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1:45 (금)
‘당사자’가 경영하는 ‘이해관계자 복지’모델
‘당사자’가 경영하는 ‘이해관계자 복지’모델
  • 김동규[명지대·정치학]
  • 승인 2007.05.14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깊이읽기]<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고세운 | 후마니타스 | 2007

“허나 구멍 뚫린 한국의 무책임한 복지 속에, 우린 너무도 태연해 나의 삶만이 중요해”
MC스나이퍼라는 가수가 있다. 일부에서 민중 래퍼라고도 부르는 그는 금번 봄에 발표한 앨범의 ‘고려장’이라는 곡에서 2007년 봄의 복지한국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리고 똑같은 2007년 봄, 사회복지와 사회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천착해온 고세훈 교수는 ‘무책임한 복지한국’에 대한 이론작업의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한국, 자살율 최고 출산율 최저
2007년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아이를 낳아 키울 환경이 되어있지 않아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자본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경기순환에 대해 최소한의 보호도 제공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매일매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개발연대를 책임졌던 노동자들은 이제 노인이 되어 노후에 대한 어떤 대책도 없이 방치돼 있다.
사회복지의 지표가 되는 ‘GDP 대비 공적사회지출(복지관련 지출)’은 멕시코 덕에 꼴찌를 겨우 면한 수준(2001년 현재: 멕시코 5.1%, 한국 6.1%, 미국 14.7%, OECD 평균 20.7%, EU평균 23.8%, 스웨덴 29.8%)이고 한 번도 변변한 ‘복지국가’를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복지국가 위기론’ 등의 반(反)복지 정서가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어디서나 현존하는 체제는 그 현존함 자체로 강력한 권위를 가짐으로써 수많은 지식인들을 호교론자(護敎論者)로 포섭하는 법.
그래서인지 복지선진국들과 달리 反복지가 하나의 현존체제로 굳어져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일수록 복지국가 위기론은 강력한 담론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른바, 뮈르달이 말한 ‘누적적 인과(cumulative causation)’효과 때문이다. 즉 현실은 이론을 낳고 이론은 현실을 강화한다는 것. 그래서, 복지가 미약한 우리나라의 주요 언론은 시장확대와 노동유연성은 쉴 새 없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의 필수적 보완물인 사회안전망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은 사회복지라고 할 수도 없는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노동자를 사지로 몰면서도 이에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한국 노동자들을 너무 전투적이라고 비난한다.
또 주류언론은 끊임없이 기업들의 효율성에 찬사를 보내면서 동시에 정부와 공공부문을 비효율성의 상징인 양 비난한다. 정부, 정치, 공무원, 공공, 국립, 공립은 비효율과 동의어인 양 묘사하면서 시장, 기업, 기업인, 사립은 당연히도 효율적인 것처럼 묘사하고, 시장의 실패에 대해서는 별 언급 없이 정부의 실패만을 되뇐다.

저자는 이러한 反복지, 反정치, 反공공적 지배담론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한 파멸적인 ‘누적적 인과’ 메커니즘은 끝없이 진행될 것이므로 공공의 가치, 정치의 가치, 국가의 가치를 복원하고 특히 정치가 더욱 강력한 민주적 권위를 갖춤으로써 그 민주적 권위의 힘을 이용해 경제영역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를 이끌어내야
결국 정치개혁이 유일한 열쇠라는 이야기다. 즉, 정치영역을 보수정당 일색의 현 상태로부터 좀 더 민주주의가 확대·심화된 방향으로 이끌고, 이것을 기반으로 삼아 경제민주화를 추동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복지한국이 가야할 미래로서 ‘이해관계자 복지’ 모델을 제시한다. 이것은 독일 등의 유럽대륙식 모델로서 거대화된 기업이 더 이상 공공영역에서 완전히 독립된 사적영역에서 웅크린 채 공적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으며, 주주와 경영자뿐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등 기업에 관련된 모든 ‘이해당사자들’(stakeholders)이 함께 기업경영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한 모델이다.
현재 1%도 안 되는 지분율을 가지고서 상호출자의 변형인 순환출자라는 편법을 이용하여 수백 조원의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기도 하는 한국 재벌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있다.
한쪽에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모델을 적용해 재벌기업을 재구성하자는 입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외국자본에 의해 우리가 공들여 키워온 기업들이 사냥당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저자는 양쪽의 입장 모두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외국자본의 국내기업 사냥을 방지하면서도 재벌가문의 부당한 과두제적 기업지배를 막는 방법으로써 미시적 차원에서 기업 내부의 민주화(이해당사자 경영참여)를 제시한다.
또 이러한 기업내부의 민주화, 공공화를 통해 고용안정성이 제고되는 등 기업 내부의 복지가 향상되면 그만큼 기업 외부의, 즉 국가적 차원의 복지 역시 부담이 줄고 여력이 늘어나게 되는 正의 복지효과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혁은 국가부문이 복지를 전담하면서 과도하게 비대해지는 문제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구체적 전략전술이 치밀하지 않은 저자의 주의주의적 설명만으로는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감안할 때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저자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구체적 방법은 부족해보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는 그리스 역사를 간략히 정리하며 많은 나라들에서 토양의 비옥함이 부의 편중을 가져왔고, 이것이 결국 국가의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단언한다.
ㅋ토양이 척박한 아티카(아테네)의 정치가 왜 오랫동안 안정적이었는지를 설명하면서이다. 경제성장만이 정치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유일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복지와 사회적 연대가 따르지 않는 경제성장은 결국 정치공동체의 몰락을 가져올 뿐이다. 

구멍 뚫린 무책임한 한국의 복지를 랩으로 고발하는 MC스나이퍼의 금번 앨범은 그 타이틀곡이 ‘봄이여 오라’이다. 고세훈 교수도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김동규/명지대·정치학


 

필자는 미국 럿거스대에서 정치사상을 공부했다. 현재는 명지대에서 북미관계 등 북한학과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역서로 <공화주의>, <서양정치철학사> (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