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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절단으로 6개월간 겪은 ‘충격’
러시아 사절단으로 6개월간 겪은 ‘충격’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7.02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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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해천추범_1896년 민영환의 세계일주 민영환 지음 | 조재곤 편역 | 책과함께

“오전 5시에 밴쿠버 항구에 배를 대었다. … 호텔은 5층 높이에 넓게 트인 집이었는데 오르고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을 헤아려 아래층에 한 칸의 집을 마련하여 전기로 마음대로 오르내리니 기막힌 생각이다(호텔 층마다 모두 있다).”

1896년 세계일주를 했던 민영환은 북미 대륙의 한 호텔에서 난생 처음 구경한 엘리베이터를 이와 같이 표현했다.

<해천추범(海天秋帆)>은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절단의 일원으로 떠났던 민영환이 6개월 동안 전세계를 돌아보고 적은 기행문이다.

사절단은 일본, 중국을 경유하고 캐나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를 거쳐 러시아에 도착했다. 돌아올 때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해 러시아 전역을 지나 귀국했다. 서구 근대문물을 폭넓게 접하고 배워오는 특수임무를 겸한 외교 순방이었던 셈이다.

서구 국제사회에 처음 진출한 이들에게는 인구 300만이 사는 뉴욕, 사정거리가 50리에 달하는 포탄을 실은 러시아 군함 등 눈앞에 나타난 모든 것이 문화적 충격이었다. 베를린에서 근대화 궤도에 오르고 있는 서구 열강의 저력에 감탄했고 백야 현상과 시차 변화를 직접 체험하며 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도 했다.

과거 번영을 구가했던 자주국 폴란드가 백성을 능멸하며 쇠락해가다 결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경계심을 가졌다.

러시아 곳곳에 촌락을 형성하고 조선 문화를 그대로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는 조선인 이주자들을 직접 만나보고 반가움을 나누기도 했다. 

조선이 강대국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늘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민영환에게 이 세계여행은 마냥 신기하고 흥미로운 여행일 수만은 없었다. 러시아와의 협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그가 집이 떠나가도록 한숨을 내뱉는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큰 군함 만드는 광경을 보고 “장차 하느님이 살아있는 영혼을 편안케 하려면 반드시 병기를 모두 녹여 부어서 농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기록돼있다.

사절단이 러시아에서 수행할 계획이었던 임무는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 중이던 고종의 환궁 후 신변보호를 위한 왕실 수비병 파견 및 경비 지원 △일본국채 상환을 위한 3백만 엔 차관 제공 △조선-러시아 간 전신선 가설 △러시아 재정고문 및 군사고문 초빙 등을 담은 비밀조약을 러시아와 체결하는 것이었다. 결국 재정고문 및 군사고문 초빙만 합의돼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후 민영환이 주장한 근대식 군제개편안이 1899년 국정에 채택되는 등 사절단이 이 여행에서 얻은 견문은 조선의 개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게 된다.

원래 한문으로 적힌 이 <해천추범>을 완역한 저자는 사절단의 다른 일원이었던 김득련의 한시집 <환구금초>와 윤치호의 <윤치호 일기>를 덧붙여서 당시 정황을 보다 생생하게 되살리고자 했다.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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