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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후원 받은 세잔 vs 외면 당한 로트레크
아버지 후원 받은 세잔 vs 외면 당한 로트레크
  • 박희숙[서양화가·시인]
  • 승인 2007.05.14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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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인물 ‘극과 극’]

세잔, 클림트, 루벤스, 쿠르베, 샤갈, 로댕…. 누구나 알고 있는 서양미술 대가들이 겪었던 남모르는 삶의 역정을 만난다. 매춘, 정치적 선택, 여자, 생활, 결혼, 돈, 가정 등을 두고 극과 극의 삶을 살았던 대가들의 삶을 비교해 보며 그들의 작품세계와 예술혼을 다시 한 번 느껴보자. 10여 차례에 걸쳐 격주마다 연재할 예정이다. 서양화가이자 시인인 박희숙씨가 연재를 맡았다.

은행가의 부유한 아버지
생활비 대주고 막대한 유산 남겨

<자화상>-1875--1877년, 캔버스에 유채, 24*18, 한로저 콜렉션 소장
폴 세잔<1839~1906>은 화가로서 유난히 행운이 따르지 않아 늦게 알려졌지만 그가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부유한 아버지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 오귀스트는 은행가로서 자신의 은행을 물려주기 위해 세잔이 법학을 공부하길 희망하지만 세잔은 화가가 되고 싶어 아버지 몰래 미술학교에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처음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 아버지였지만 세잔이 그림으로 상을 받자 화가가 되는 것을 허락한다.
아버지는 세잔이 파리에서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게끔 생활비와 학비 등 경제적 후원을 아낌없이 해주었지만 그가 검소한 생활만 할 수 있는 돈만 부쳐주었다. 자유분방한 파리에서 그는 소박하고 근면한 생활을 하면서 온갖 스타일을 두루 시도하지만 살롱전에서 세잔은 낙선한다. 아버지는 세잔이 그림을 포기하거나 화가로서의 빠른 성공을 원했지만 희망은 이루어지지를 않는다.
세잔은 거듭된 낙선으로 고향 엑스에 자주 내려갔다. 고향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생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중압감도 있었다. 세잔은 자기 작품에 쏟아지는 비난과 너무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것이 싫었지만 화가로서의 길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기에 어떠한 고통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루이 오귀스트는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생활조차 해결할 수 없었던 세잔이 결혼만큼은 정상적인 가정의 여자와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세잔은 집안에는 알리지 않고 19세의 모델 오르탕스 피케를 만나 동거에 들어간다. 소심한 성격의 세잔은 그녀와의 동거로 아들까지 있었지만 꾸준하게 생활비를 대주는 아버지에게는 알릴 수가 없었다. 결국 아버지에게 동거 사실이 들켜 생활비 절반이 삭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우리 아들은 보헤미안이니까 가난하게 살겠지.”
세잔의 재능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 루이 오귀스트는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살 아들을 걱정해서 유산으로 막대한 재산을 물려줌으로써 걱정 없이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젊은 시절 아버지가 화를 낼까 두려워했던 세잔이지만 말년에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佛 귀족가문 … 어려서 불구자 돼
죽을때까지 아들로 인정도 못받아

<거울 앞에 선 자화상>-1880년, 마분지에 유채, 40*32, 툴루스 로트렉 미술관 소장
툴루스 로트레크<1864~1901>은 프랑스 명문 귀족가에서 태어났다.
로트레크의 아버지 알퐁스 드 톨루스 로트렉 몽파 백작은 남프랑스 여러 곳에 사유지를 소유할 정도로 부유한 귀족이었다. 알퐁스 백작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적으로도 방탕했으며 그는 유난히 매사냥하기를 매우 좋아했다. 알퐁스 백작은 이종사촌 간이었던 아델 타피에 드 세레랑과 결혼을 해 로트레크를 낳았다. 그들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에 부부는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했다.
부모의 근친결혼은 유전적 문제를 일으킨다. 허약하게 태어난 로트레크는 13살 때 사고로 한 쪽 다리가 부러졌고 14세 때에는 다른 다리마저 골절되었다. 유전적인 결합이 있었던 로트레크는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상체는 정상이었지만 하체는 짧은 기형적이 체구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키가 152센티미터 밖에 되지 았다.
불구가 된 로트레크를 아버지 알퐁스 백작은 철저히 외면했다. 심지어는 아들로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외면에 의도적으로 반항하고 있었지만 로트레크는 사실 아버지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물려받았다. 그는 동물들을 좋아해 아버지와 같이 사냥을 하고 싶었지만 결코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로트레크는 병실에 누워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말이나 동물 그림을 그렸다. 알퐁스 백작은 아들의 그런 모습에 감동을 받기보다는 취미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혼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허약한 로트레크를 보살피는 일에 매달린 어머니 덕분에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사람들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로트레크는 밝은 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로트레크의 인생은 몽마르트르를 발견하면서 달라졌다. 몽마르트르에서 그에게 여자들은 언제나 뮤즈이자 조언자였고, 때로는 정부이기도 했다.
그는 몽마르트르에서 자유로웠지만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알코올로 인해 정신착란증까지 겪고 있던 로트레크는 정신병원에서 아버지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알퐁스 백작은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회피했다. 알퐁스 백작은 이때에도 사냥에 빠져 있어서 아들을 영국으로 보내라는 편지만 보냈을 뿐이다.
죽을 때까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던 로트레크는 불구가 되지 않았다면 결코 화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진정 아버지와 같은 귀족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어 했다.

박희숙 / 서양화가·시인



필자는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하고, 화가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클림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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