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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녹색사유를 찾는 지적 대화
[테마] 녹색사유를 찾는 지적 대화
  • 교수신문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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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7 16:34:37
●‘생태철학과 환경윤리’(구승회 지음, 동국대학교 출판부 刊), ‘녹색사회의 탐색’(조명래 지음, 한울 刊)

신중섭 / 강원대·철학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중심적인 사유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들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논의들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사회는 ‘위험 사회’이다. 위험의 징후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수백만 년 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자연과 최근 몇 백년 동안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도시에 위험이 널려 있다. 만물의 영장이었던 인간이 자연에 대해, 다른 인간에 대해 癌적인 존재로 변했다는 비관적인 진단도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어떻게 하면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연에게 자연을 돌려주고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학문적으로 고민해온 철학자 구승회와 사회과학자 조명래가 각기 ‘생태철학과 환경윤리’, ‘녹색사회의 탐색’을 출간하였다. 이 두 책은 철학자와 사회과학자의 차이가 무엇이고, 그들이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장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 두 책은 생명, 인간다운 삶,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생태, 환경 등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생태철학과 환경윤리’가 철학적인 관점에서 추상적인 본질과 세계관을 문제삼고 있다면, ‘녹색사회의 탐색’은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기초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두 저자 사이에 내적 교감이 없었지만 두 책은 동일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절묘한 대비와 조화를 이루면서 상호보완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구승회 교수는 ‘생태철학’과 ‘환경윤리’를 명확하게 구별한다. 생태철학은 자연에 ‘관한’ 철학, 생명유지체계로서 생태계 전반에 관한 철학적 반성인 반면, 환경 윤리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 등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활동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주요 과제로 삼는다고 한다.

이 책은 자연,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하여 생명공학의 문제로 끝난다. 또한 이 책에서 저자는 ‘德’을 자연과 인간을 통합하는 힘으로 파악한 동양의 세계관은 윤리적인 논의에 자연을 포함했다는 점에서, 자연을 ‘타자’로 파악하는 서양의 자연관과는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수행적, 반성적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다. 철학자는 ‘필요하다’는 말에서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생명공학의 문제를 다룬 12장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생명의 연금술사가 된 과학자들에게 윤리학은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기술적 성취가 언제나 기술에 대한 도덕적 반성과 저항의 역사 위에서만 가능했음을 잊지 말도록 가르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철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본질적인 것이긴 하지만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철학의 본질이며 동시에 철학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생태철학과 환경윤리’에서 저자는 기술에 대한 여러 가지 이해들, 생태주의 비판과 에코아나키즘, 환경주의 이데올로기와 머레이 북친의 사회 생태론, 환경윤리학의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을 정치하게 전개하고 있다. 서구적인 논의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국내의 생태철학과 환경윤리 연구 방향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 책은 규범 윤리학적, 응용윤리학적 방법을 통해 환경윤리의 쟁점들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 성격’을 갖는 순수 학술 서적이라 할 수 있다.

‘녹색사회의 탐색’은 자연친화적인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우리의 사유는 녹색을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공동체·제도·문명 등에 들어와 있는 반생명적이고 반자연적인 요소를 재성찰하는 것이 ‘녹색사유’라면, 이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확장하되, 방점을 자연 쪽으로 옮겨놓은 새로운 실천체제를 모색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인간 중심의 원리를 버리고 자연의 원리인 ‘생명·공생·공존·평등·순화’의 요소를 인간계 내에 복원해 인간의 삶이 자연의 흐름에 연동되는 사회가 곧 녹색사회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 속에 이 책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들어있다.

그의 분석은 환경문제의 발원지이며 주무대인 도시 환경의 실체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사유를 녹색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면 그 동안 우리는 ‘무엇’ 중심의 사고를 했기에 반생명적이고 반자연적인 사회를 만들어 놓았는가. 저자의 대답은 명확하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 때문이다. 서양의 근대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IMF 이후 우리 사회가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기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쫓겨났다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지구적 수준의 기술·지식·정보·자본력을 가진 한정된 집단이 경쟁 과정에 우월하게 참여함으로써 경쟁력이 약한 집단은 과거보다 더 철저하게 배제됐다. 뿐만 아니라 시장의 원리가 도시의 위기까지 몰고 왔다고 주장한다. 시장 경쟁의 원리가 관철되면서 도시의 삶은 경쟁과 배제, 사이버적 관계, 초국경화된 과정, 환경불평등이 관철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환경은 자본의 순환 과정과 연동돼 시장의 원리에 따라 운행될 때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과 사회 문제를 하나의 논리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철학과 환경윤리’가 담고 있는 복잡한 사유와 유보적인 태도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진단이 명쾌하기 때문에 처방도 명쾌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도시를 적정 규모’로 조정하여 메트로폴리탄 도시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적 관계’를 복원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공동체적 관계는 자연과 장소에 기초한 전통적인 유대관계와 결속을 되살아나게 하고, 자연과 인간 관계를 복원시켜주며, 자연의 질서에 따라 리듬과 방식이 실현되는 삶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녹색사회의 탐색’은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환경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이론적인 분석에 멈추지 않고 실제적인 사례를 많이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 교수의 책과 구별되며,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NGO의 역할을 소개하고 있는 2부 6장, 구체적인 실천 모델을 분석하고 있는 4부, 대안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5부는 구체적인 실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적 관계에 기초한 사회가 시장의 논리에 어떻게 대항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환경과 생태 문제는 철학이나 사회과학의 탐구 대상 이전에 인간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많은 이론가들이 환경 파괴를 세계관이나 시장 논리에 귀속시키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과잉 인구, 열악한 생활 조건에서 유래한다. 자연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자연 친화적인 세계관이 형성되고, 열악한 환경에서는 자연 정복이나 숭배 의식이 싹트기 마련이다. 이것은 동서양의 특성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시장 경제가 발전하여 풍요로운 나라가 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다. 먹고살기에 바쁜 나라는 ‘환경 보존’이라는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 철학이나 이론이 심화되고 깊어질수록 현실적 적합성은 떨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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