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0:10 (목)
마르크스의 ‘자본’·‘공황이론’ 연구 위한 이론적 통로
마르크스의 ‘자본’·‘공황이론’ 연구 위한 이론적 통로
  • 곽노완 / 경상대·경제철학
  • 승인 2007.07.09 1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깊이읽기]<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 김수행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6

수십 년 동안 마르크스의 <자본>과 ‘현대 자본주의 공황이론’을 연구해 온 김수행 교수가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철학과 경제학을 가로지르면서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 및 다양한 공황이론, 현대 세계공황 분석, 1997년 한국의 경제위기와 공황에 대한 분석, 새로운 대안 사회의 기획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나아가 독창적인 공황이론과 대안사회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공황이론의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은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방법론 논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김수행 교수에 따르면, “자본의 일반이론은 <자본론>에 주어진 채로 고정되고 영구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구체적 현상들을 분석함으로써 얻는 새로운 개념과 지식으로 <자본론>에 있는 일반이론을 개선하고 풍부하게 해야만 한다.”(49쪽)

독자적공황이론의 방법론 제시
이러한 테제는 <자본>을 단계론과 철저히 단절된 원리론으로 보며, 자본주의 단계분석과 현실분석에 무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우노학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또 <자본>을 자유경쟁자본주의에만 타당한 단계이론으로 국한시키는 스즈키학파에 대한 그의 비판은, 언급되진 않았지만 논리역사주의 및 부분적으로 조절학파 등의 단계론에 대해서도 비판의 통로를 열어준다. 그의 이론적 개방성과 철학적 내공이 빛나는 부분이다.
이러한 <자본>의 방법론에 대한 테제에 기초하여, 김수행 교수는 독자적인 공황이론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세계공황에 관한 이론은, 국민경제 차원이나 자본주의 생산양식 차원의 공황이론에서 출발하여 이 공황의 국제적 파급과정을 연구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세계경제 전체를 독자적인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58쪽)라는 그의 문제제기는 바로 ‘공황이론’의 방법론과 관련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세계공황을 연구하는 출발점은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국민경제 또는 산업에서 가치증식활동을 벌이는 자본들의 이윤율 동향이다”(60쪽)라고 답한다. 물론 “구체적인 수준에서는 이자율·환율·무역규제·자본통제 등등”(60쪽)도 이윤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이러한 대답은 <자본>의 방법론에 대한 김수행 교수 자신의 테제와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1971년 금태환이 정지되고 1973년 이후 고정환율제가 폐기되어 변동환율제도로 대체됨에 따라 현대 자본주의에서 이자율과 환율은 순수하게 경제내적으로 결정되지도 않으며 또 투기와 공황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게 증가되었다. 따라서 김수행 교수의 방법론에 따를 경우, 일반적인 ‘공황이론’은 이러한 요소를 감안하여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세계공황을 연구하는 출발점”은 일반적 ‘공황이론’의 확장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렇게 일반적인 공황이론이 확장될 때 세계공황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래 국지화된 공황(1997~1998년 한국과 동남아의 공황, 이후 러시아, 터키, 아르헨티나의 공황)도 심층적으로 분석될 수 있고 또 분석되어야 한다. 물론 그는 1970년대 이후 세계공황과 1997~8년 한국의 공황을 분석할 때 이자율과 환율의 요소를 중시하고 있다(385쪽, 392쪽, 471쪽). 그런데 논점은 단지 이러한 요소를 중시하는가, 또는 경시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1970년 후반 이래 일어난 현대의 공황형태들, 곧 중남미 외채공황, 1991~1992년 유럽의 환율위기, 1997년~1998년 한국과 동남아의 외환위기, 그리고 이후 러시아, 터키, 아르헨티나의 외환위기 등이 왜 압도적으로 금융 또는 외환과 결부되어 발생하는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다.

대안사회에 대한 논의는 이중적
방법론을 건너 일반적인 공황이론을 보자. 김수행 교수는, 이윤율의 저하가 필연적이라고 보면서 이로부터 완결된 공황이론을 도출하는 근본주의자들의 테제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신용이 공황의 원인은 아니더라도 필수적인 계기임을 강조한다(269쪽). 그는 이윤율 저하는 필연적이진 않지만, 현실적인 이윤율의 저하가 이자율의 급등과 결합될 때 공황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윤율이 현실적으로 저하하는 주요 계기는 신용의 과잉에 의한 거래와 생산의 투기적 확장이 실패할 경우이다(301쪽). 물론 그의 신용이론과 투기이론은 드 브뤼노프의 신용이론(303쪽), 이토의 투기이론(313~317쪽),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467쪽) 등과 접점을 가지면서도 차별적이다.
또 김수행 교수의 테제는 <자본>의 일부분에서 완결된 ‘공황론’을 재구성하려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시도들, 곧 근본주의·과소소비론·과잉축적론, 그리고 불비례설 등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그의 테제는 공황의 원인을 계급투쟁으로 인한 임금상승 및 이윤율저하로 환원하는 스티드만 등 신리카도학파 및 자율주의(네그리/하트<제국>)의 테제를 넘어서는 통로도 보여준다.
물론 앞서 보았듯이 변화된 이자율과 환율의 성격을 공황의 일반이론에 통합할 수 있다면 그의 테제는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충분히 이론화되진 않았지만,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로 달러화의 폭락 및 미국 제국의 몰락과 세계대공황의 가능성을 지적하는 부분은 이미 그러한 발전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김수행 교수는 ‘제국’의 몰락을 새로운 대중(Multitude)의 투쟁과 ‘대항제국’의 건설로 일면화시키는 네그리/하트의 ‘제국론’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대안사회에 대한 논의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론, “생산자들이 자주관리하며 위계제도를 철폐하는 것은 연대주의적 생산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중요하며, 시민들의 욕구를 공동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활동분야들(예: 교육·보건·교통)에서 공동체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해 계획적으로 사회적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도 공산주의의 우수성을 알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497쪽)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 보증된다면, 개별 생산자들은 창의성·혁신성·헌신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는 레보비츠의 견해를 수용한다(494쪽).
그러나 필요에 따른 소비 자체만으로는 창의성과 혁신성, 헌신성이 극대화되지 못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생산자들이 “능력에 따라 노동”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만 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주의 2국면에서의 경제원리를 따르는 레보비츠의 견해는 유토피아적이지 않을까? 오히려 ‘일정비율의 성과에 따른 소비와 일정비율의 필요에 따른 소비’가 하나로 통합될 때, 각자가 능력에 따른 노동을 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소비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성원 각자의 필요에 따른 소비를 극대화하게 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는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체제를 모색하는 것이 옳고 빠른 길이다”(522쪽)라는 테제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부분이다.

‘마르크스 이론’ 독창적 사고 보여줘
그런데 다른 한편 당장의 대안으로는, 내수기반 확충과 양극화 축소, 비정규직 폐지, 사회보장제도의 확대 등 “유럽의 선진국들이 걸어온 길”(530쪽)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길은 자본주의를 넘어설 계기를 내포하지 않는다. 이러한 길이 어떻게 앞에서 제시한 공산주의적 길로 연결되는 지 모호하게 남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에 210조원 이상 쌓여있는 연기금을 통해, 그리고 이미 공적자금이 투여된 은행을 사회화하고 이에 기초해 기업이 진 은행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여 자본주의적 기업을 새로운 공산주의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될 때, 이런 이론적 비일관성이 사라질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후속 연구성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서평은 이 책의 일부로 연결되는 통로에 불과하다. 이 책은 훨씬 더 깊고 넓은 내용과 논점을 포괄하고 있다. 전공을 불문하고 이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연구할 사람들과 ‘공황이론’을 연구할 사람들에게 또 다른 많은 이론적 세계로의 통로를 열어준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많은 이론가들을 다루면서도 그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저자 스스로의 독창적인 사고를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마르크스 연구와 ‘공황이론’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으며, 향후의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데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곽노완 / 경상대·경제철학



필자는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금융공황론의 철학적 근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맑스와 더불어 21세기로>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