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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대학민주화 기각했다
대법원, 대학민주화 기각했다
  • ?판결비평 : ‘상지학원 사건’ 대법원 판결을 보고
  • 승인 2007.05.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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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상지학원 사건’ 대법원 판결을 보고

대법원은 2007년 5월 17일 상지학원사건에서 비리로 물러난 구재단의 이사들이 임시이사의 정이사선임행위를 다툴 법률상 이익을 가지고 있고, 임시이사들은 임시적인 위기 관리자에 불과하여 정식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주지하다시피 상지대는 법인이사의 학교 비리로 인하여 오랜 기간 학내분규가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임시이사가 파견되었고 임시이사와 학교구성원들의 노력으로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러한 정상화의 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 판결에서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임시이사 파견 직전의 종전이사들이 임시이사의 행위를 다툴 소송상의 이익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전원합의체의 합의결과 8:5로 의견이 갈리었고 다수의견은 상식과 법리에 반하는 판단을 내놓았다.
첫 번째 쟁점에 대해서 다수의견은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은 순차적으로 선임되는 이사들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임시이사가 선임되기 전에 적법하게 선임되었다가 퇴임한 최후의 정식이사들은…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을 구현함에 적절한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법률상의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으므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내용의 이사회결의의 무효 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있다”고 했다. 즉 종전이사들이 예외적으로 임시이사들의 정이사선임을 다툴 소송제기권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이 말하는 소송제기권을 갖는 종전이사란 학교법인과의 관계에서 적법하게 취임하고 설립목적에 반하는 행위 없이 정상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다가 퇴임한 이사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러한 소송제기권을 무한정 확대시켜 버렸다. 대법원은 “비리를 저지른 학교법인의 임원”에까지 이를 인정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학교법인에 대해서 종전 이사들이 소유권에 준하는 권리를 갖는 것처럼 바꾸어 버렸다.
이 사건에서 원고인 종전이사 중에는 편입학부정행위, 입시부정행위 등으로 1년 6월의 확정판결을 받았고 일부는 이에 동조 내지 방조행위등을 하여 교육부로부터 임원취임승인취소를 받았다. 그렇다면 종전이사는 이미 학교법인과의 신뢰관계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앞서 본 소송제기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원고들에게 소송을 제기할 법적 지위를 부정해야 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종전이사들의 법적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두 번째 쟁점에 대한 판단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 다수의견은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선임한 임시이사는… 임시적으로 그 운영을 담당하는 위기관리자로서…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한은 없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된 배경으로 대법원은 “임시이사에 의한 정식이사 선임이 갖는 기본권 침해적 성질”을 들고 있다. 대법원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자로서 학교법인을 들고 있다. 즉 학교법인에게 인정되는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 자기결정권 등의 헌법상의 기본권 침해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사가 비리 등의 행위를 저지르거나 방조함으로써 법인설립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학교법인의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 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 침해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립학교법의 규정은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을 정이사들이 정상적으로 수행한다면 개입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임시이사선임을 통해서라도 공교육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이사이든 임시이사이든 그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만약 대법원이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행위를 기본권침해로 판단하려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학교비리 등의 행위를 저질러 법인설립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만든 종전이사들의 법적 지위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 없이 임시이사의 정이사선임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상 비리 등을 저지른 종전이사들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 판결로 인해 상지학원에는 새로운 학내분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비리재단의 복귀를 선호할 학내 구성원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지학원 내부 문제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판결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다. 지난 2005년의 사립학교법 개정은 학교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립학교법인의 자율성, 정확히 말하면 학교법인 설립자나 비리를 저지른 종전이사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판결을 내려 의회의 입법에 전면적으로 맞서 버렸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전문관료집단인 사법부가 의회의 판단을 마음대로 재단하려는 행위는 국가권력의 司法화를 초래하여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또한 대표적인 공적 서비스인 공교육을 私有화시켜 헌법상의 공교육이념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시켜 버렸다. 이제 사립학교에서 희망을 찾기는 매우 힘들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지난 군사독재정권시절에 내려진 어이없는 판결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 대법원은 멀지도 않은 미래에 청산의 대상이 될 판결들을 또 만들고 있다. 진지한 과거청산없는 사법부의 현재 모습이 그저 실망스러울 뿐이다.

임재홍/영남대·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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