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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문헌 고증…국론 통합 위한 리더십 방향 제시
충실한 문헌 고증…국론 통합 위한 리더십 방향 제시
  • 교수신문
  • 승인 2007.05.2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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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유성룡: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 역사의 아침 | 2007

이 책은 민족사 최대의 위기 중에 하나인 임진왜란 때 국난 극복의 탁월한 경륜을 보여 준 西厓 柳成龍의 일대기를 ‘설득과 통합의 리더’라는 부제 하에 실증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교적 충실한 실증적 문헌 고증과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을 통하여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층의 자세와 국론 통합을 위한 리더십의 방향을 오늘의 독자들에게 매우 실감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먼저 이 책은 임진왜란 벽두 ‘도주 길에 오른 선조’의 임진나루 동파관 어전회의 정경을 소개하면서, 그가 보여 준 격군(格君: 임금을 깨우침)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위기에 대처하는 위정자의 올바른 자세가 어떤 것인지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다음으로 위기 극복을 위하여 위정자가 갖춰야 할 인재를 보는 안목과 용현의식이 어떤 것인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21세의 유성룡을 처음 대면한 퇴계 이황이  “이 사람은 하늘이 낳은 사람이니 뒷날 반드시 국가에 큰 공을 세울 것이다”라고 하여 한눈에 그의 인물됨을 내다봤다고 하거니와, 왜란 발생 1년 전 우의정이었던 유성룡 역시 왜구의 침입에 대비, 權慄과 李舜臣을 각기 의주목사와 전라좌수사로 추천하였고, 왜란 발생 이후에는 도제찰사로서 군무를 총괄하면서 이들을 중용하여 국난 극복에 큰 공을 세우게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 후 이순신이 탄핵을 받아 백의종군할 때 그를 천거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면직되는 곤경을 겪게 되었지만 그의 용현의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다음으로, 그가 제시한 각종 국방대책과 민심수습책이 국난 극복과 국론 통합을 위해 얼마나 적실성이 있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검증해 주고 있다. 그는 왜란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制勝方略의 分軍法을 예전처럼 鎭管制度로 되돌릴 것을 주장하였고, 왜란 이후에는 도제찰사로서 군무를 총괄하면서 화기 제조, 성곽 수축 등 군비 확충과 군대양성을 역설하여 각종 국방대책을 강구하는 한편으로, 이 과정에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의 인적 및 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갖가지 방략과 시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특히 역점을 둔 것은 민심수습책으로서 이반하는 민심수습 없이는 국난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전제 하에 문벌에 관계없이 각 방면에 인재를 등용하여 公私賤을 막론하고 병력을 확보하는 등 인적 자원을 동원할 것을 제시하였다.
끝으로, 주인공 유성룡이 보여 준 투철한 역사의식이 주목된다. 1958년 환로에서 물러나 낙향한 그는 전란 중에 겪은 갖가지 경험적 사례를 낱낱이 기록하여 <懲毖錄>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여기서 그는 뒷날에 대비하려는 철저한 역사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국보 132호로 지정된 이 기록은 임진왜란 상황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이순신의 <亂中日記>와  더불어 높이 평가되는 귀중한 사료이다.      

강광식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필자는 경희대에서 ‘국제체계의 세력관리방안으로서 중립화에 관한 연구 : 한반도 적용 가능성 탐색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저서로 <한국정치사상사 문헌자료 연구Ⅰ~Ⅲ>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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