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도 이러한 과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석유로부터 벗어난 사회경제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차례 당한 석유위기를 통한 경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금방 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석유경제의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와 환경을 공부한 후 둘을 동시에 엮어보려고 유학간 나에게 지도교수(J.Byrne)가 쥐어준 논문 하나가 나로 하여금 잠 못 들게 했다. 에너지전환이 사회경제의 근본적 전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역사분석이었다. 그 후 멈포드(L.Mumford)나 브로델(F.Braudel)과 같은 많은 학자들의 도움으로 석유 중심의 20세기 성장 경로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재생에너지에 바탕을 둔 소규모, 친환경적, 분산적, 민주적인 지속가능한 사회경제를 꿈꾸게 됐다.
처칠은 다가오는 독일의 도전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석탄 증기선을 석유로 전환해 기동력을 높일 때 가능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책적 결정을 통해 공급이 불안하고 비싼 중동석유를 확보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고 그 결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적중했다. 반면 일본은 중동석유 확보에 밀렸고, 미국에 의해 동남아 석유공급선이 위협을 받게 되자 하와이 함대를 공격했다(D.Yergin’s Prize)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석유문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맨하탄 쌍둥이 빌딩을 테러하여 전세계의 평화를 크게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테러는 대도시, 원자력, 정유공장, 화학공장 등과 같은 중앙집중적이고 거대한 기술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군사적, 정치외교적, 안전장치를 아무리 갖춰도 벗어나기 어렵게 구조화돼 있다.
이러한 현대 산업기술시스템을 뒷받침하고 있는 석유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질 때 근원적으로 변화를 최소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석유중심의 화석연료로부터 비롯된 중앙집중시스템과 대형건물, 모든 국가 인프라가 집중돼 있는 거대도시는 하나의 사고와 테러만으로도 모든 시스템이 마비되고, 크게 손상을 받을 수 있다.
수없이 흩어져 있는 소규모, 지방중심의 재생에너지체제에서는 전체 시스템의 마비 및 혼란이 원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생태계가 다양화될 때 안정성이 높이지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재생에너지는 엄청난 화석연료를 집어삼키는 대형건물과 대도시는 허용하지 않아 적당한 규모의 건물과 공간형태로의 전환이 일어나게 한다. 물론 동시에 일어나야 하지만 날로 심화되는 중동 석유의존도와 국지적이고 희소한 에너지인 석유가 야기하는 빈부격차로 인해 쌓이는 불만의 폭약과 전쟁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존조건을 위협하는 환경위기로부터도 자유로와질 수 있다. 미국과 이슬람간에 전쟁이 끝나고, 석유가 자유롭게 싼 가격으로 공급될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며 기뻐하는 삶, 즉 페르시안 걸프의 유전에 운명을 걸고 사는 것 못지않게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석유는 나날이 고갈돼가고 있으며,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에너지전환의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유토피안적인 꿈이라고 여기고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나, 재생에너지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이론을 준비하는 것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 학위 받을 때 선물 받은 멈포드의 첫 저서 ‘더 스토리 오브 유토비아즈’ 안쪽에 교수와 학생들이 메모를 남겼는데 그 중 하나를 번역하면 이렇다. “친애하는 종달. 인간의 가능성을 믿음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찾으십시오. 인간의 가능성을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찾지 마십시오. 토양은 항상 돋구어야 됩니다. 당신의 친구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