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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적어도 거점대학은 육성해야”
“수요 적어도 거점대학은 육성해야”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5.21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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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인문대 폐과 속출’ 해법없나

올해 이전에도 인문대 학과의 폐과 사례는 많았다. 2005년 경남대는 국제언어문화학부 4개 학과 중 중국어를 제외한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3개 어문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소속 교수들을 유사 전공으로 전보시켰다. 이 과정에서 시간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계명대는 2005년 프랑스어문학과를 폐지했다. 2001년 호서대에 이어 2003년에는 경원대가 철학과를 없앴다.

교육부는 이러한 추세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 이석현 교육행정주사는 “특히 사립대의 경우 대학 자율화 수준이 높기 때문에 교육부가 간섭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학과 신설, 폐지는 어디까지나 대학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로 사립대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철학과나 유럽어문학과 교수들도 모든 대학에 이들 학과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에 전국의 여러 대학들이 큰 고민 없이 개설하는 바람에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폐과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 해당 학과 교수들의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립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학문의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외부에서 이들 학과의 성장 의지를 꺾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등 지원을 통한 교육부의 구조개혁사업도 대학 입장에서는 사실상 소위 ‘비인기학과’를 없애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조병로 경기대 교수(사학과)도 “사회 수요에 부응하려는 인문대 학과들의 노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사회에서 인문학적 기초가 중요한 만큼 학생이 적더라도 인문학 교육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유럽어문학과들의 경우에는 당장 유럽어의 수요가 적어도 그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많다. 실제로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의 경우 베트남이 공산화돼 우리나라와 교류가 끊어진 후 폐지될 뻔했지만 겨우 위기를 면했고, 1987년 베트남과의 교류 재개 이후에는 오히려 전성기를 맞고 있다.

변난수 대구대 교수(불어불문학과)는 “외국에서는 보통 2~3개 외국어를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배운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만 지나치게 중시되고 있어 차후 비영어권 국가들과의 경제·정치적 교류에 있어서 뒤처질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대학 뿐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부터 제2외국어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폐과 문제와 관련해 많은 인문대 교수들이 대안으로 꼽는 것은 거점대학 육성이다. 수요에 비해 숫자가 많은 철학과, 유럽어문학과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더 이상의 ‘후퇴’가 없도록 일부 대학에서만이라도 이들 학과를 보호·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현 아주대 교수(불어불문학과)는 “지금 당장 수요가 적다고 해서 다 폐지해버리면 언젠가 이 학과들이 다시 중요해졌을 때는 어쩔 거냐”며 “국립대와 주요 거점 사립대에서는 이들 학과를 육성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인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대적인 학제개편을 대안으로 꼽는 견해도 있다. 인문대와 인문계열 사범대를 통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문장수 경북대 교수(철학과)는 “독어교육과, 윤리교육과 등의 사범대가 없는 유럽에서는 독문과, 철학과 출신이 중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며 “인문대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취직할 길이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나라에서도 인문대와 인문계열 사범대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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