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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토론은 기본, 제대로 소통할 능력 갖춰야
연구·토론은 기본, 제대로 소통할 능력 갖춰야
  • 오세정 /서울대·물리학과
  • 승인 2007.07.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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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글쓰기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상>

 최근 많은 대학들이 이공계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공계 글쓰기 교육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두 교수가 이공계 글쓰기 교육현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두 번에 걸쳐 싣는다.

일러스트:이재열
최근 이공계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대 공과대학을 비롯한 몇몇 대학에서는 학부생들에게 글쓰기 강좌를 필수화하거나 할 예정이고, 그 외 대부분의 대학에서도 이공계 대학생들의 기초 교양교육에서 글쓰기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매우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아무리 전문기술직이라고 하더라도 자기의 좁은 분야에서만 안주하여서는 발전하기 어렵고, 외부세계와의 소통이 매우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쓰기가 외부와의 의사소통에 가장 중요한 도구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실이다.

글쓰기 교육, 목적에 맞게 설계돼야
그러나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 시간을 늘리거나 필수로 만드는 것만으로 이공계 학생들의 외부와 소통하는 능력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쓰기 교육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에 맞게 적절히 설계되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공계 글쓰기 교육이 지향해야 할 교육적 목표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공계 글쓰기 교육에서 가장 먼저 달성해야 할 목표는 전공분야 내에서의 의사 소통능력 향상일 것이다. 이공계 전문인력은 자기가 달성한 기술적, 학문적 업적에 대하여 끊임없이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학문적인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결과를 얻었으면 학술논문을 작성하여 동료학자들의 검증을 받아야 하고, 기술 개발을 완성하면 후임자나 관련 부서의 동료들에게 그 내용을 기술보고서 형태로 정확히 기록하여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공계 학생들은 수식을 사용한 문제풀이에만 익숙하여서인지 자기가 연구하여 알아낸 새로운 지식이나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기술의 의미와 내용을 요령있게 기술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는 석·박사 과정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학위논문의 경우도 논리적 체계가 적절하지 못하여 그 연구를 지도한 지도교수조차 문맥을 따라가기 어려운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연구과제들이 대형화되면서 팀원들 간의 의사소통이 프로젝트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으므로, 앞으로 분야 동료들 간의 소통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과학지식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둘째로는 일반 대중과의 의사소통 능력 계발이다. 과학기술 문명이 발전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올바른 과학 지식과 기술의 활용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수많은 옳고 그른 건강 지식의 범람을 들 수 있으며, 하다못해 휴대폰 같은 전자기기를 사더라도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기설명서를 충분히 숙지하여야 한다. 또한 유전자 조작식품이나 핵폐기물 저장시설의 허용 여부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일반인들이 올바로 판단하기 위해서도 그 분야의 객관적인 사실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들이 자기 분야의 전공 지식을 일반인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과학기술 전공자들끼리의 의사소통과 또 달라서,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정확한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기술을 필요로 하므로 실제로 이공계 종사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의 하나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일반시민들의 과학에 대한 소양과 이해가 사회발전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므로, 이공계 전문인력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이공계 글쓰기 교육의 또 다른 주요 과제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일반적인 사회 이슈에 대하여 이공계 인재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개진할 수 있는 능력의 계발이다. 과학기술인들은 민주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며, 과학기술 문제가 아닌 일반적인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도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이끌어 가야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특히 이공계 전공과정을 통해 받은 과학적 사고방식 훈련은, 일반적인 사회 문제에 대하여도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논리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능력을 키워주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이슈(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한미 FTA’ 나 ‘대학의 자율성과 교육의 공공성 간의 충돌’ 등)에 대해서도,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의견 개진을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과학기술자들이 사회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자체의 교육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공계 학생들에게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공계 전공자는 사회에 진출하면 학회에서 자기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거나, 회사에서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프리젠테이션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개발 못지않게 ‘유통’능력 중요
그런데 똑같은 결과라도 남에게 설득력 있게 발표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성패와 학계에서의 인정 여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 경우 글로벌 시대에 대비한 영어 발표를 염두에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글로벌화와 지식기반경제에 기초한 무한경쟁시대로 들어왔다. 이러한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과학기술력이 국가경쟁력의 요체이다. 그런데 한 국가의 과학기술력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연구 개발 능력이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겠지만, 그 지식과 기술을 적절히 확산시키는 ‘유통’ 능력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실 한국의 이공계 전공자들은 외부와의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과 달리 중고교 교육에서 발표 훈련이 잘 되지 않고, 대학에서도 인문사회계와 달리 이공계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이공계 글쓰기 교육을 통해서 한국의 이공계 전공자들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외부와의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되기를 기대한다.

오세정 /서울대·물리학과


 

필자는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광전자분광학에서의 공명과 이완 현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8년 한국과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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