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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 『한국전쟁의 국제사』
[쟁점서평] 『한국전쟁의 국제사』
  • 박명림 고려대
  • 승인 2001.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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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국제사』(윌리엄 스톡 지음, 김형인 외 옮김, 푸른역사 刊)

박명림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뉴욕과 워싱턴에서의 가공할 테러와 대규모 보복전쟁은 21세기 국제질서가 반평화의 위기 속에 시작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참혹한 전쟁과 반세기의 적대적 대결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평화의 이상과 가치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국제정치의 이론측면에서 보더라도 현금의 위기는, 승리주의 담론의 한 표현인 ‘헤게모닉 체제 하의 평화 달성’(이론)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반증한다.

광범한 1차 자료에 기반하여 한국전쟁을 세계냉전의 초기 형성에서 열강의 국익이 충돌하는 국제전쟁으로 파악하는 ‘한국전쟁의 국제사’는, 9·11테러 이후 우리가 세계와 한국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때에, 한국전쟁에 대한 탈냉전 이후의 지배적 연구경향, 즉 미국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다시 비판하고 과거의 전통주의적 연구의 복원을 의미하는 저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시야는 미국, 소련, 중국은 물론이려니와 유럽과 일본을 넘어 인도, 중동 지역까지 광범하게 확대, 동아시아 한반도의 국지적 사태가 세계의 주요 국가와 행위자들을 어떻게 긴밀히 엮어내며 냉전의 초기 전개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추적하고 있다. 영국과 특히 유엔의 역할에 의해 미국이 제한전쟁 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통한 문제해결의 한 사례를 보여주는데 성공하고있다.

지적 보수주의 전락 가능성

한국전쟁에 대한 탈이념적이고 탈도덕적이며 국제적 관점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커다란 연구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념과 이성의 구별을 불가능하게 했던 한국적 조건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이념적 정당화를 넘으려는 일련의 지적인 시도들은 학문적 자유의 문제이기에 앞서 현실법규의 저촉 여부를 검증 받아야했다.

그 점에서 해외의 연구들은 커다란 학문적 자유를 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유가, 하나의 사조를 비판하는 동안 다른 하나의 정당화로 연결된다면 현실과 연구 사이의 긴장은 소멸되어 우리는 금방 지적 보수주의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저자의 연구는, 뛰어난 전시외교의 재구성에도 불구하고 냉전 해체 이후의 미국 국제정치학의 보수화를 반영하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저자는, 이 전쟁의 기원으로부터 종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국면들을 주요 국가 지도자들의 ‘오판’(誤判)의 산물로 해석한다. 전쟁의 시작을 포함해 38선 이북으로의 확전, 중국의 참전, 38선 이남으로의 재확전, 휴전회담의 지연으로 인한 전쟁의 장기화 등의 핵심계기들은 전부 김일성, 스탈린, 미국, 마오쩌둥의 오판, 또는 상호 오판의 결합 때문이었다. 지도자들의 오판은 한국전쟁을 설명하는 저자의 가장 중요한 평가적 이론적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평자는 저자의 이러한 설명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한국전쟁의 실제 내용이나 국제정치 이론상으로도 설득력이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 거대 사건의 시작은 물론 주요 국면들이 전부 지도자들의 ‘오판’이라는 단일 요인으로 설명될 때, 지도자들의 그 오판을 초래한 사회성격 및 구조, 국제체제에 대한 설명은 배제되며, 더욱이 인류와 한반도가 추구(해야)할 평화기획의 적절한 이론적 실천적 대안을 추출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더욱이 ‘오판’을 포함, 역설적으로 지도자의 ‘인지’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다시 도덕과 정치의 착종이라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할지 모른다.

따라서 굳이 국제정치 이론의 최근 주요 성과인 구성주의를 말하지 않더라도, 본서는 이론적으로 전쟁을 개인(지도자) 레벨, 사회/국가체제 레벨, 국제체제 레벨 중 너무 지도자 중심으로만 설명하는 뚜렷한 한계를 보여준다.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군사주의적, 낭만주의적 결정에는 그들 개인의 결정과 함께 그러한 결정에 영향을 끼친 사회/국가적, 국제체제적 요인이 존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것은 커다란 약점이다. 38선북진과 중국군 참전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정책을 보더라도 최근의 비밀 자료들이 보여주듯 전통적인 설명방식이었던 몇몇 지도자와 정책결정자들의 오판이라기보다는, 전시 미국체제의 뚜렷한 특징인 군사작전 중심 게임지향적 전략 중심의 사고가 어떻게 전시 미국외교를 지배하며 정책결정을 주도하여 나갔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해명될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경우 미국의 고전적 전쟁수행 방식인 이른바 ‘무조건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이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향해 왜 반복되는지 그 요인에 대한 이론적 분석은 물론 미국의 전쟁 수행방식과 사회체제의 특성에 대한 설명 역시 전혀 없다.

중국군 참전을 비롯해 한국과 중국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어 새로운 사실과 분석이 진행된 부분에서조차 이를 전혀 수용하지 못한 것은, 몇몇 예외를 제외한 서양의 한국연구의 고질적 한계의 하나인 다(多)언어 교차 분석의 결여, 특히 한국어 자료와 연구에 대한 접근의 불능으로부터 오는 한계의 연장으로 보여 한국연구에서 언어습득능력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저자의 연구는 거의 영어자료로만 진행되었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 문제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와 세계, 행태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고체계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보편적 지평으로 나아가야

지난 3월 워싱턴의 우드로 윌슨 센터에서는 저명한 국제냉전사프로젝트(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CWIHP) 1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 각국의 냉전, 탈냉전 연구학자 100명이 참석하여 만 이틀 동안 한꺼번에 주요 국가 및 주요 주제에 대한 세계, 각국별 냉전연구의 경향과 과제를 토론하는 대규모 학술회의(Cold War Summit)가 열린 바 있었다.

회의에서 필자는 세계냉전연구의 발전을 위해 한국전쟁을 포함한 한국문제연구는 필수이며, 그를 위해 한국자료에 대한 이해 없이 서구 국제정치이론의 무매개적인 적용이 갖고 올 위험성에 대해, 몇몇 사실해석에 대한, 따라서 서구이론의 적용에 대한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제기하였다. 몇몇 사례를 들어가면서 이 문제를 제기하였을 때 냉전연구의 주요 학자들은 전적으로 동의하며 한국 자료 및 연구의 소개, 교류를 주문하였다. 저자의 책을 보면서 이러한 점의 필요성에 대해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이는 곧 우리학문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국내의 한국전쟁연구는 세계학계와 대화하기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민족주의와 이념적 긴박에 빠져 보편적 지평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전쟁은 그 사태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 비극을 재현하지 않기 위한 역사적이고 이론적이며 철학적인 고민을 통해 우리가 세계학계에 우리의 목소리를 제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의 하나일지 모른다. 전쟁이 끝난 지 두 세대가 되어 가는 오늘의 시점에서도 해외연구가 종종 표준적 연구로 수용되고 있는 현실은 바로 우리의 학문적 자긍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구체적 경험을 어떻게 이념적 민족주의적 한계를 넘어 보편적 지평에서 설명하고 해석하느냐의 문제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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