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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지구화’ 시대…포괄성·통일성 갖춰야
2차 ‘지구화’ 시대…포괄성·통일성 갖춰야
  • 교수신문
  • 승인 2007.06.0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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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독일의 ‘지구화’ 논쟁과 논의들

□현재의 지구화 과정은 복합적인 원인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구화’ 현상을 둘러싼 논쟁은 비단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 개념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역사적 기원, 그리고 ‘지구화’의 원인과 그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합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등장했지만 독일에서는 2000년에 출간된 두덴 사전 22판에 처음으로 등재된 이 단어는 가장 최근에 나타난 역사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역사성을 지닌 개념이기도 하다. 자본에 의해 국가들 간의 경쟁과 협력이 심화되고 특정한 문화가 전 세계에 걸쳐 동시에 유행하게 되는 현상은 대중교통과 통신매체의 발달로 전 세계가 1일 생활권에 들어선 오늘날에만 국한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논자들은 ‘지구화’ 현상을 세계 2차 대전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들은 1944년 브레튼 우즈 협정에 의해 설립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같은 국제기구들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지만 개념의 범위를 너무나 제한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논자들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왔던 인류의 이주운동과 그로 인한 국제적 교류에서 ‘지구화’의 출발점을 찾고 있지만 전자와는 반대로 너무나 광범위한 개념 사용으로 인해 개념 자체가 모호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의 지구화 , 다국적 기업 주도
지구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최근의 한 연구서는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명확한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지구화’ 현상을 압축화 현상과 전 세계적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이해하고, 지리상의 발견에서 시작해서 산업혁명에 이르는 시기를 ‘원(原)지구화’가 이루어진 시기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는 제2차 ‘지구화’ 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위르겐 오스터함멜/닐스 페터슨, 지구화의 역사, 2003)
과거와 변별되는 현재의 ‘지구화’ 과정의 특성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자본주의 전 지구화 과정의 경제부문에서 국가의 역할은 과거와 달리 대폭 축소되고 있다. 따라서 개별 국가들은 전 세계의 유동적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상대적으로 유리한 평가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에 중점을 두는 ‘민족적 경쟁국가’(요아힘 히르쉬, 1995)로 그 기능이 전환되고 있다. 임마누엘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이나 울리히 벡의 ‘세계위험사회론’은 포스트-포드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족, 영토, 주권 등의 개념들에 바탕을 둔 근대적 국가 모델의 붕괴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둘째, 현재의 지구화 과정은 국가가 아닌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자본주의의 전 지구화 현상으로서 현재의 지구화 과정은 정치에 바탕을 둔 국가 단위의 ‘세계체제’가 아니라 경제에 바탕을 둔 초국가적 단위의 ‘세계체제’를 형성하고 있고 또한 그러한 ‘세계체제’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미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이나 <그룬트리세>, <자본> 등에서 세계시장을 통해서 국가들 상호간의 의존성이 증대되고 이러한 세계시장은 자본주의를 전 지구적 체제로 만들 것을 예견한 바 있다. 즉 현 단계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민족국가들의 관심사항이 아니라 원리적으로 세계체제의 문제이다.
셋째, 전 지구적인 문화산업에 의해 하나의 통일적인 세계문화가 형성되고 문화의 지역적 차이가 평준화되고 있다. 흔히 생활양식의 ‘미국화’ 혹은 ‘맥도날드화’로 불리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경향은 문화적 지구화의 이러한 일면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지역적 문화들과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된 전 지구적 생산물 간의 긴밀한 연관관계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로랜드 로버트슨에 의해 제안된 바 있는 ‘글로칼Glocal’(Global, Local의 합성어) 개념은 바로 이와 같은 문화적 지구화의 변증법적이고 역동적인 측면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즉 전 지구적 문화는 재지역화 과정을 거쳐 수용되며, 또한 지역적 문화는 탈지역화 과정을 거쳐 전 지구적 문화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 문화는 전 지구적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문화를 통해 지역 문화가 발견 혹은 재발견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지구적 문화는 지역 문화의 준거체계가 되기도 한다.

지구화 과정, 복합적인 원인 작용
그러나 현재의 지구화 과정은 신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하는 자본의 전 지구화 과정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원인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기술론적 입장은 현재의 지구화 이전에 전신, 전화, 라디오, 비행기 등과 같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한 지구화를 예견했던 인물들에서 지구화의 단초를 찾고 있다. 프랑스의 고생물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인 테야르 드 샤르뎅이나 러시아의 지리생물학의 창설자인 블라디미르 베르나스키, 그리고 캐나다의 매체학자인 마샬 맥루한이 테크놀로지에 의한 지구화를 예견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둘째, 환경오염과 자원의 남용으로 인한 지구의 황폐화 때문에 지구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생태학적 입장이 있다.
셋째, 현재의 국제 정치가 초국가적인 다국적 기업이나 국제기구에 의해 주도됨에 따라 ‘다중심적인 세계정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제임스 로즈노의 견해나 지구화와 지역화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로 인해 지구화된 부자들과 지역화된 빈자들 간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견해처럼 변화된 정치적 환경에서 지구화의 원인을 찾으려는 입장도 존재한다.
넷째, 로랜드 로버트슨이나 아민 나세이처럼 대중매체에 의해 이 지구를 인간이 살 수 있는 하나의 유일한 장소로 인식하게 됨에 따라 지구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문화론적 입장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이 지구화의 원인을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엘마 알트파터, 비어기트 만코프, 하랄드 슈만, 요아힘 히르쉬 등)
위와 같은 모든 요인들을 고려하여 ‘지구화’ 개념에 대한 엄격한 접근을 시도한 바 있는 울리히 벡의 연구는 아마도 지구화에 대한 통일적인 이론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구주의의 오류에 맞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10가지 응답들 중 ‘시민노동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상생활이 직접적인 생존투쟁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에게 너무나 많은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는 반면, 국가는 흡사 자본축적을 위한 야경꾼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기든즈와 더불어 ‘제 3의 길’을 걷고 있는 벡의 입장은 결국 신보수주의적 입장에 귀결되고 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지구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면서도 보다 포괄적이고 통일성을 갖춘 지구화론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탐구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영범 / 독일통신원`만하임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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