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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21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문화비평] 21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김민수 디자인문화비평
  • 승인 2001.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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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30 10:34:01

김민수/디자인문화비평 편집인. 전 서울대 교수

2101년 9월 11일, 우주를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다. 가상현실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미국이 화성에 세운 높이 220층 너비 20만평의 최대 전진기지, ‘우주방어 무역센터’가 미확인 종족의 동시다발성 우주선 자살테러를 받아 완전 붕괴됐다.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난 것은 물론이다. 생중계된 이 사건은 지구에 생존해 있는 전인류는 물론 피해당사국 미국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한 세기마다 반복되는 이같은 자살테러 대참사에 치를 떨었다. 20세기 중엽 태평양 진주만에 불나방처럼 뛰어든 일본의 자살특공대 가미가제가 첫 번째 서곡이었다. 21세기초엔 아랍의 한 갑부가 배후조종 했다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테러가 있었다. 이제 세 번째 대참사가 외계의 화성에서 또 일어난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지구 전언론은 화성테러 대참사를 특종보도하고 발빠르게 각계 전문가들이 보는 사건의 의미와 전망을 내놓았다. 그들 중 한국의 한 디자인문화비평가는 “문화적으로 20세기 초 타이타닉호의 침몰에 필적한다. 21세기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이번 화성 우주방어촵무역센터의 붕괴는 기술문명과 오만이 낳은 비극적 합작품”이라고 차분하게 평했다.

미국은 지난 백년 동안 각종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부분 주요 시설물과 도시를 우주에 건설해 왔다. 이 계획은 21세기 초, 유전자 염색체 때문에 초강경 외교를 펼쳤던 故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시작됐다. 세계백과사전에 따르면 당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데는 플로리다 선거구에서 헷갈리게 디자인된 투표용지가 한몫 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테러분자들을 따돌리고 우주에서 전쟁을 벌이기 위해, 달과 화성에 도시를 건설하고 ‘우주발사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했던 것이다. 한데 이번 일로 자살테러는 고도의 수학적 확률계산이나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인간이 앙심만 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짐”을 입증했다. 마치 먼 옛날, 미국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어떤 나라의 휴대폰 광고처럼.

미확인 종족의 테러로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해 인류는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테러분자의 정체가 외계인인지 지구인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성을 잃은 미국과 일부 동맹국들만이 확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백년 전, 자살테러 배후인물로 미국이 응징했던 오사마 빈 라덴의 후손들이 안드로메다 은하계로 도망가 외계인을 조직적으로 훈련시켜 화성 테러를 감행했다고 믿고 있다. 이에 지구의 지식인들 사이에선 최소한 ‘유전자 복수혈전’으로 치닫는 우주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 와중에 초상집 조문을 빙자해 잽싸게 관련법을 개정하고 범죄적 야망을 불태운 ‘잔머리 국가’도 있다.

일본 총리는 사건 직후 “미국에 대한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테러공격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며 “보복공격에 파병한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故 고이즈미 전 총리가 백년 전 미국 대참사 때 했던 말과 똑같다. 당시 일 총리는 자신들이 극악무도한 가미가제 전술의 창시국이면서 안면에 철판 깔고 이런 말을 하고, 주변국을 방문해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간계’를 부렸다. 유전공학의 개가로 게놈지도가 완성된지도 어느새 백년이 흘렀다. 후속연구 덕에 불치병 노인성치매와 간질치매가 사라진지는 근 칠십년이 지났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간질치매국이다. 그들은 22세기에도 과거사 망언은 물론, 거듭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왜곡을 발작적으로 해오고 있다. 일본은 이번 화성테러를 기회로 자위대법을 완전히 바꿔 대동아공영권을 회복하고, 나아가 旭日昇天棋를 우주에 꼽으려는 야망을 품은 것이다.

안드로메다 은하계와의 우주전쟁이 임박한 어느 날, 한국의 한 가정집 TV에선 저녁뉴스가 흘러나온다. 가족들은 거실에서 ‘가상현실 프로젝션 TV’를 보고 있다. 이 TV 기술은 지난 세기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그냥 앉아서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투사된 방 전체가 3차원 정보로 채워지고 시청자가 참여할 수 있는 소위 ‘인터랙티브 몰입형 TV’인 것이다. 모그룹 회장이 조직폭력배와 정관계 유력인사들과 유착되어 벌인 로비의혹 사건의 수사가 답보상태라는 뉴스가 방안에 가득하다. TV 기술만 최첨단일 뿐 콘텐츠는 백년 전과 변한 게 없었다. 어린 딸이 “엄마, 로비의혹이 뭐야?”하고 물었다. 양파를 까던 엄마가 매운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중얼거렸다. “양파처럼 벗길수록 눈물만 나는 것이 로비의혹이란다. 바쁜데 말시키지 말고 궁금하면 머리 위에 떠있는 정보채널로 직접 검색해보렴!” 22세기 초 귀뚜라미가 사라진 한국의 가을밤, 가상현실과 같은 사건들로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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