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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벗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
‘소외’ 벗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
  • 정재걸 / 대구교대·교육학
  • 승인 2007.06.2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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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노인혁명> 홍승표 지음 | 예문서원 | 2007

  얼마 전에 개봉된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들의 성생활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노인들의 성적 욕망을 사실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긍정적일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성적 욕망에 매달리는 것이 비참한 일은 아닌가.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교육 프로그램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대부분 ‘죽어도 좋아’에서와 같이 나이든 노인들도 충분히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홍승표 교수가 <노인혁명>에서 먼저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어리석음이다. 홍교수가 보기에 이러한 노력은 소멸해 가는 근대적 세계관, 즉 노동은 궁극적인 가치의 자리를 차지하며,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려는 마지막 절규에 지나지 않는다.

“소외받고 있는 집단들 의식화 돼야”
홍교수의 주장과 같이 현대는 노인들에게 가장 불행한 시대이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은 추하고 불행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에 갖고 있었던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비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검은 머리카락, 직장, 돈, 권력, 사회적 지위, 미모, 팽팽한 피부, 단단한 근육, 건강, 강한 성욕과 성행위 능력 등과 같은 것들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런 노인들의 모습은, 비유하자면, 가을이 깊었는데도 아름답게 물들기를 거부하는 나뭇잎과 같다(115쪽).
홍교수의 노인혁명은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닮았다. 즉 가장 소외받고 있는 집단이 혁명의 주역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소외받고 있는 집단들을 의식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노인들은 가장 소외받는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새로운 문명의 주역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물론 노인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같이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혁명이다. 노인혁명은 <周易>의 澤山咸괘와 같이 상호 교감에 의해, 즉 수행을 통한 자기 변화와 교육에 의해 이루어진다. 물론 이 때의 교육은 깨달음이 깊은 노인들이 담당하게 된다.
이 책은 몇 해 전 발간된 홍교수의 <깨달음의 사회학>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깨달음의 사회학이 통일체적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소개라면, 이 책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홍교수는 ‘인류를 다가오는 재앙으로부터 구출하고, 새로운 삶과 문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이 책을 집필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6쪽).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노인 혁명의 구조적 요인으로 근대적 세계관과 현대문명의 위기 증대, 정보화에 따른 노동의 종말, 그리고 노인 소외의 심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제1부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유한의 대중화’이다. 이는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확대 발전시킨 개념으로, 정보화로 인한 노동의 감소와 그로 인한 유한인구의 증대를 말한다. 근대적 노동관의 관점에서 보면 유한의 대중화란 인간이 생산 영역에서 추방당하는 것, 즉 인간이 생산 노동을 통해서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는 통로가 막혀 극단적인 형태의 인간 소외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홍교수가 제안하는 통일체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보면, 유한의 대중화란 진정한 인간 해방의 신호이고, 노인혁명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개념이다.

“현재 노인들은 혁명의 주역이 될 수 없다”
제2부에서는 노인혁명의 과정으로서 통일체적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나이듦의 새로운 인식, 통일체적 세계관을 깨닫기 위한 의식화 작업, 그리고 수행을 통한 자기 변화를 서술하고 있다. 즉 어떻게 하면 불행하고 추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에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가 하는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나이 들어감을 발전적으로 해석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 즉 통일체적 세계관을 가짐으로 가능하다. 노인은 이러한 세계관을 통해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노인혁명을 통한 새로운 유토피아를 사회구조, 교육, 정치, 경제, 가족, 대중매체의 측면에서 그 개략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홍교수의 <노인혁명>은 토플러류의 근대적 관점에서 미래를 설계한 책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과 유사한 책이다. 그만큼 이 책에는 저자의 많은 안타까움과 절박함이 녹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홍교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의 노인들은 혁명의 주역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제2부 제3장의 ‘의식화 작업’에서 홍교수는 노인혁명의 주된 의식화의 대상은 연령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 층이라고 하고 있다. 즉 아름답고 행복한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에 늦어도 중년기부터는 의식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말 이 시대의 노인들은 혁명의 주역이 될 수 없는가. 근대적 세계관을 가진 노인들이 혁명의 주역이 될 수 없다면 노인혁명은 자기모순이다. 홍교수는 현대적인 삶이 근원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의식화의 첫 걸음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삶이 근원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누가 더 쉬운가? 젊은 층인가, 아니면 소외된 노인들인가? 의식화가 현대적인 삶과 문명이 추구하는 돈, 권력, 명예, 지식, 인기, 지위, 미모, 건강 등과 같은 것들이 부질없는 것임을 자각하는 것이라면, 누가 더 용이하게 이러한 것들이 부질없음을 깨달을 수 있을까.
현재의 노인들이 새로운 혁명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나이든 노인들도 충분히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소외된 근원적인 이유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직접 가르쳐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이-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최근 시행되고 있는 ‘노인들을 위한 죽음준비 교육 프로그램’이다.
서울의 각당복지재단 등 몇몇 사회복지법인과 종교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는 노인들을 위한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삶이 죽음과 분리될 수 없음을, 그리고 죽음이란 인간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마지막 성장의 기회라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홍교수가 말하는 통일체적 세계관에 대한 의식화에 비교하면 이러한 프로그램은 상당히 미흡하다. 그러나 통일체적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죽음준비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된다면, 노인혁명은 지금 여기서 소외받고 있는 노인들에 의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통일체적 세계관에 입각한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죽음준비프로그램’, 노인혁명의 시작
또 한 가지 이 책의 아쉬움을 든다면 제1부와 제2부의 치밀함에 비해 제3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청사진은 그 치밀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홍교수가 제안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 경제, 정치, 가족, 대중 매체 등의 묘사는 비록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지만 아직 선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물론 새로운 유토피아 건설의 원대한 작업이 아직은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이러한 아쉬움은 인내를 가지고 해소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문명 비판서가 아니다. 이 책은 근대적 노동관을 움켜쥐고서 기술 발달의 필연적인 결과로 초래되는 유한의 증가를 어떤 식으로든지 저지해 보려고 하는 우매한 인류를 질타할 뿐만 아니라, 이를 극복할 새로운 세계관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왜 문명화된 국가일수록 더 고통스럽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잘 분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문명이 가능한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우리들에게 장차 ‘왜 빌 게이츠가 아니라 틱낫한 스님을 모델로 삼아’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재걸 / 대구교대·교육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조선전기 교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교육사> <만두모형의 교육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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