄기차게 통상압력을 가해 왔다. 미국은 우리나라 쇠고기 수입제도가 불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WTO에 제소했고, 영종도 신공항에 설치할 엘리베이터 입찰과 관련해서도 역시 WTO에 제소할 뜻을 비쳤다. 우리 정부가 한보철강을 매각하고 포항제철의 가격결정에서도 개입한다고 투정을 부렸다.

이처럼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와중에서 지난 1월 한-미투자협정이 비공개리에 협상에 들어갔다. 외환을 확보하고 국가 신인도를 올리는 게 최우선 과제였던 지난해 6월 김대통령은 한술 더 떠서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협정체결을 '제안'했다. 따라서 외자유치의 명분과 필요성이 절박했던 탓에 이 협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많았으나 그대로 추진됐다. 게다가 김 대통령이 '직접' 미국에 협정체결을 제안했기 때문에 협상과 관련된 정부부처의 공무원들은 반대의견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1994년 미국이 이 협정의 협상을 제안했을 때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던 한국이 이번에 협상체결을 먼저 제안한 꼴이 되어서 협상다운 협상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셈쳐진다.

국제적 협상력 떨어뜨릴 가능성 높아
더군다나 이미 외국인이 자유롭게 마음껏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협정을 맺는다고 투자가 더 늘어날 소지가 적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90년대 초반 미국과 투자협정을 맺은 13개 국가 가운데 협정을 발표한 다음 3년 동안 외국인 투자가 늘어난 나라는 고작 3곳에 불과했다. 또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양자간 투자협정에 따른 투자유치의 효과가 신통치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양자간 투자협정은 다른 국가와의 주권행사에 운신의 폭을 좁게 해서 오히려 국제무대에서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미국은 스크린쿼터제 폐지, 외환위기 때 외환거래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세이프가드 불인정(다자간 투자협정에서조차 세이프가드를 인정하고 있다), 공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철폐, 국산 잎담배 사용의무철회, 쌀보리·연근해어업 외국인 참여제한 철폐, 저작권 소급보호, 미국의 주법에 의해 한국기업을 차별대우할 수 있는 권한 인정 등 불평등한 사안을 수용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해 왔다.

특히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을 인수한 경우 외국기업은 고용승계 의무, 현지인 일정비율 고용의무, 노동기본권 보장 등의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 또한 이들에게 일정한 환경기준조차 요구하기조차 어려워서 우리 국토의 황폐화가 우려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외국기업과 우리 정부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뉴욕의 국제분쟁조정센터의 결정을 국내법원의 결정에 '우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자본의 투자에 대해 '특혜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이같은 내용의 모양새가 워낙 사나워서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따라서 한-미투자협정이 담고 있는 문제점들이 불거지면서 협정체결의 필요성 그 자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더군다나 이 협정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전단계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미 지난 89년 미무역대표부 피터 알가이어 부대표가 '세계은행 연차보고서'에서 미국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자유무역협정이란 협정 당사국끼리 관세-비관세 장벽을 모두 없애서 공산물-농수산물-서비스 상품이 아무런 무역장벽없이 자유롭게 교역하는 국제조약을 일컫는다.

불평등 조항 불구 밀실협상으로 진행

이처럼 불평등한 조항이 덕지덕지 쌓여 있는데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몇몇 관료들에 의해 밀실에서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부처끼리 의견을 조율하지 않고 협상에 나서는 게 문제다. 외교통상부는 양보하더라도 협정을 부랴부랴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경제부-농림부-법무부-문화관광부 등 해당 부처는 양보할 수 없거나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고 버티고 있으며 일방적으로 양보하면서까지 협정을 맺을 경우 심각한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견해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래선 안된다. 지금이라도 여론을 폭 넓게 모아서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 지금은 작년과는 달리 외환위기가 심각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협상의 속도와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의 요구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다면 시간적 여유를 두고 협상에 임해야 할 터이다. 종전에는 미국에 끌려다니면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 낭패보기가 일쑤였다. 만약 이번에도 힘의 논리에 따라 은밀히 협정이 체결된다면 한-미투자협정은 을사보호조약의 재판이 될 게 뻔하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게 된 것은 소갈머리 없는 세계화정책 탓이 크다. 세계화를 외치면서 OECD에 가입하려고 시장을 마구 열어젖히다 오늘의 불행을 자초했다. 한-미투자협정이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 만큼 외자유치가 시급하다할지라도 투자협정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터이다. 게다가 OECD가 추진중인 다자간 투자협정(MAI)에 대해서도 여북하면 각국 시민단체가 크게 반발하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짚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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