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1:10 (금)
[時論]사르코지와 나폴레옹/신동준/편집국장·정치학
[時論]사르코지와 나폴레옹/신동준/편집국장·정치학
  • 신동준[편집국장·정치학]
  • 승인 2007.05.14 11:3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 초에 치러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대선을 불과 7개월 여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관심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좌파의 세골렌 루아얄이 과연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강성노조로 상징되는 소위 ‘프랑스병’의 해결사로 등장할 수 있을지 여부 등이 관심거리였다. 우리나라 역시 참여정부의 분배위주 정책으로 인해 청년실업이 급증하고 기업의 투자가 급감하는 등 소위 ‘한국병’을 앓고 있다.
결국 프랑스 대선 결선은 사르코지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는 프랑스 국민들이 ‘프랑스병’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방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르코지는 유세기간 동안 ‘프랑스병’을 수술해 프랑스 경제를 되살려 놓겠다고 역설한 바 있다. 정치사상사적으로 보면 프랑스의 이번 대선은 국가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共和 리더십’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民主 리더십’의 격돌로 볼 수 있다. 일찍이 H. Arendt는 이 문제와 관련해 공동체 위주의 ‘bios politikos(政治的 삶)’와 개인 위주의 ‘bios theoretikos(學知的 삶)’를 대비시킨 뒤 전자가 보장되지 않는 한 후자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식으로 정리한 바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역설한 ‘zoon politikon’의 현대적 해석에 해당한다. 동양에서 수천 년 간에 걸쳐 소위 ‘治平派’와 ‘修齊派’가 대립해 온 것도 따지고 보면 이 難問의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제를 극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서양고전으로는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법의 가차 없는 집행을 강조하는 집권자 크레온과 따뜻한 인간애를 강조하는 안티고네가 실정법 위반 사안의 正義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實定法’ 위에 ‘神法’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친 안티고네의 손을 들어주고 있으나 국가통치 차원에서 볼 때 이는 정답이 아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소위 ‘앙시앙레짐’을 무너뜨린 부르주아 혁명세력은 루소가 강조한 ‘동정심’을 내세워 인간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혁명정부를 세우고자 했다. 혁명의 와중에 마라와 당통 등이 제거된 뒤 최후의 승리자가 된 로베스피에르는 이를 보다 철저히 실현시키기 위해 공포정치까지 구사하며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동으로 혁명정부가 무너지고 혼란이 거듭되자 마침내 코르시카 섬 출신의 청년장교 나폴레옹이 혜성같이 등장해 권력을 틀어쥐었다. 
공교롭게도 ‘프랑스병’으로 인한 혼란이 일상화한 가운데 이민자 2세 출신으로 엘리제궁의 주인이 된 사르코지는 여러 면에서 나폴레옹과 닮아 있다.  그는 엘리트 사관학교로 불리는 ‘그랑제콜’이 아닌 파리10대학을 나와 변호사로 활약하며 시라크 수하의 청년당원으로 일한 바 있다. 이는 마치 나폴레옹이 파리육군사관학교를 나와 포병소위로 지방연대에 부임한 것에 비유할 만하다.
그가 파리 교외의 ‘뇌이’에서 사상 최연소의 시장이 된 것은 나폴레옹이 파리의 폭동으로 國民公會가 위기에 처했을 당시 포격으로 폭도들을 물리친 뒤 정치군인으로 등장한 과정과 유사하다. 그가 친구의 애인을 빼앗아 부인으로 삼은 것은 나폴레옹이 지인의 情婦였던 조세핀을 빼앗아 결혼한 것과 닮아 있다. 그는 지난 1993년 당시 발라뒤르 총리에게 발탁되어 내무·재무장관을 거치면서 강력한 범죄소탕과 경제개혁 정책으로 국민들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이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군사령관으로 임명된 뒤 각종 전투에서 잇달아 승리를 거둠으로써 명성을 얻게 된 것에 비유할 만하다.
5척 단신에 뛰어난 언변과 직설적인 화법, 지나칠 정도의 공명심 등은 나폴레옹이 평생 코르시카인의 거친 기질과 솔직함을 잃지 않아 농민출신 사병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것과 유사하다. 47%에 달하는 반대 속에 거둔 그의 승리는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길에 나서 카이로에 입성했다가 해군의 패배 이후 이집트를 탈출해 프랑스로 귀국한 뒤 군을 동원해 무력으로 제1통령의 자리에 오른 것에 비유할 만하다. 광대한 구상과 탁월한 현실파악, 과감한 행동 등이 두 사람이 지닌 리더십의 공통점이었다.
현재 프랑스의 언론은 여로 모로 나폴레옹과 닮아 있는 사르코지의 인생 歷程에 주목해 그를 ‘21세기의 나폴레옹’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는 사르코지가 과연 과거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보나파르티즘’을 만들었듯이 ‘프랑스병’을 치유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여부에 초점을 맞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나폴레옹의 영광을 재연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달 10일과 17일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가 속해 있는 대중운동연합의 지지율은 사회당보다 겨우 4% 가량 앞서 있을 뿐이다. 사회당이 총공세를 펼치고 유권자들이 그를 견제하는 쪽으로 선회할 경우 그는 집권 초반부터 일종의 거국내각인 소위 ‘코아비타시용’을 구성해야 하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현재 ‘프랑스병’의 해결사로 등장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티고네와 로베스피에르 식의 ‘휴머니즘’이 아니라 나폴레옹처럼 분열과 대립을 지양해 강한 프랑스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통치리더십’이다. 이는 그에게 ‘프랑스병’의 치유를 고대하고 있는 많은 프랑스인의 하나같은 바람이기도 하다.
사르코지의 당선은 7개월 뒤 새 대통령을 뽑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 국민들 역시 ‘한국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내심 나폴레옹을 닮은 사르코지와 같은 인물의 등장을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no 2007-05-18 08:58:16
박근혜라니 기분 나빠하시겠습니다. 지지선언은 이명박에게 하셨습니다. 어쨌든 프랑스 대선에 대해 전혀 모르시고,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모르시고, 다만 신문 기사 좀 읽으시고 쓴 글이니 그냥 무시합시다. 근데 프랑스병이라는 이 말, 요즘 아무데나 나오는 이 말, 그 출처가 도대체 어디입니까? 사르코지가 그런 말 혹은 비슷한 말이라도 했나요? 물론 신동준님께서는 모르시겠지요.

교수언저리 2007-05-16 18:33:44
차라리 그냥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해라
무얼 그리 돌려 말하나. 분배위주의 정책을 한국병으로 몰아세우고 판을 애써 둘러 말하더니 결국 나폴레옹(박정희)를 닮은 사르코지(박근혜)같은 인물을 갈망한다고? 차라리 그냥 신 편집국장이 박근혜를 갈망하고 있다고 해라.