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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사학 1세대 연구 길잡이… 민족주의 시각은 비판 안해
해방 후 사학 1세대 연구 길잡이… 민족주의 시각은 비판 안해
  • 교수신문
  • 승인 2007.05.26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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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고병익·이기백의 학문과 역사연구> 한림과학원 | 한림대학교출판부 | 2007

이 책은 2006년 6월 한림대학교에서 주최한 ‘故 高柄翊, 李基白 선생 2주기 추모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엮은 것이다. 최근 21세기 한국 역사학의 방향을 새로이 정립하기 위한 모색의 일환으로서, 해방 후 한국의 역사학에 대한 史學史적 각도에서 검토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 책이 출간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이 두 학자는 각기 해방 후 한국의 ‘동양사학’과 ‘한국사학’의 제1세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은 현승종의 고병익 회고담과 유영익의 이기백 회고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분은 두 학자의 인간적 면모, 학문적 관심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익한 자료이다. 제2장에서는 사학사, 사상사, 역사인식으로 나누어 두 학자를 검토하였다.           
고병익의 사학사연구에 대하여는 대체로 동아시아사적 관점 및 비교사적 접근의 관철이라는 각도에서 이해하는 한편, 그의 역사학이 ‘우리의 시점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연구’를 지향했다고 하였다. 이기백의 사학사연구에 대하여는 그의 사학사연구 측면만이 아니라 그의 전문연구서와 개설서까지 아울러 검토한 다음, 이기백의 역사학의 관점을 한마디로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이기백의 묘지명)라고 요약하였다. 민족주의적 입장과 실증적·객관적 역사학의 결합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사상사 부분에서 고병익의 사상사연구에 대하여는 동아시아 유교 전통의 문화수용성과 급속한 근대화, 유교 전통의 현대적 의미, 아시아적 특수성의 비교와 유교사상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살핀 뒤, ‘거시적 주제의식을 갖고 쓴’ 것이며 ‘급변하는 현실세계와 대면’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기백의 사상사연구에 대하여는 먼저 그 지적 배경이 되는 기독교 민족주의의 영향, 일인 학자 츠다 소우키치에 대한 반발과 그 영향을 살펴본 다음, 이기백의 저서 <신라사상사연구>의 내용을 검토하였다. 이기백의 사상사연구를 ‘사회사적 사상사연구’라고 이해하고 ‘기본적 입장은 막스 베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베버가 사회분화에 따른 사회 각 영역의 내적 고유법칙성들 사이의 긴장 관계에 주목하고 자율 개념의 문제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간 것과는 달리 이기백은 단지 그 문맥을 따져보는 데 만족했다’고 하였다. 아울러 이기백이 조선후기의 성리학에 대하여 부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만 보았다고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역사인식의 부분에서는 고병익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상호 소원과 소통의 동아시아’라는 각도에서 이해하였다. 이러한 고병익의 역사학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고병익처럼 한국적 시각을 강조하다 보면 한국의 동양사 연구자들이 일본의 연구자들처럼 ‘풍부한 지적 탐구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기백의 역사인식에 대하여는 민족을 위한 역사, 역사 속의 민족, 인간 중심의 민족, 역사적 진리와 실증의 방법으로 나누어 살핀 뒤, 그의 역사학에 대하여 ‘민족적 관심과 실증적 방법의 결합이라는 특이한 양상’이라고 결론지었다.
고병익과 이기백의 역사학에 대한, 이상과 같은 연구 결과는 앞으로 두 학자에 대한 사학사적 연구에 있어서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이 책의 말미에 붙어 있는 두 학자의 저술목록은 매우 충실하게 작성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하여 다소의 불만과 약간의 견해 차이가 없지는 않다.  
첫째로 이 책은 연구 대상과의 객관적 거리를 두지 못한 점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연구 대상에 대하여 ‘선생’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추모를 위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을 모았다는 점에서 이런 성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선생의 제자라고 하더라도 선생을 연구 대상으로 할 때에는 거리를 두고 가급적 냉정하게 보면서 비판적 자세까지도 아울러 견지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책의 체제 면에서 일관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사학사 부분의 검토에서 고병익에 대하여는 사학사 위주로 검토하여 체제상 문제가 없으나 이기백에 대하여는 그의 역사학 일반을 검토하였다. 이것은 상세한 접근이 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셋째로 본서에서 연구 대상이 된 두 학자에 대한 사학사적 위치와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두 학자는 각기 해방 후 한국의 동양사학과 한국사학의 건설자이므로 이에 대한 보다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넷째로 고병익의 역사학에 대하여는 그 지적 배경에 대한 검토가 다소 소홀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울러 일본 및 구미의 동양사학과 비교하여 그의 역사학의 성격과 한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도 필요하다.
다섯째로 이기백의 역사학에 대하여 본서는 대체로 민족에 대한 사랑과 역사적 진리에 대한 믿음이 결합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이 시도가 이기백에게서 과연 성공하였는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여섯째 이기백의 사상사연구를 사회사적 사상사로 규정하면서 막스 베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에 대하여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의 초기 연구에서는 뒤르켕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민족주의적 시각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고병익과 이기백은 둘 모두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적 관점에 서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책의 필자들은 연구 대상이 되는 두 학자에 대하여 비판적 거리를 갖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민족주의 역사학 자체에 대하여도 심각하게 문제점을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조성을 / 아주대·사학


 

필자는 연세대에서 ‘정약용의 정치경제개혁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사상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조선후기 사학사 연구>, <여유당집의 문헌학적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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