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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재벌회장과 총
[문화비평]재벌회장과 총
  • 김영민/철학자
  • 승인 2007.05.14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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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에서 칼을 전시, 과시하는 낡은 풍습은 21세기의 소비자-인간인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그것은 칼잡이들이 무인정치를 일삼았던 일본의 것만도 아니다. 아니,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치 도도한 문사의 세계였던 중세 이후의 한반도에서도 그 세도와 가풍의 일단을 명장(名匠)의 칼로써 드러내던 班家들이 많았다. 물론, 글씨와 그림을 넣은 족자와 액자라면
어디에서든 흔하다. 그러나 世族勢家가 아니라도 문턱이나 深處에 심심찮게 칼을
게시하던 집안들이 있었다. 
한편 동서양을 막론하고 칼, 총, 바늘 따위로 포획한 야수의 시체를 집안에 전시하는 일도 흔하다. 사슴, 곰, 호랑이, 상어 따위 죽은 사냥감의 전부, 혹은 일부를 집안에 전시한 것은 생소한 풍경이 아니다. 영화나 소설 등 속을 통해 빈번하게 재현되듯이 고중세의 전사들 사회에서 적의 수급(首級)을 간직하거나 전시하는 풍습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이 전시가치(Ausstellungswert)의 대상이 주검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기묘한 카리스마를 부르게 마련이다.
전사의 세계와 수렵의 시대가 아득해 보이는 이 후기자본주의의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칼이나 짐승의 주검을 실내에 전시하는 짓은 ‘남성성’이라는 역사적 지체(遲滯) 현상에 얹힌 일종의 노스탤지어일 것이다. 무릇 노스탤지어는 퇴행적이니 당연히 시공간적으로 응결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칼이나 짐승의
시체는 어떤 비자본주의적 과거의 일단을 호출시켜 만든 물화이며 어떤 남성적 삶의 양식을 환기시키는 아우라일 것이다. 혹은 벤야민 식으로 풀어보자면 ‘반복의 예술’(앤디 워홀)로 치닫는 문화상품의 세계를 넘어 실재의 ‘흔적’(‘늘, 가까이 다가와 있는 상처’)을 보존하려는 시대착오적 욕망이기도 하다.
혹은 부케르트(Walter Burkert)나 바타이유를 불러 평설하게 한다면, 그것은 신(神)의 흔적, 정확히는 신이 탄생하는 사건의 遺物인 셈이다. 최근, 총기를 휘두르면서 사원들을 지휘, 감독할 리 없는 어느 재벌 회장의
집에서 1개 소대를 무장시킬 수 있는 총기가 발견되었다. 짐작컨대, 총기류가 비교적 철저하게 단속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세력가들은 총이나 명가의 칼을 홀로 만지작거리면서 어느 ‘없는 과거의 없는 추억’을 실없이 되새김질하고 있을 게다. 그 매서운 아우라가 깎이긴 해도 ‘총’은 ‘칼’을 대체한다. 그 회장이 간직한 총기 중의 하나는 금박한 권총이라고 보도되었는데, 이 금박은 칼날을 옹위하는 그 카리스마의 직접적 실재감을 대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들(광의의 ‘귀족’들)이 칼이나 총 혹은 곰이나 호랑이를 전시하고, 호미나 쟁기 혹은 보리나 감자를 전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당연하면서도 중요하다. 바타이유의 분류처럼, 이들의 세계는 노동의 세계가
아니라, 축제와 금기(위반)와 종교와 사냥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한편 자크 르코프의 해석에 따르면, 중세 군주나 귀족들은 단지 사냥을 좋아할 뿐 아니라 그 행위를 자신들이 보유한 권력의 본질적 행사로 본다. 이 특권적 신분의 유력자들이 생계형의 노동 대신에 유희형의 사냥에 탐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신분의 존재론적 증명인 셈이다. 이와 함께, 중세의 기사 계급을 ‘싸움을 유희처럼 즐기는 무리’라고 정의했던 호이징하를 떠올려 볼만도 하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특정한 비생산적 (사치)활동으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던 역사적 귀족 계급은 근대적 노동자의 세상과 함께 몰락했다.
그러나 ‘노동의 자유(Arbeit macht frei!)’라는 궁색한 근대적 자유에 순치될 수 없는 이들은 늘 있어왔다. (기사의 영혼들은 내 해석에 굳은 표정을 짓겠지만) 폭력의 아우라를 통해 무노동의 환타지를 현실화시킨다는 점에서 현대의 조폭은 곧 기사의 후예들이다. 기사나 사무라이들이 농민 계급에
기생했듯이 오늘날의 조폭은 상인들에 기생한다. 그러나 이 현상은 현직(!) 조폭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노동자 대중에게 기생하면서 무노동의 고중세적 환타지를 발밭게 구체화시키는 신귀족계층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펴져 있다.
그렇게 보면, 조폭처럼 행세한 어느 재벌회장에게서 다수의 총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죽음을 부르는 이 무기의 존재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느린 재벌총수의 무의식을 내비친다. 베블렌의 말처럼 유한계급의 무기는 생산적인 노동에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노동자 왕국의 재벌 총수가 숨겨둔 그 무기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김영민/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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