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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대학원정원미달 사태로본 학계현실/임호일 동국대 독일학
서울대 대학원정원미달 사태로본 학계현실/임호일 동국대 독일학
  • 교수신문
  • 승인 2000.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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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04 11:17:52

● 서울대 대학원 정원미달로 본 학문의 현실

교육부 대학개혁정책이 초래한 학문 붕괴 위기

임호일/동국대 독일학

지난 11월 24일자 주요 일간지에는 서울대 박사과정 미달 사태에 관한 기사가 일제히 실린 바 있다. 그리고 어떤 신문의 사설은 이 사태를 곧 학문의 위기로 규정짓고, 학문의 위기가 초래된 근본 원인을 우리대학의 경쟁력 부재와 정부의 잘못된 학문정책에서 찾고 있다. 나아가 이 사설은 실용학문에 편중된 재정지원을 지양하고, 균형적인 학문(특히 기초학문)발전을 도모해야할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지적에 십분 동감하며, 차제에 이 문제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대학과 학문이 앓고 있는 중병의 치료에 일조하고자 한다.

필자는 우리의 학문이 붕괴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보다도 그간 교육부에 의해 추진되어온 대학교육개혁정책의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지금으로부터 4, 5년 전, 교육부가 우리 대학의 질 제고를 외치며 들고 나온 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교육개혁안이었다. 세계적으로 낙후되어 가는 우리 대학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교육방법으로는 안되고, 보다 새로운 교육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대학교육개혁안이고, 이 안의 골간이 학부제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부제야말로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활성화시키고, 낙후된 우리 대학의 질을 높이며, 국제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대학으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공언했다. 이러한 학부제가 교육부의 권장사안으로 - 그러나 실은 '채찍과 당근'이라는 강제성을 띠고 - 각 대학에 하달된 이래,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서로 앞다투어 이를 수용함으로써 이른바 학문체계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학부제의 엄명에 따른 학문체계의 전폭적인 개편은 학문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질을 전폭적으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학문의 질 저하 현상은 학부제가 그토록 걱정하던 수요자, 즉 대학생들이 요즈음 어떤 기준으로 수강과목을 선택하는지를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얼마 전에 어느 일간지 신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학생(서울대생)은 "강의 계획서에 토론이나 발표 등이 있으면 그 과목은 신청하지 않아요. 노트만 외워서 시험을 보는 과목이 학점 따기 쉽잖아요"라고 말한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학에서의 학문의 질 저하 현상은 이른바 인기, 비인기 학과를 막론하고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외국어문학과에서는 생활언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 즉 순수학문의 성격을 띤 과목은 폐강되거나 폐강위기를 맞이하고, 철학이나 사학분야에서도 성(性) 내지 영상매체와 연계되지 않으면 고객이 없고, 상경계열에서는 경제학이 파리를 날리고, 이과대학에서는 수학과 물리학이 그리고 공대에서는 기계공학, 화학공학 등이 소외당하는 것이 오늘 학부제의 현장이다.

이러한 학문의 질 저하는 학부제의 유전인자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산물이다. 대학원 중심제로의 전환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 전공이수학점의 대폭적인 하향조정 및 전공의 복수화,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학생들의 지식을 다변화시키겠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전공필수 과목제의 폐지 등, 학부제의 이 모든 시행세칙은 현실을 무시한 교육부의 전시행정, 즉 한탕주의 사고가 빚어낸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대학 전통이 일천한 우리의 현실에서는 학부가 튼튼해야 대학원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전공필수 과목제의 폐지도 지식 다변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기과목 내지 쉬운 과목의 선택에 기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교육부 내지 저 교육개혁 입안자들은 간과하거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학부제의 시행세칙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학원을 활성화시키기는커녕, 학부의 체질만 약화시켰으며,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학문성취 욕구를 감퇴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

그밖에도 학제적 연구를 활성화시키고, 지나친 세분화로 중복된 전공을 통폐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는 학부단위 내지 계열별 학생 선발제도 역시 원래의 취지는 전혀 살리지 못한 채 이른바 '장사 안 되는' 학문의 퇴출 위기만을 증폭시켰다. 한마디로, 학부제로의 대학개편은 학문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학문체계의 재편이 아니라, 시장 경영 원리에 따라 인기, 비인기 상품을 구별하기 위한 상품판매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전략에 의하면 인기상품은 확대 재생산에 되고 비인기 상품은 생산축소 내지 생산중단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인기 상품 대부분이 학문의 질을 좌우하는 기초과목 내지 인문학이라는 점이다.

지금 대학에서의 학문의 질 저하 현상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기초과학 및 인문학의 경우, 중간시험 내지 기말시험 문제지의 난이도를 교육개혁 이전에 비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답안은 점점 더 부실해 지기만 한다. 이러다가는 학문의 위기가 곧 학문의 붕괴로 이어질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교육부와 대학 당국은 더 이상 개혁이라는 명분에 매달리지 말고 하루 속히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지금 학문의 목을 한껏 옥죄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추방하는 것만이 질식 직전의 우리 학문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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