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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 <21> 박종홍의 『한국사상사』
[우리시대의 고전] <21> 박종홍의 『한국사상사』
  • 성태용 / 건국대
  • 승인 2001.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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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30 13:02:31
성태용 / 건국대 철학

서문당에서 출간된 박종홍의 ‘한국사상사’는 한국철학연구에 있어 거의 새로운 출발이라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철학과 사상에 대한 선행적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박종홍의 저술은 거의 평지에 돌출한 우뚝한 산과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사상사’는 이름 그대로 한국사상사 전체를 기술하지 못하고 ‘불교편’만이 출간되었다. 그가 별세를 하였기에 미완의 책이 되고 말았지만, 이 책에서 제시된 한국사상사를 연구하는 근본 자세와 방법론은 오랫동안 한국철학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지침서였고 귀감이었다.

이 책은 원효로부터 승랑·의천·지눌 등 한국불교사상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의 사상을 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승랑 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새롭게 발굴하다시피 하여 소개됐다. 중국에서 활동하다 죽은 한국 승려의 사상을 한국사상사 속에 편입하려 한 그의 시각에는 분명 한국사상 전반에 흐르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려는 그의 시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하겠다. 그것은 원효로부터 원칙 등으로 이어 내려오는 화합과 조화의 정신, 즉 원효를 중심으로 말하자면 화쟁의 정신이다.

그러한 정신이 의천과 지눌의 선교융화를 꾀하는 사상에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박종홍의 시각이다. 그런 시각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 사상가들의 사상을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책의 기본 입장은 우선 한국사상에 대하여 성실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또 취사선택을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한국사상사’의 서술은 사상가들이 생각을 일단 그대로 따라가면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심도있는 분석을 통한 비판까지 기대하기는 힘든 한계가 있다.
또한 높은 봉우리들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였기에 진정한 사상사의 흐름을 일관되게 연속적으로 살피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박종홍은 그렇게 높은 봉우리들을 살피면서도 그들의 사상이 어떤 한국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큰 흐름에 있어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는가를 드러내기 위한 시사적 작업을 하였다. 위에 말한 한국불교의 일관된 특징을 화합과 회통의 정신으로 보는 것이 바로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사점이 또한 오랫동안 한국전통사상의 연구에 하나의 지침 노릇을 해왔다. 이러한 귀감의 역할은 유물사관을 바탕으로 한 사상사와 철학사 연구의 방법이 소개되기 이전까지 꾸준히 영향력을 미쳤다고 하겠다.

‘한국사상사’가 불교편으로 그쳐 미완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박종홍의 작업 자체가 불교의 연구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꾸준히 유교사상가들에 관한 연구도 계속하여 ‘한국사상’ 등에 발표하였다. 그러한 업적은 그가 작고한 뒤 ‘한국사상사논고-유학편’(1977)으로 묶어져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한국유학의 역사적 추이와 그 영향’이라는, 유학사 전반의 흐름을 개괄한 글을 포함하여 정도전, 이황, 이이 등 중요한 유학자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으며, 서구사상 도입의 영향을 소개하는가 하면 다산 정약용의 사상을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 이후의 한국’ 유학의 연구 소재와 방향 또한 박종홍에 의해 시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사상사’의 고전적 위치는 이 책이 나온 이후 몇십 년이 지나도록 한국사상사에 대해 일관되게 기술한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웅변해준다.

한국철학회에서 펴낸 ‘한국철학연구’(1977)가 박종홍의 작업을 이은 가장 큰 자취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책 또한 여러 사람들이 여러 사상가들을 맡아서 집필한 것일 따름이다. 좀더 여러 사상가들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진행된 측면은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지고, 그들 사이에 통일된 시각이 없다는 점으로 보면 오히려 박종홍의 저술이 지니는 일관성에는 크게 못 미치는 점이 있다. 박종홍이 지닌 한계와 그가 한국사상사 연구 방법에 끼친 문제점도 있겠지만, 그 한 개인이 남긴 업적을 넘어서지 못하는 후학들의 부끄러움이 이보다 더 크다 할 것이다.

박종홍(朴鐘鴻) (1903∼1976)

호는 열암. 1903년 평양 출생. 평양고보를 거쳐 1932년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34년 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37년 이화여전 교수, 1945년 경성대 교수를 지내고, 1946∼1968년 서울대 교수, 1968년 성균관대 유교대학장, 1969년 동 대학원장, 1970년 한양대 문리과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1953년 학술원 종신회원이 되었으며, 1954년 철학회 회장, 1964년 한국사상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1970년 12월에는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에 임명되었으며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인식논리학’(1953), ‘철학적 모색’(1959), ‘현실과 구상’(1963), ‘지성과 모색’(1967), ‘한국의 사상적 방향’(1968) 등이 있으며, 유고로 ‘변증법적 논리’, ‘한국사상사 논고’(197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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