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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 앎의 앎, 앎의 함 …
앎, 앎의 앎, 앎의 함 …
  • 김재호 기자
  • 승인 2007.05.14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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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앎의 나무 움베르또 마뚜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 최호영 옮김 | 2007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칠레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마뚜라나와 바렐라는 인식자의 주체적 활동을 강조한다. 일종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이다. 표상주의(representationism)의 부정이자 극복이다.
오래전부터 지식 혹은 앎에 대한 논의는 끊이질 않았다. 앎에 대한 연구는 인식론(epistemology)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을 정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이론학·실천학·제작학의 범주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학문’이라는 이름도 결국 ‘인식()’이었다.
공저자들은 시각의 불확실성을 맹점 실험을 통해 드러내며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반사 또는 성찰이란 자기가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며 메타적 인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들의 학문적 여정은 생물학으로부터 사회현상과 윤리 부문으로까지 확장된다. 사회학자 루만은 자신의 체계이론에서 ‘자기생성(autopoesis)’을 적극 활용한다. 자기생성조직이란 구성요소들의 생성그물로 정의된 개체이다.
구성요소들은 첫째, 그것들을 생성하는 바로 그 생성그물에 재귀적으로 참여한다. 둘째, 그것들이 있는 공간에서 생성그물을 개체로서 실현한다. 생물의 자율성이 강조되면 환경문제는 결코 나의 밖 문제가 아니다. 나 자신의 문제이다. 명령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하고, 잘못이 아니라 이해의 단절로 해석하는 이유다. 
한편 “앎을 알면 얽매인다”는 지적은 원죄의식을 일깨우면서도 윤리의 사회적 명제로 작용한다. 생물학적 일치를 경험하고 있는 서로서로는 함께 이 세계를 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저자들이 인정하듯이 ‘자기생성’이 칸트의 구성주의적 인식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등의 이론들과 어떤 차이점을 드러내는지 의문이다. 단지 인식활동의 생물학적 기초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만으로는 차별성이 부족해 보인다. 이에 대한 전문 연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재호 기자 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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