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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으로의 초대] 전통 창호 장인 木音 조찬형
[지면으로의 초대] 전통 창호 장인 木音 조찬형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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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7 11:50:05

얼마나 오래 나무를 곁에 두고, 그 결을 쓰다듬으며 말을 주고받으면 나무의 소리(木音)를 듣게 되는 것일까.

이 물음에 “한 사십 년 나무를 매만지면 그리 된다”고 무심히 답하는 이가 있다. 일가 형님 등 너머로 겉대패질 흉내내면서 나무 만지는 길로 들어선 열 셋 어린 나이, 고향 목공소에서 ‘벤또 싸가지고’ 다니며 ‘뒷간 치고 요강 부셔주면서’ 3년간 돈 한푼 안 받고 나무 다듬는 일을 배웠다. 열 여섯에 서울 올라와 본격적인 목수일을 시작해, 지금은 “조목수가 맹글어야 짱짱허고 뒤탈 없다”는 말로 40년 목수인생의 절정을 이룬 이, 충청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소목장 조찬형(63세)씨가 그이다.

산도 들도 하늘도 고요하고 여유 넘치는 곳,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남동풍을 쐬고 비 맞히며 3년을 묵힌 춘향목 나뭇단과, 손수 가꿔 심은 배나무 모과나무 감나무들이 모두 ‘玉溪山房’을 이루며 너른 들녘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집안 곳곳 모란, 국화, 연꽃, 우담바라, 완자 무늬를 매끄럽게 새겨 가지런히 세워놓은 살빛의 문틀을 들여보노라니 감탄이 절로 새어나온다. 사방 팔방 장방형의 무늬들이 막힘 없이 뻗어나가 조화를 이루고, 어린애

찰흙 주무르듯 뜻대로 다듬어놓은 솜씨가 그저 ‘예술’이다.

장인의 섬세한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못 하나, 나사 하나 쓰지 않으니 오직 안살 겉살의 아귀가 딱 맞아야 한다. 한 귀라도 맞지 않으면 문짝 전체가 뒤틀려 못쓰게 되는 것이다. “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해. 열고 닫는 것이 바로 문 아니오.”

그의 말처럼 집은 비로소 문이 완성한다. 짓는 집뿐이랴, 마음의 문도 그러하여, 얼마만큼 튼실한가, 여닫을 때 얼마나 맺힘 없는가에 따라 사람결도 달라진다. 창호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열려있을 때는 한없이 품이 넓고 닫아놓으면 완고하다. 빈틈없이 반듯한 네 귀로邪氣는 범접 못하고, 햇볕과 바람은 무시로 넘나든다.

그가 특히 사찰 궁궐 등 문화재와 인연 맺게 된 것은 외삼촌 덕분이었다. 출가한 외삼촌을 찾아 예산 수덕사에 갈 때마다 절집과 함께 고풍스레 늙어가는 문을 보면서 ‘나도 저런 문 한번 만들어봤으면…’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니, 나무와는 어지간한 인연이었다. 꿈대로 전통문 짜는 기술을 익힌 뒤 그는 “국보란 국보는 죄다 만져” 보았다. 1973년 강화도 보문사를 시작으로 충북 구인사, 대구 광덕사, 고성 보성사 등의 창호를 제작했고, 제작보다 몇 배 어렵다는 보수공사도 그의 몫.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꽃살문, 하동 쌍계사, 영광 불갑사 법당의 문을 완벽하게 고쳐내면서 1997년 문화재 수리기능자로 등록됐고, 그 뒤 경복궁 복원공사에 오랜 공을 들였다.

“얼마나 짰는지는 기억을 못해요. 경복궁에서 5천짝, 구인사에서만 몇만 짝을 짰는데…”런 그이지만, 예전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섬돌에 발도 올리지 못하고 마당에 선 채로 양반네의 주문을 들어야 했던 시절. ‘목수놈이 어딜 올라오려느냐’는 수모를 받고 그 자리에서 일감을 거절하고 돌아오던, 솜씨가 사람을 말하지 않고 반상의 구별이 대팻날처럼 살아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이러저러한 수모와 설움에도 그가 ‘장인 조찬형’이라는 이름을 남길 수 있던 까닭은 바로 ‘나무가 좋아서’였다.

그는 창호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전국을누벼왔고, 앞으로도 20년은 너끈히 그럴 생각이다. “전통의 맥을 잇는 창호 박물관 하나 있어야겠기에” 좋은 땅을 고르고 골라 터를 닦아둔 그의 마지막 꿈은 ‘전수관’을 짓는 것이다. 꼭 하나 달아두고 싶게끔 아름다운 그의 꽃살문들은 16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송화랑에서 볼 수 있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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