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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사무라이는 닮은꼴?
선비와 사무라이는 닮은꼴?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7.02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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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호사카 유지 지음 | 김영사 | 2007

우리가 ‘선비 사’로 부르는 ‘士’는 조선에서는 선비를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학문을 연마하며 벼슬살이를 하거나 재야인사로 남아 나라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던 조선 선비. 주군을 위해 싸운 대가로 땅을 하사받아 성을 짓고 살며 영지를 통치했던 일본 사무라이. 판이하게 다른 역사적 위상을 가진 이들 두 ‘엘리트’가 같은 한자로 표현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인 교수인 저자는 이들이 각각 ‘붓과 칼’로 상징될 만큼 달라 보이지만 실은 닮은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 뼈대는 바로 성리학.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문화가 전파되는 전형적인 흐름을 생각하면 사무라이가 선비로부터 성리학 정신을 상당부분 전수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납치된 조선 유학자 강항은 주자학의 이념을 일본 상류사회에 전달하는 사자였다. 이에 따라 계약관계에 가깝던 사무라이와 주군의 관계는 ‘충성’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선비와 왕의 관계처럼 변해갔다. 특히 훗날 일본 유학의 기초를 세운 후지와라 세이카라는 인물은 강항에게서 배운 유학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0년 일본의 저명한 교육자인 니토베 이나조가 사무라이의 도리를 설명한 <무사도>는 선비 정신과 사무라이 정신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사무라이의 덕목은 △주군에게 충성을 다할 것 △부모에게 효도할 것 △스스로를 엄하게 다스릴 것 △아랫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할 것 △부귀보다 명예를 소중히 할 것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 등으로 선비의 덕목과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둘 사이에는 차이점도 많다. 선비는 성리학에 접근하는 이념에 따라 정파를 형성했지만 사무라이는 철저히 군사력에 따라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승패를 갈랐다. 선비는 주자의 성리학을 조선의 것으로 심화·발전시켰지만 사무라이는 손자병법을 기본사상으로 삼고 성리학은 보조적으로만 활용했다.

선비와 사무라이를 비교·재조명함으로써 한·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저자는 일본이 조선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핵심인 심성론을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꼬집는다. 성리학 중 ‘명분쌓기’라는 측면만 중시한 일본이 근대사에서 자신의 군사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늘 세계여론에 호소해왔다는 것이다.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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