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9:40 (금)
‘학문적 재충전’ 옛말…연구 집중 강조
‘학문적 재충전’ 옛말…연구 집중 강조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7.06.18 1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_연구년이 바뀌고 있다]연구년 규정 강화하는 대학들

5년 전 정년퇴임한 A교수는 1983년 미국에서 일년간 보낸 안식년을 떠올리며 “좋은 시절을 살았다”고 말하곤 한다. 현지 학자들과 공개 세미나에 참석하며 최신 연구 성과를 접한 그는 “학문적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에 안식년은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B교수는 지난해 연구년을 보냈다. 미국으로 가기 전 구체적인 연구주제를 정하고 돌아온 이후 계획까지 꼼꼼하게 세웠다. 돌아오자마자 연구년을 통해 얻은 성과를 논문으로 정리해 학술지에 게재했다. 현지 학자들과 공동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일년 동안 “놀 시간 없이” 공부했다는 그는 “이제 아무 준비 없이 떠나면 안 되겠더라”고 강조한다.

‘쉬는 시기’에서 ‘연구 집중 시기’로
교수들의 연구년(안식년)이 달라지고 있다. 연구년의 개념이 ‘강의 부담을 맡지 않고 재충전 하는 시기’에서 ‘미뤄둔 연구과제를 정리하는 시기’로 변한 것이다. 당장 연구년을 마치고 돌아온 뒤 연구보고서 제출은 물론 관련 논문을 일정 기한 내 전문학술지에 게재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늘고 있는 추세다.
연구년 심사 기준을 강화해 교수를 ‘선발해서’ 보내기도 한다. 이윤화 안동대 교수(사학과)는 “연구년은 이제 ‘강의를 면제해 줄 테니 그동안 연구를 하라’는 뜻으로 바뀌었다”며 “바로 지금이 안식년과 연구년 사이의 과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년 변화상은 대학 규정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교수평가에서 연구업적 평가 비중이 커졌고 재임용·승진 심사를 강화하는 경향이 연구년 제도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최근 몇 년 사이 연구년 제도를 대폭 강화했다. 연구년을 마친 뒤 논문을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등 일정 수준 이상의 학술지에 발표하거나 저서, 연구실적물을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어길 경우 차기 연구년을 신청할 수 없거나 교재 연구비 등의 지원이 당분간 금지된다. 연구지원을 제한하거나 연구년 당시 받은 급여·연구비 일부를 반납하라는 곳도 상당수다. 
연세대는 2003년 ‘연구년 교원은 복귀 후 논문은 6개월 이내에, 저술은 1년 이내에 소속 대학(원)장을 경유해 총장에게 결과물을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교무처 관계자는 “규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교수들의 연구실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 관계자는 “차기 연구년을 위해서라도 이전 연구년보고서 제출 원칙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며 “연구년을 다녀온 뒤 결과 보고가 늦어지는 사례가 많아 관련 조항을 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구민 안동대 교무처장은 “연구년 기간 중에 강의를 안 하는 대신 저술활동이나 연구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구년 규정 개정을 고려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한국외대 교무처 관계자는 “연구성과를 내도록 독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연구년 규정을 개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대는 2008학년도부터 일정자격이 있는 자에게 연구년 수혜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연구비를 상향조정할 예정이다.

“무조건 갈 수 없다” 일부 대학 선발 제한
일반적으로 연구년은 3년 이상 근속한 경우 1학기를, 6년 이상 근속한 경우 1년을 받는다. 이에 따라 자신의 순서가 되면 자연스럽게 연구년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일부 대학은 특정 기준을 두고 연구년 수혜자를 선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서강대가 대표적이다. 서강대는 지난 5월 새 조항을 마련해 연구년 휴직을 제한했다. △승진심사를 연기하거나 승진심사에서 탈락한 교원 △정년보장 교수가 매 2년마다 특정 등급학술지에 논문을 1편 이상 게재하지 못한 경우 △강의평가 표준점수에 미달된 교원 등에게는 연구년 휴직기간을 차감하거나 제한하는 내용이다.
김경환 서강대 교무처장(경제학부)은 이에 대해 “반드시 심사기준이 강화됐다고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기존에 최대 3회까지 연구년 기회를 제공했는데 그 규정을 폐지하고 3.5회, 4회까지 연구년 기회를 늘리는 반면 자격요건을 추가한 것”이라며 “정년보장 교수도 이제는 의무적으로 논문을 써야하는 상황이 연구년 제도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희대도 선발기준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교무처 관계자는 “현재 규정 개정을 검토 중”이라며 “연구 및 원어강의 등의 의무를 갖고 있는 교원이 의무이행을 못 한 경우 연구년 자격조건이 돼도 차순위로 제한을 둘 것”이라고 귀띔했다.

교수들 “연구 업적 중시하는 것 알지만…”
교수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연구실적을 제출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연구년을 보내겠다는 교수도 늘었다. 한 교수는 “이래저래 교수들이 불편해지고 있다. 연구 지원액수는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줄었는데 이행해야할 의무는 더 늘어났다”고 토로했다.
정요일 서강대 교수협의회장(국어국문학과)은 “서강대의 경우 보직교수는 보직이 끝난 후 포상 안식년을 주는 반면 일반 교수들은 연구실적이나 조건에 따라 명칭을 ‘연구년’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행정본부에서 일방적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 안 된다”며 향후 교수회 회의를 통해 연구년 제도를 재논의 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옥 동국대 교수협의회장(정보관리학과)은 “교수평가는 연구평가와 강의평가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강의평가는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연구업적 평가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연구년 제도에도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동국대도 일정한 연구업적이 없으면 연구년을 보내지 않는다”는 이 회장은 “정량적인 평가기준이 많은 것은 문제다. 학교별로 연구년 지원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요구수준은 똑같이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