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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故 淵民 李家源선생 行狀
[특별기고] 故 淵民 李家源선생 行狀
  • 교수신문
  • 승인 2000.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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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을 밝히신 크고 높으신 스승
지난 9일 국학계의 석학인 연민 이가원 전 단국대 초빙교수가 타계했다. 고 이가원 교수는 ‘연암소설연구’, ‘조선문학사’ 등의 역작을 펴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고 이가원 교수의 제자이자, 그의 학문을 잇는 ‘연민학회’의 회장이기도 한 정범진 전 성균관대 총장이 고인의 행장기를 보내왔다.

정범진 / 전 성균관대 총장·중문학

한국 한문학계의 태두이시며 국문학과 중국문학에 걸쳐 큰 스승이기도 하신 이가원 선생님이 지난 9일, 만 83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선생님은 조선 명종 때의 대학자로 성리학을 집대성한 퇴계 이황선생의 후예로 경북 안동군 도산면 온혜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淵, 아호는 淵民 본관은 眞寶이다.
어려서는 친, 외가의 지방학자를 찾아 한학을 이수하여 초년에 이미 경학, 사학, 문학 등 동양의 고전과 우리 한문학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그 후 상경하여 일제 점령기였던 1941년에서 1943년 사이 명륜전문학원 연구과와 명륜전문학교 경학연구과를 졸업하였다. 조국광복 후, 즉 1952년에는 성균관대학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1966년에는 동대학원에서 ‘燕岩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로 선생님은 우리나라 고전문학연구에 온 힘을 쏟아 금오신화, 구운몽, 춘향전, 열하일기 그리고 연암의 한문소설 등등 수많은 작품의 譯·註·解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학계에 크나큰 공헌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학들의 고전연구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만년에 저술하신 ‘朝鮮文學史’ 3권은 노쇠하고 미양(微恙)하신 중의 저작이라 더욱 큰 의의가 있다. 그 풍부한 자료와 해박한 식견으로 평생을 준비한 끝에 집대성한 것이라 참으로 우리 나라 문학사 가운데서 대작이요 걸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이 수년 전 세상에 알려지자 이미 수많은 학자들의 극찬이 있었다.

백여종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 남겨
이 밖에도 선생님의 학술상의 업적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호여연혜(浩如煙海)하다. 저술만 해도 무려 백여 종에 수백 책을 헤아리니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어렵다. 한국고전문학 이외에 특히 한문학과 한문문장은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그 권위는 아무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한문학의 기초 위에 만약에 선생님께서 중국어와 같은 외국어 한 가지만 더 구사하실 수 있었다면 아마도 세계를 놀라게 할 큰 학자로 널리 알려졌을 거라고 믿는다. 그것은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 선생의 문집을 접해보고 이구동성으로 巨儒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슬하에 6남 3녀를 두셨고 청·장년기에는 영주, 김천, 동래, 부산, 경남 등 여러 중·고등학교를 전전하면서 교편 생활을 하셨고 그 후 서울에서 성균관대를 거쳐 연세대에서 교수생활을 하시다가 1982년 정년 퇴임하셨다. 정년퇴임 후에는 단국대에서 초빙교수, 대한민국 학술원의 회원이 되셨다.
일찍이 성균관 유도회 총 본부장, 도산서원 원장, 한국 한문학회 회장 등 학술이나 종친 및 유교 단체의 장을 역임한 적은 있으되 그 밖의 어느 관직이나 행정직의 책임을 맡으신 적이 없이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셨다. 그리고 서예가의 서열에 드는 것을 사양하셨지만 우리나라의선현과 서법대가들의 법첩(法帖)을 두루 익힌 연후에 문기향(文氣香)의 필치로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하여 만인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셨다.

평생 모은 문화 유물 단국대 기증
선생님은 일찍부터 선현들의 묵적을 위시한 골동·서화 등에 식견이 높으실 뿐만 아니라 이를 무척 애호하시어 지난날 그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보물급 문화 유물을 많이 소장하셨다. 그러나 평소에 늘 하시는 말씀이 이것들은 모두 나의 개인 소유가 아니라고 하시더니 과연 만년에 일푼의 대가도 사양하시고 전부 단국대에 기증하시었다. 이는 현대사회의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아닐 수 없고 가난하게 평생을 교수의 신분으로 살아온 선생님의 일생을 생각한다면 정말 어렵고도 훌륭한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끝으로 선생님은 학문상의 업적 못지 않게 덕망도 높으셨다. 문하생들의 어려운 일에 당해서는 언제나 열성적으로 나서서 도우셨고 그들의 요청이라면 그 무엇이든 사양하지 않고 적극 응해 주셨다. 벌써 여러해 전에 문하생들은 선생님의 학덕을 기리고자 景淵會를 조직하였다. 기관 학술논문집으로 매년 ‘淵民學志’를 발간하고 있으며, 이미 제8집까지 출간했다. ‘연민학지’에는 우수한 젊은 학자들의 논문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출판경비가 항상 부족한 실정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여기에도 상당한 기금을 마련해 주시었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 선비, 큰 스승을 잃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높으신 유훈은 영원히 우리에게 학문과 인생길의 등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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