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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 vs 빈센트 반 고흐
오귀스트 로댕 vs 빈센트 반 고흐
  • 교수신문
  • 승인 2007.07.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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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인물 ‘극과 극’]결혼관

사랑하지만 거부하다 죽기 2주전 결혼

<자화상>-1895년, 드로잉, 파리 프티 팔레 미술관 소장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을 사랑했던 여인은 많다. 하지만 그의 사랑을 받았던 여인은 드물다. 로댕이 가진 예술성과 천재성을 사랑했던 여인들은 잠시나마 그를 소유할 수 있었으나 로댕의 완전한 사랑은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여성편력이 대단한 로댕은 평생 자신의 곁을 지켰던 여인 로즈 뵈레와 결혼은 피하고 싶었다.
젊은 날 조각가로서 불투명한 미래밖에 없었던 로댕은 튼튼한 몸매를 지니고 있던 스무 살의 재봉사 로즈 뵈레를 만나 자신의 작품의 모델 일을 부탁하면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곧 동거에 들어간다.
로즈 뵈레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로댕을 위해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을 정도로 헌신적이었고 로댕은 열악한 환경의 작업실이었지만 처음 작업할 공간이 생겨 더욱 더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한편 그녀는 살림을 맡은 안주인으로서 어려운 경제를 책임지면서 또 로댕의 예술적 영감이 필요할 때마다 그에게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자유로운 섹스를 추구했던 로댕은 화실에서 모델들과의 성관계를 즐겼고 그를 위해 로즈 뵈레는 모델들에게 누드 포즈에 대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로즈 뵈레는 로댕의 아들까지 낳았지만 그에게 받은 것은 멸시와 학대, 그리고 모욕이다. 아들을 자기 호적에 올리지 않았던 로댕은 그녀에게 항상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옆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로댕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 카미유 클로델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항상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솔직하고 당돌했던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에게 동거녀 로즈 뵈레와의 헤어짐을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모델들과의 성적 자유를 추구했던 로댕은 카미유 클로델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른 모델들과의 성생활은 하지 않지만 로즈 뵈레와의 이별은 하지 않는다. 카미유는 끊임없이 로댕에게 결혼을 요구했지만 그는 항상 약속만 할 뿐이었지 결코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로댕은 결혼으로 인해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카미유와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로댕은 로즈 뵈레가 죽기 얼마 전 결혼식을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늙은 연인들의 결혼식은 뇌졸증으로 쓰러진 로댕을 위해 친구들이 로즈 뵈레와 결혼을 강력하게 권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로즈 뵈레가 죽기 2주일 전에 53년 동안 로댕을 위해 희생해 온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
로댕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그는 결혼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1889년, 캔버스에 유채, 60* 49, 런던 코톨드 미술관 소장

열정과 집착속 매춘부와 결혼하려다 실패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사랑이 삶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고흐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그가 그토록 원하던 사랑마저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부모로부터 사랑 받기는 커녕 무관심 속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고흐에게 구필 화랑에서 근무할 때 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사랑의 대상자는 하숙집 주인의 딸 19살의 유지니아다.
고흐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도 사랑했다. 집에서 받지 못했던 관심과 애정을 하숙집 주인과 딸에게서 느낀 그는 사랑을 혼자 키워나갔다.
1년 동안 침묵 속에서 고흐의 열정은 고조되었고 불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렸다. 자신과 같은 느낌으로 그녀도 사랑을 할 거라는 확신을 가진 고흐는 사랑을 고백하지만 약혼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불과 몇 분전까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충격이었다. 그가 결혼을 꿈꾸었던 여자에게 받은 것은 모욕뿐이었다.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하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았던 고흐는 그녀의 약혼을 깨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수포로 돌아간다. 목사가 되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녀 가까이 집을 얻어 보지만 그녀는 고흐의 사랑을 완강히 거부한다.
목사로 활동하면서 고흐는 미망인 케에게 다시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녀와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이 열릴 것만 같았기에 고흐는 또다시 감정을 억제할 줄 모르고 사랑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고흐의 사랑을 거절한다. 외골수 성격을 가진 고흐의 일방적인 사랑은 그녀에게 악몽이었다.
너무나 외로웠던 고흐에게 사랑은 절망적인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었는데 그는 그럴 때마다 매춘부들을 찾았다. 그의 고독을 채워 줄 존재가 필요했다. 사랑에 거절당한 깊은 분노를 달래주고 그의 침대를 덥혀 주고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사람은 사창가의 여자들뿐이었다.
고흐는 숨겨져 있던 고민과 좌절 근심을 매춘부들에게 풀어놓았고 그녀들에게는 익숙한 아픔이었기에 그를 이해하고 위로해주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그녀들은 고흐의 고통을 감싸 안아 주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사랑에 보상이라도 받을 것처럼 그는 매춘부들과 같이 생활을 한다. 그의 성적 욕구는 매춘부들과의 만남으로 탈출구를 찾게 되었다. 섹스는 고흐에게 희망이었다. 현실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섹스뿐이었다. 그에게 섹스는 종교처럼 고통 속에 얻어진 빛이었다.
매춘부 시엔과 같이 생활을 하면서 안정을 찾은 고흐는 그림을 그때부터 그리기 시작한다.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면서 그녀의 생활을 책임지고 그녀의 가족을 돌보기 시작한다.
그녀의 영혼이 순수하다고 생각한 고흐는 시엔과의 결혼을 꿈꾸지만 매춘부라는 이유 때문에 가족들은 격렬하게 반대한다. 하지만 고흐는 시엔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고흐는 그녀의 어깨 위에 걸려 있는 무거운 짐을 떠맡으려고 했지만 시엔은 그가 생각한 그런 여인은 아니었다. 고흐의 생각과 달리 시엔은 사랑에 관심조차 없는 매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매춘으로 돈을 벌어오기를 소망하던 시엔의 가족 때문에 고흐는 그녀와 헤어진다.고흐는 시엔과 헤어진 후 인생에서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

박희숙 / 서양화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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