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31 00:00:00
체제와 역사는 다르지만 국가간 대학의 성장과정은 비슷한 양상을 띤다.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간의 대학개혁의 모습은 여러모로 닮게 마련이다. 중앙대 인문과학연구소(소장 김호일 교수)가 지난 11일 개교 82주년을 기념해 자리를 만든 ‘아시아, 전환의 세기와 대학개혁’에 관한 국제학술회의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 담론과 유교자본주의 논쟁이 보여주듯이 동북아 3국이 걸어온 지난 50년간 대학개혁의 양상 또한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특히 90년대 추진된 대학개혁 정책은 공통점이 많다.
우리나라가 ‘5·31교육개혁 방안’(1995)을 입안할 즈음, 중국은 교육개혁의 강령 구실을 하고 있는 ‘교육개혁과 발전요강’(1993)을 발표했고, 일본도 전후 50년간을 지배해 왔던 ‘신제대학’ 체제를 무너뜨린 ‘대학설치기준’ 개정(1991)을 단행했다. 또한 지난해 발표된 두뇌한국(BK)21 사업은 중국이 지난 9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대학중점육성 전략인 ‘211 工程’과 비슷하고, ‘국립대 발전계획’은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 계획’과 내용과 형식이 흡사하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베끼기인지, 주체적 노력인지 단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전환기를 맞아 동북아의 교육정책이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고 있는 점은 동일하다.
중국을 먼저 보자. ‘중국대학의 개혁 전망’을 주제로 발표한 유병호 연변대 교수는 5·4운동에서 문화 대혁명, 천안문사태에 이르는 중국 현대사에서 대학의 변화모습과 교육정책의 추진 과정을 설명했다. “중국의 대학개혁은 문화대혁명을 분수령으로 크게 구분된다. 그 이전은 사회주의 이념을 갖춘 공산주의 사업의 후계자 양성에 초점을 둔 반면, 그 이후는 국가의 현대화를 담당할 기술인재 양성이 주요한 목표”라고 설명했다. 유교수의 발표에서 주목할 부분은 ‘211 工程’이었다. 지난 93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이 사업은 “21세기를 맞으며 100개소의 중점대학과 중점학과를 건설한다”는 것으로, 현재 중국정부의 핵심적인 대학개혁 정책이다. 그 맥락은 우리나라가 추진하고 있는 BK21 사업과 흡사해,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뒷받침할 우수한 첨단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고 대학의 교육의 질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대학개혁은 특히 90년대를 주목해야 한다. 우마꼬시 도오루 나고야대 교수는 ‘일본 대학개혁의 과제와 문제점’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일본의 대학은 전후 1949년에 제정된 ‘학교교육법’을 토대로 한 ‘신제대학’ 체제(일반교육·과정제교육·대학기준협회 등 세 가지 제도기 골간)로 유지되다가, 91년 ‘대학설치기준’을 개정하면서 급속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대학개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90년 들어 나타나고 있는 ‘다양화’ 현상이라는 것이 유교수의 지적이다. 학부에선 일반교육과 전문교육을 구분해온 교육과정이 해체되면서 대학마다 다양한 교육과정이 전개되고 있고, 대학원 또한 정형화된 과정이 해체되고 독립대학원, 연합대학원 등 다양한 학제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대학정책 중 우리의 그것과 흡사한 것은 ‘대학원중점화 사업’과 ‘국립대 특수법인화’ 계획이다.
결국 이날 학술회의에서 주목되는 것은 유사한 동북아 3국의 대학개혁의 목표가 창조적 지성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기 보다 근대화의 때를 벗지 못한 국가 전략적 산업역군과 인재양성에 치우치고 있으며, 개혁의 방식도 구조개혁에 쏠리고 있다는 지적으로 볼 수 있다.
이점에서 전환기를 맞는 아시아 대학 개혁의 방향은 행사서두에 기조발제를 통해 던진 이광주 교수의 지적으로 돌아가야 할 듯 하다. “아시아 근대화의 좌절은 높은 이상을 지향하며 비판하는 열린 지성의 부재에 기인한다. 단순한 전문직이 아닌 담론을 전개하고 비판하며 때로는 기성의 관념이나 체제와 ‘적대적’으로 맞서는 진정한 지성의 창출이야말로 아시아 대학의 최대 과제여야 한다”. 과연 아시아의 대학이 갈 길은 어디인가. <안길찬 기자>
저작권자 © 교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